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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ngsu Siris Woo Dec 26. 2019

커피업계의 지속가능성은 꼭 농민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일까

당신과 나의 지속가능한 커피 한 잔을 위하여

비행기에서의 단상

 최근 출장 중에 비행기에서 이륙을 하고 몇 분 후 창문 너머로 보이는 몇몇 대형 화물선들을 보면서 '저 아래에 있는 사람들 덕분에 우리가 저 컨테이너 안에 있는 무언가를 누릴 수 있구나.. 참 감사하다.' 하는 생각을 했다.

 화물선, 갠트리 크레인, 컨테이너 야드만 봐도 막 가슴이 설레는 이상한 30대 중반 한국 사람으로서의 그 순간 창공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느꼈던 단상에 뒤늦게 살을 조금 보충해서 글을 써본다.

커피업계의 여러 담론들, 그중 제일 큰 키워드는 '생산자', '지속가능성'

 근래에는 커피업계 여기저기서 생산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물론 커피산업에 종사하고 이 산업에 대해 매일같이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작년부터 생산자들의 삶의 지속성과 관련하여 어려운 부분이 대두되는 부분에 적지 않게 공감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싶다.

 사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규모 생산자들(smallholder farmers)과 체리 피커들(cherry pickers)의 삶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데에 이견이 없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담론들이 지속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나 또한 이를 위해 고사리 손이라도 도움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생산자들 외에 이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잊혀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도 그들(또한 누군가에게는 우리들)의 이야기는 궁금해하지도 않고, 오히려 때로는 그들/우리들은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들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요즘은 감수성의 시대라, 남들처럼 감수성을 장착해서 이야기해보자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우리 모두가 가장 작은 단위로는 각자의 생계를 위해, 혹은 자아실현을 위해, 또는 공동체/지역의 발전을 위해,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니즈를 충족시키기 위해 각자의 현장에서 나름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최대한 단순하게, 그리고 긍정적인 면(순기능)만 가지고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면,

1. 하늘을 바라보며 정성을 다해 커피를 재배하는 농민들이 있으며,
2. 이 소농들이 잘 되도록 교육하고 지원하는 협동조합,
3. 그 협동조합과 개별 농민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국립/사립 연구소들과 프로그램 종사자들,
4. 생명을 담보로 오토바이/트럭으로 험한 계곡을 뚫고 수백 킬로의 체리 혹은 생두를 나르는 로컬 미들맨들 및 운송업자들,
5. 트럭으로 산을 넘고 강과 험한 바다를 건너고 하늘을 날아 커피 소비국들에게 최고의 커피를 소개하고 계약을 해주는 그린빈 바이어들,
6. 많은 자본과 노력을 투자하여 산지에서 커피를 가공하는, 결국은 최종 소비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밀러들과 쉽퍼들,
7. 천재지변이 만연한 험한 대양을 건너고 하늘을 날아 산지와 소비국을 연결시켜주는 선사와 항공사 관련 직원들,
8. 선적항에 도착한 컨테이너들을 최적의 효율성을 가지고 적재적소에 안치하는 항만 직원들,
9. 매일 낡아빠진 기계들과 무거운 Jute bag의 안전한 적재와 보관/입출고를 위해 씨름하는 보세창고 직원들,
10. 다양한 산지에서 온 생두들이 각각의 바이어들에게 제 때에 잘 인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관세사와 포워더들,
11. 위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고 조율하여 결국 산지와 소비국의 수입사/제조사들을 연결시켜주는 트레이더들,
12. 각 트레이더, 혹은 쉽퍼들로부터 생두를 수입하여 한국에 원활히 유통하는 유통사들과, 원두를 수입/제조하여 최종 소비자들이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조사들,
13. 유통사들로부터 각 시즌에 맞는 생두를 구매하여 맛있게 로스팅한 후 카페로 원두를 납품하는 로스터들,
14. 이 많은 과정을 거쳐 받은 원두를 맛있는 커피 한 잔으로 손님에게 제공하는 바리스타들과 카페,
15. 거국적으로, 커피라는 농산물(원자재)의 속성상 자연적으로 지니는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의 리스크를 각자가 헷징(hedging)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물거래소와 그 업무를 지원하는 다양한 금융기관들,

** 각 단계별로 역기능들이 있지만, 이 단계에서 사실 현대의 커피 산업이 겪는 문제가 다수 파생된다. 최대한 쉽게 요약하면, 선물거래소에서 많은 단기 거래가 발생하면서 복잡한 프로세싱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이 개발되었다. 이는 다른 트레이더들의 거래로부터 기인한 시장 차트, 즉 Technical Speculation(TS)이 이용되기 시작했다. TS의 문제는, 실물의 수요공급 상황과 펀더멘탈에 기반하지 않고 복잡한 알고리즘과 메커니즘에 기반한 TS가 트레이더들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고, 이러한 TS만 보는 트레이더들의 증가는 실질 레퍼런스보다는 알고리즘이 보여주는 가격을 레퍼런스로 삼아 실질 수급으로부터 멀어져, 결국은 한 재화의 선물 가격과 실물 가격의 부정적인 갭을 초래한다. 재미없는 부분이고 깊이 들어가려면 내 짧은 식견으로는 담아내기 어렵기에 각설하지만, 이 부분이야 말로 사실보다 많은 이들의 관심과 합의, 액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16. 부수적으로 이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모든 단계에 필요한 설비를 제조하는 기업들, 최적의 샘플링을 위한 빠른 배송을 책임져주는 특송업체들...

 지금 머릿속에 생각나는 부분만 적어봐도 우리 업계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반 소비자들이 마시는 작은 커피 한 잔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생산자들 외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관심도 없다. 물론, 나도 이들에 관한 이야기가 굳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어떠한 특정한 집단에게만 과도한 스포트라이트가 가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벌레 먹은 열매에만 집중하는 격이 될 수 있으며, 진실을 가린 채 감정에 치우친 대중들의 마음만 사로잡기에는 너무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에 우려가 된다. 나는 그저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과 기사들, 그리고 그를 바탕으로 한 다소 이상적인 담론이 많아지기를 항상 바란다.

C가격의 폭락의 최대 피해자는 누구인가?

 예를 들어보자, 작년 9월에 커피선물거래소 커피 선물가격(C Price)이 폭락했다. 이 이후로도 크게는 작년 12월, 그리고 금년 1월 이후로 역대 최저치를 확인했다. 그렇다면 모든 생산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악덕 글로벌 대기업들에게 커피체리 혹은 파치먼트를 헐값에 팔게 되었을까? 또한, 생산자들 외에 다른 value chain에 있는 많은 플레이어들이 원자재 가격의 폭락으로 잔뜩 저렴한 가격에 산지에서 생두를 매입하고 비싸게 시장에 판매하여 각자 수익을 나눠가지며 보너스 파티를 했을까? 그럼 최종 소비자들은 어떠한가. C가격이 폭락한 요즘 커피를 작년 여름보다 더 저렴하게 구입하거나 마실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오히려 C가격의 폭락은 선물거래 및 실물거래 규모가 큰 기관들과 쉽퍼들, 트레이더들에게 직접적이고 가장 큰 영향을 준다.

농민들의 적은 누구인가?

 C가격이 폭락하면서 인터넷 여기저기에서는 우는 농민들의 사진과 스토리들이 난무하지만, 실체가 아닌 경우가 대다수이며(C가격 폭락 때문에 농민들의 삶이 괴로워지는 것이 주 이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에 그러한 우는 농민들을 괴롭게 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개념인 C가격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그들을 괴롭히고 쥐어짜는 현지에서 커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머나먼 외국에 있는 사람들과 선물거래소에서는 사실 그 어려운 농민들의 삶을 괴롭게 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실제적으로 그렇게 관심도 없다. 그럼 또 많은 감정적인 사람들이 이렇게 항변할 수 있다, "현지에서 농민을 괴롭히는 사람들도 결국 다국적 기업들의 하수인이거나, 다국적 기업들이 쥐어짜서 어쩔 수 없이 그들보다 약한 농민들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냐!",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외침에 반대 증언을 해주는 근거들이 너무 많다. 물론 다국적기업들이 특정 산지에서는 약한 농민들을 괴롭히는 마케팅 에이전트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잘못된 이미지가 박혀있기는 하다.

 오히려 진짜 약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은 부패한 협동조합장 및 그 친인척들, 부패한 협회, 부패한 가공소(mills), 부패한 미들맨들이 바로 소농민들의 적이다. 재미있게도, 산지에서 외제차를 몇 대씩 소유하고 지역 유지처럼 사는 생산자 대표나 협동조합장은 흔히 볼 수 있어도, 선진국에서도 커피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 중에 외제차를 한 대라도 소유한 바리스타, 카페 주인, 커피업계 임직원을 보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또한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실질적으로 농민들뿐 아니라 커피업계의 공공의 적이자 친구는 기후이다. 기후에 대한 부분은 시간이 날 때 따로 글을 적어봐도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확실한 건, 다국적 기업들이 기후에 주는 악영향은 없으니 안심해도 된다.

다시 숲을 보며

 사실 세상은 모든 부분에서 유기적으로 돌아간다. 내 육신 하나도 수많은 장기와 조직들로 이루어져 있고, 한 가정도 그러한데, 하물며 육안으로 보이지도 않는 한 산업은 어떻겠는가.

 이 세상 대부분의 재화는 한 소비자에게 이르기까지 최소 2개국 이상을 거치는 것은 기본, 우리가 셀 수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그 수많은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언제나 한 집단, 한 객체에게 관심을 주는 것은 쉽다. 그렇지만 그 관심이 지나쳐서 다른 집단을 음해하거나 지나치게 무관심하다면 과연 우리는 유기적이고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그대도, 저 사람들도, 나도 지속 가능한 삶을 살 필요가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집중해주는 생산자들 외에 과연 다른 어떤 누구의 인생과 직업이 지속 가능하다고 확언할 수 있겠는가?

 나는 우리네 인생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생각 없이 말하는 것만큼 단순하지 않으며 불확실함의 연속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삶은 불확실하기에 지속가능성이란 것은 공동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또한 공동의 목표 외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서로 믿어주고 응원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걸어가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서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도 정직하게 열심히 살아준 많은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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