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너무 건강했기 때문이다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평소에 너무나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잔병치레 한번 없었고 감기나 몸살이 와도 며칠만 앓으면 딱히 병원에 가지 않아도 나을 정도로 면역도 괜찮았다. 평소 술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중대질환이 있지도 않았다. 살면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거의 없으니 참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만 있으면 보험회사는 떼돈을 벌거라 여겼다. 그래서일까. 너무 안일했다.


내가 50 평생을 살면서 딱 한번 입원한 적이 있는데 40대의 어느 날 유방 맘모톰 시술을 하기 위해서였다. 내 기억엔 내 평생 거의 처음 입원이었다. 낯선 병원. 평소에도 병원을 잘 가지 않고 가급적 약도 안 먹고 싶어 하는 타입인 내게 병원은 너무 어색했다. 불편하고 생소한 다인실에서 1박 2일의 시간을 보내고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얼른 병원을 탈출하다시피 퇴원했다. 환우들과 질병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건강한데 간단한 시술을 받을 뿐이야. 암을 진단받은 당신들과는 달라.' 이런 거만한 마음이 있었음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두려움에 대한 회피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두려움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기회가 될 수도 있었던 그 순간은 내 삶 밖으로 힘없이 밀려났다.


40대에 유방에 이상소견이 있어 맘모톰 시술을 하면서도 유방암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았던 것은 평소의 어쭙잖은 상식들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를 출산하고, 모유수유를 하면 유방암 발생확률이 낮아진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나는 두 번의 출산을 했고 두 아이 모두 1년 이상 장기로 모유수유를 했다. 그렇게 공들여서 모유수유를 했기에 적어도 유방암만큼은 걸리지 않을 거야 확신했었던 것 같다.

맘모톰 시술 후 의사는 정기검진을 하라고 했다. 처음에는 몇 번 오라고 하는 대로 갔었다. 하지만 두어 번 별 이상이 없게 되자 또다시 안일한 마음이 들었다. 경각심이 시들시들해지고 이래저래 바쁜 일상에 슬슬 가지 않게 되었고 그런 상태로 몇 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날, 직장에서 12월 안에 건강검진을 완료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매년 가듯이 아무 생각 없이, 정말 연례행사처럼 병원을 찾았다.


검진 며칠 후 결과지를 받고도 놀랍지는 않았다. 가벼운 위염이나 과체중, 운동부족 뭐 이런 거는 늘 있던 거니까. 유방에 비대칭 소견 어쩌고 하면서 적힌 말들도 그냥 늘 적혀 있는 문구려니 싶었다. 예전에도 있던 그냥 성가신 문구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한번 읽은 우편물을 책상 위에 얹어놓고 그렇게 또 며칠이 지났다. 그런데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하라는 문자를 받았고 ‘아이, 참 성가시네’ 이런 마음으로 다시 초음파 검사를 했다.


결과를 듣는데 예전에 내 담당의가 병원을 그만두어서 다른 의사가 배정되었다. 이분은 예전 차트를 보시더니 고개를 갸웃하면서 나의 병변은 암 전단계여서 제거하는 것이 맞다고 하셨다. 왜 그때 제거를 하지 않고 두었지라고 하면서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한다.

“네? 수술을 해야 한다고요?”

당황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정신적 충격은 없었다. 뭐 큰 병도 아니고, 어차피 없애야 한다니 수술하면 되지 뭐 이런 마음이었다. 바쁜 직장에 어떻게 수술날짜를 잡지, 시간을 언제 뺄 수 있을까가 그때는 제일 고민이었다.

프리랜서 미술심리상담사로 이런저런 일정이 많았던 나는 스케줄 조정이 가장 어려웠다. 복지관 발달센터는 수업을 조정해서 보강계획을 잡고 매주 진행되는 회복모임은 한 주 빠지기로 했다. 그리고 또 중요하게 알릴 사람이 있었으니 ‘심리상담사’였다. 당시 나는 개인상담을 받던 중이었다. 현직 미술심리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전문상담사 자격 수련도 하던 중이어서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는 개인상담을 몇 시간 이상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기도 했다. 어차피 상담자로 일하려면 꾸준한 자기 성장을 위해 개인분석은 필요하기도 해서 나는 슈퍼바이저 상담사에게 매주 1회 상담을 받던 중이었고 나의 사정을 알려야 했다.


건강 때문에 수술을 하게 되었고 불가피하게 한주만 쉰다고 했을 때 상담사분은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죄송한 마음도 들었지만 나 역시 예상치 못한 내 삶의 뜻밖의 사건을 상담사분이 이해하고 포용해 주시니 안심이 되고 수용받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요. 그럼 한 주 쉬고 다음 주에 봐요.”

상담사의 인사에 잔잔한 위로를 느끼며 그렇게 나는 큰 걱정 없이 수술을 하러 갔다.

정작 사건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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