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냉전 중, 나는 상담 중, 암은 진행 중

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처음 상담실을 찾았을 때는 그냥 나란 어떤 사람인지 분석도 좀 하고 싶고 내 마음의 이런저런 과제들을 풀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나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상담사분이 계셔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을 시작하던 초기, 나는 남편과 냉전 중이었다. 결혼 생활 20년 동안 쌓여온 섭섭함들이 차곡차곡 억눌러져 몹시 토라진 상태였다. 내 얘기를 죽 들은 상담사가 남편과의 관계에 회복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나는 그게 너무나 암울한 일처럼 여겨졌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낼 수 없는 과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 그 당시 남편을 보는 내 심정은 그랬다.


“그냥 남편은 그대로 두고 나만 마음을 바꾸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묻는 마음에는 태산 같은 이 무거운 짐을 지지 않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 매듭은 아무리 풀려고 해도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 같다는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있었다. 부부관계라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돌아온 어느 날, 추가검진에서 의사로부터 수술을 권유받았다.


“나 수술해야 한 대. 첫날 보호자가 필요하다는데 당신 올 수 있어?”


질문을 던지면서도 내심 나는 남편이 안된다고 하면 이제 갓 스무 살이 되는 아들을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 당시는 그만큼 남편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 남편은 그런 나의 생각을 일축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내가 가야지.”


나와 남편 사이의 견고하던 얼음장이 파사삭 깨지는 순간이었다.

뜻밖이었다. 의외로 남편은 적극적으로 보호자 역할을 했다.

12월 마지막 날에 수술을 하고 병실에 입원을 해 있는데 남편이 회복 중인 내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 지나간 일은 모두 강물에 흘려보내고 이제 새롭게 살아보자.”

그 말은 우리 서로 모두 상처받았음을 이해하는 말이었다.

더 이상 자기만 옳았다고도 하지 않고 그 어떤 주장도 고집하지 않는 그 말이 조용히 내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병실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새해를 맞이했다.


냉담하던 남편이 왜 이런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나중에 알았다. 하나밖에 없는 마누라가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는 것이다. 남편은 어린 시절 어린 동생이 병으로 죽고 엄마가 자신을 버리고 가출했던 상처가 있어서 ‘상실’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응얼거리며 싸우는 못마땅한 마누라라도 마누라의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두려움이 되었던 거 같다. 두려운 만큼 남편은 적극적으로 간병을 했다.


수술 덕분에 뜻밖에 남편을 재발견하게 되었다고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담사도 잘 되었다고 반갑게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남편과 서로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같이 기뻐했다. 이 소중하고 친밀한 경험이 계속 깊어지도록 얘기를 해 주셨다. 그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행복했다. 솔직하게 말하면 신기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세요]

flower-7936549_1280.png


이전 01화내가 암에 걸린 이유는 너무 건강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