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포항행 비행기를 끊다
우리 딸들의 못 말리는 ‘축구’ 사랑은 할아버지가 세운 공이 전부다. 임원직을 떠나 프로축구팀을 맡게 된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클 때마다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보내주셨고 서울집, 제주집으로 다양한 축구용품들이 택배로 날아왔다. 아기 때부터 굴러다니는 공을 가지고 놀면서 선수들 이름도 외우고 할아버지 사인도 찾고 자연스레 스틸러스 서포터스가 되어있었다.
무한한 사랑에 보답하고자 주말에 있는 경기를 함께 보기 위해 제주-포항행 비행기를 끊었다. 제주로 내려와 바쁘다는 핑계로 3년 만에 가게 되어 죄송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금이라도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동생네 식구들도 일정을 맞춰 함께 내려와 보고 싶었던 조카와 만나 2박 3일 진하게 놀았다.
축구 좋아하는 손녀들을 위해 포항스틸러스 홈구장 VIP석 티켓을 준비해 놓으신 할아버지.
나도 어릴 때 축구 경기 보러 많이 다녔었지만 그때의 열기만큼 팬들의 응원 열기는 엄청났다. 부모님 따라 경기장에 오면 동네 사람들 다 모여 인사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흥분됐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그때 엄마 나이만큼 자란 딸들과 두 손 잡고 함께 와서 감회가 새로웠다.
스틸야드는 관중석과 경기장이 다른 구장보다 가까워 더 생동감 넘치는 경기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시즌 k리그 1위를 지켜내며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 포항으로서는 대전과 큰 격차로 승리를 예감했지만 경기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할아버지 옆에서 경기 흐름과 교체타이밍, 선수들 포지션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각자 집에서 보던 TV중계 보다 더 많은 것을 공감하며 배우고 느끼게 됐다.
전반전이 어렵게 끝나고 휴식시간 이벤트로 댄스타임이 열렸는데 누구한테 질세라 이미 춤을 추고 있는 딸들. 도대체 누구 흥 닮은 거니ㅎㅎ 박스석이라 뒤쪽에 관계자가 계셨기에 이미 카메라가 돌기 전부터 우리 차례가 올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 부석순 ‘파이팅 해야지’에 맞춰 신나게 흔들고 영덕 숙박권 당첨!
오랜만에 내 고향 포항에서 바다도 보고 단골식당에서 맛있는 회도 먹고 훌쩍 큰 조카 재롱에 시간이 후다닥 가버렸다. 다음 영덕여행을 기약하며… 글을 마무리하려고 하는 지금 제주문학관 책장에서 ‘호미곶 가는 길’이라는 책을 우연히 찾았다. 읽어보면서 고향에 대한 영감을 한번 얻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