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취미가 없는 나에게도 매번 기다려지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일상에서 벗어나 먼 낯선 나라로 떠나는 휴가가 바로 그것이다. 보통 휴가를 떠나기까지의 정해진 루틴이 있다. 우선, 휴가를 떠나기 약 6~8개월 전 비행기표를 먼저 구매한다. 비행기표 구매와 함께 이미 마음은 목적지를 향해가는 비행기 안 그 어디쯤에 있다. 그다음으로 열심히 블로그 검색을 시작한다. 미리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이미 그 여행지의 모든 정보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머리 한편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여행을 마친 후 또 같은 일을 반복한다. 나의 1년을 크게 나눠본다면 여행 중인 날과 여행을 준비하는 날 그 둘로 나눌 수 있다. 그동안의 시간을 뒤돌아 보면 여행에 관련된 순간을 제외하곤 딱히 특별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
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는 모습에서도 나타나듯이 나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중 미래를 사는 사람에 가깝다. 기억하지 못하는 그 옛날 어느 순간부터 굳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들에 대한 많은 걱정들이 항상 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고 있다. 사소하게는 내일 하루를 어떻게 시작해서 어떤 일들로 정확하게 채워낼 것이며 마무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한 마치 내일의 삶을 축약해 미리 보기 하는 삶. 이러한 나의 성향이 주어진 오늘 하루를 기억나지 않는 별 볼 일 없는 일상으로 만든다는 사실은 진즉부터 깨닫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봐도 결국은 어쩔 수 없는 나의 성향인 것을 인정함으로써 어느 정도 불안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성향은 점점 지루해지는 일상의 반복과 부딪혀 공과 사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도 하루가 기대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출근 후 나의 업무에도 상당한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순간의 스트레스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의 업무가 주어지기 시작한다고 생각이 들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무리 급한 업무일지라도 담당자와 협의를 통해 납기를 어느 정도 조정할 수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납기'라는 단어에 숨이 막혀오기 시작했다. 분명 이러한 스트레스는 완벽한 미래를 꿈꾸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미래를 살고 있는 나를 현재로 데려올 수 있을까? 직장에 소속된 직장인들이 어떻게 해야 매일을 특별하게 살 수 있을까? 이러한 고민이 깊어 갈 때쯤 나의 삶에 조금 특별한 일탈을 생각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