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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이 Jun 20. 2024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가다

범섬 다이빙

바다수영팀에서 프리다이빙 강사 자격증이 있는 분을 만났다. 정말 운이 좋았다. 5년 전쯤 프리다이빙 체험을 통해 처음 슈트를 입어보고 숨 참기도 해 보고 수심 5m가 되는 다이빙 풀에서 잠수를 했었다. 그때도 귀의 압력을 이겨내지 못하고 3m 언저리에서 올라오기 바빴고 첫 다이빙과 첫 슈트를 벗어던지며 편안히 실내수영이나 하자며 마음을 먹었었다.


사람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 지금은 매주 바다수영을 하면서 그 질긴 고무슈트를 입고 벗고 하고 있다. 깨끗한 제주바닷속 생물들은 물감을 섞어도 나올 수 없는 고유의 색을 뽐냈고 처음 보는 생김새에 눈을 떼지 못했다. 수면 위를 다니면서도 바다생물을 만나지만 더 깊은 바다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장비에 의존하지 않고 오직 나의 호흡만으로 유영하면서 바다세계의 생명들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벅차오름은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커질 것 같았다.


한 달 전 다이빙 잠수풀에서 두 번의 테스트 후 다이버들의 성지인 범섬에서 우리 아이다팀의 첫 경주가 시작됐다. 큰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는 모양을 닮아 범섬이라 이름 지어졌는데 옆의 문섬, 섶섬과 함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법환포구에서 배를 타고 들어갈 때는 심한 조류로 배가 들썩였지만 섬 근처로 가니 잔잔해졌다. 가까이 갈수록 멀리서 바라보던 작은 섬의 아름다움은 장엄하고 거대한 자연의 흔적으로 탈바꿈해 눈앞에 나타났다.


범섬 위에 도착

우리는 경주에 나설 채비를 했다. 체온을 유지시켜 주고 해파리로부터 몸을 보호해 줄 전신슈트와 마스크와 스노클, 그리고 조류에 대비한 롱핀을 챙겨 용감하게 입수를 했다. 빠른 적응을 위해 슈트 안으로 물을 넣고 물속으로 머리를 넣어 맑은 바다를 보는 순간, ‘오늘은 하늘이 내려준 날이구나!’를 직감했다. 너무나 깨끗한 시야에 보랏빛 산호는 몽글몽글 솜사탕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산호들

물속에서 신기한 것을 보면 서로 놓칠세라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여주는 우리의 상기된 얼굴이 마스크 렌즈 사이로 새어 나왔다.

섬 주변으로는 조류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벽 쪽으로 붙어서 다녔는데 깊은 수심과 색색의 산호는 평생 바다 옆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했다.


호랑이 항문이라는 별칭을 가진 동굴은 가까이에 가니 생각보다 높고 컸다. 검푸른 바닷속은 무서울 정도로 깊었다. 안쪽은 물고기 천지. 새끼 물고기들이 빼곡하게 모여 놀고 있었고 푸른빛이 드는 동굴 속에서 우리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리가 여기를 들어와 보다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일생일대 신기한 경험


동굴에서 나올 때쯤 물살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강사님의 진두지휘 아래 우리는 잔잔한 곳으로 빠져나왔고

본부로 돌아와 간식을 먹으며 후일담을 풀었다.

네오프렌 소재 슈트를 입어서 약간 추웠지만 앉아서 먹는 천혜향 주스와 거북이 한과는 에너지를 다 쓴 몸에 스펀지처럼 빨려 들어갔다. 돌아오는 차에서 기분 좋은 피곤함이 몰려온다. 호랑이굴에 제 발로 들어간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오늘을 후회 없이 즐겼다.


일 년 중 며칠 없을 날씨와 인생다이빙을 선사해 준 범섬에게, 마흔 넘어 바다의 맛을 알게 해 준 팀원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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