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환자를 살리는 심리상담 이야기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조직검사 결과를 들으러 보호자와 함께 내원하세요]
이 짧은 문장에서 내 귀에는 [보호자와 함께]라는 말이 탁 꽂혔다.
'보호자와 함께? 왜?'
싸한 느낌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의례히 하는 말일까? 아니면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만 하는 말일까? 수술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어?' 한참을 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하다가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기요, 보호자가 직장에 가야 하고 휴가를 내기 어려운 경우에는 어쩌나요?”
“그러면 친구분이라도 같이 오시면 좋아요. 혼자 듣는 것보다는 도움이 되거든요.”
‘아하, 뭔가 있구나’
간호사의 대답에 나는 올 것이 왔음을 예감했다. 놀랍도록 마음이 착 가라앉으며 차가워졌다.
'어쩌지? 어쩌긴. 암이면 암인대로 치료하면 되지. 요즘 암이 뭐 대수인가.'
두 가지나 되는 암을 치료하고서 유튜브 하시는 목사님도 생각났다. 요즘 암이 암인가 뭐. 백세시대에 흔해빠진 게 암이야. 나는 애써 스스로를 그렇게 다독였다. 괜찮다고 생각했고, 괜찮은 줄 알았다.
나의 직감대로 암이라고 했다. 떼어낸 조직 전체에서 다발성 암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기수는 높지 않지만 정확한 병기는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가슴 전체를 절제하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의사가 이번달로 이 병원을 그만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학병원의 다른 의사분을 소개해 주셨다. 이 모든 말들이 3단 뛰기 하는 파도처럼 턱, 턱 내 심장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의사 이름이 적힌 종이쪽지를 들고 멍하니 진료실을 나왔다.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어느 병원에 가야 할지, 어느 의사를 찾아야 할지, 서울로 가야 할지 계속 지방에서 치료를 해도 괜찮을지, 직장은 휴가를 낼지 퇴사를 할지 온통 혼란스러웠다. 추천받은 대학병원은 우리 집에서 제법 먼 곳이라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대학병원도 가기가 주저되는데 서울까지는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미친듯한 태풍이 몰아치고 있는데 나는 우산도 비옷도 없이 맨몸으로 거센 빗줄기를 때려 맞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 분야에는 정말 무지했고 정보가 없었다.
사람들은 모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한다
제일 처음 떠오른 것은 회복상담 모임의 한 멤버였다. 유방암 경험자였던 그 멤버에게 급히 전화를 해서 이런저런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찾아보니 유방암 카페가 있었고 오픈채팅방이 있었다. 허겁지겁 가입을 해서 병원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모여서 머리를 맞댐으로써 해결을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다. 내가 살면서 만난 문제들마다 꼭 비슷한 사람들의 모임이 있었다. 연약한 인간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지성이라는 방식을 발견한 것 같기도 했다.
당시 상담실에 가면 무거운 마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아직 울기에는 할 일이 많았으니까. 이런 나를 상담사는 담담히 위로했다. 그리고 격려했다. 매주 컨디션이 어떤지 세밀하게 물어봐주기도 했다. 사실 그때 첫 수술 후 퇴원하자마자 바로 직장복귀를 했는데 너무 힘들었었다. 오후 파트타임이었는데도 저녁에 퇴근하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생애 첫 수술의 후유증은 제법 간단치 않았다.
어느 정도 병원과 의사를 알아본 후 나는 상담사님께 말했다.
“선생님, 저 다시 수술하기로 해야 한대요. 이번엔 바로 복직 안 하고 요양병원에 가려고요. 한 달을 쉬어야 할거 같아요.”
상담을 쉬게 되어 죄송했지만 건강이 우선이라며 참 잘했다고 말해주는 상담사가 친정부모님만큼 든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