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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J Jan 19. 2022

신영복, <담론>

갈등의 시대에 전하고 싶은 말(談)과 글(論)

 바야흐로 갈등시대다. 세대, 남녀, 지역, 정치, 빈부. 분별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사회 어디에서든 갈등이라는 퀴퀴한 어둠이 암약하고 있다. 아득하지만, 상대 집단에 대한 조롱이 민족 고유의 풍자정신이라거나, 약자들이 부릴 수 있는 마지막 위악(爲惡)이라고 생각하며 시시덕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아집의 도가 지나쳐보이는 느낌이다.


 시절이 하수상한지라, 신영복 교수님의 저작이 개인사적 배경으로 인해 등한시되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50년 전 역사적 사건의 진실은 지금의 내가 알 길이 없다. 그렇지만 인문학에는 좌우가 없다. 정치적 진영론에 갇혀 인문적 통찰까지 마다하기에는,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이 작금의 시간에 갖는 의미가 대단히 매섭다.


 <담론>의 화두는 단연 저자가 출소 이래 일관되게 견지해 온 '관계론'이다. 관계론을 거칠게 정의한다면, 선형적인 인과론과 환원론으로 연결되는 근대적 존재론에서 벗어나, 관계라는 관점에서 새롭게 제시된 유연하고 종합적인 인식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탈근대의 맥락, 그리고 비근대의 조직화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던의 사조를 닮았다. 한국형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저자의 원숙한 사유에 누가 되는 단순화는 아닌지 모르겠다.


 관계론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 책의 전반부는 다양한 동양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이전 저작인 <강의>에서 상당 부분 다루어진 내용이기도 하다. 논어의 화동론, 맹자의 이양역지와 반구저기, 노자의 무위와 상선약수, 장자의 탈정 등 제자백가의 철학을 거침 없이 가로지르며 근대성을 해체하고 세계인식의 새로운 사유체계를 제시한다. 한편 책의 후반부에는 우리에게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익숙한 저자의 징역살이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이해, 그리고 자기성찰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말로만 인문학과 철학을 떠드는 사람은 많다. 신영복 교수님이 시대의 지성으로 존경을 받는 이유는, 본인의 사상을 삶으로 살아낸 실천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공부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슴이란 공감과 애정이다. 발은 실천과 자기변화다. 저자는 오랜 세월에 걸쳐 머리에서 발로 가는 공부를 했다. 그렇기에 관계론은 근본적 담론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이지 않고 현실의 냄새가 짙게 밴 삶의 실상으로 다가온다.


 무한경쟁, 무한갈등의 시대에, 스스로의 존재에서 탈주하여 사유의 출발점을 '관계'로 설정해야 한다는 저자의 목소리는 도시의 소음에 파묻힌 새들의 지저귐처럼 잘 들리지 않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해 뜨기 전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이다. 주어지는 매일을 끝없는 공부와 통절한 자기성찰의 기회로 삼고, 타자화된 관용을 넘어선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 간다면, 어김없이 새벽은 올 것으로 믿는다.


 <담론>의 말과 글은 저자께서 영면에 드시면서 결국 마지막 당부가 되고 말았다. 산사의 아침처럼 고요하고 청명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어 복되다. 신영복 교수님은 개인을 사표(師表)로 삼지 말고 집단지성을 키워가야 한다고 하셨지만, 유독 사회의 어른이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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