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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6. 2019

특별하지 않아도

휴직 생활 일주일

드디어 오지 않을 것 같던 휴직의 날이 다가왔다.


며칠 동안 쌓여있던 일을 정리하고 인수인계 내용을 정리하며 그동안의 회사생활에서 손꼽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인수인계 메일을 발송했다. 굳이 동네방네 소문내고 싶지 않아 나름 친하다고 생각하는 선후배에게만 귀띔을 했었던 터라 나의 휴직 소식을 처음들은 회사 동료들의 연락이 쏟아졌다. 짐 정리를 하고 복직 후에 뵙겠노라 마지막 인사와 함께 덕담을 나누며 회사를 나섰다. 처음 해보는 휴직 준비라 잔뜩 긴장되어 있던 어깨를 쭉 펴고 하늘을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어 보았다. 오랜만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미세먼지 한점 없는 파란 하늘과 초록빛의 나무들이 성큼 다가온 여름을 알리고 있었다.


휴직자로써의 첫날과 이튿날은 평소 주말과 다름없는 시간으로 보냈다. 보통 주말에 그랬듯이 하루는 친구와의 약속으로 또 하루는 집 앞 카페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평소와 다를 바가 없는 일상으로 2일이 훌쩍 지나갔다.


휴직 3일 차, 평소와는 다른 월요일 아침이었다. 평소와 같이 기상시간 7시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지만 굳이 피곤한 몸을 꾸역꾸역 일으킬 필요가 없었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푹신한 이불에 몸을 폭 감싸고 한참 동안 천장을 바라보았다. 점심 즈음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갔다. 평일 한낮에 이렇게 시장에 사람이 많다니, 생각했던 것보다 활기찬 시장 분위기에 놀라고 말았다.


휴직 4일 차,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루를 보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집 거실에 누워 하루 종일 빈둥댔다. 내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었구나.


휴직 5일 차, 조조 영화를 보았다.  가장 잘 보이는 좌석에 앉아 콜라 한잔을 손에 든 채 요새 인기 있다는 영화를 관람했다. 이 얼마만의 평일 조조영화 인가. 그 어느 때보다 집중이 잘되는 영화 관람이었다. 왠지 이 순간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져 널리 알리고만 싶었다. '#조조영화..'  영화표를 한 장 찍어 SNS에 업로드해 마구 자랑을 했다. 그리곤 서점에 방문했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훑어보았다.


휴직 6일 차, 친구를 만났다. 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심지어 같은 시기에 취업을 한 신기할 만큼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다. 휴직의 고민을 하던 시기에 정말 많은 도움을 준 고마운 친구. 평일 오전에 카페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휴직 7일 차, 카페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다. 오랜 기간 회사생활을 하며, 내가 가장 좋아하게 된 시간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보내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었는데, 휴직으로 얻게 된 시간적 여유는 날 카페로 데려다 놓았다. 회사 책상에 앉아 경직된 자세로 업무 요청을 위한 글이 아닌 오로지 나의 생각을 손끝으로 적어 내려가는 이 순간. 휴직하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휴직 일주일을 지내며 깨닫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평소에 하지 못했지만 휴직하게 되면 꼭 해보겠다는 그 특별한 것'들은 막상 휴직을 해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 휴직하면 해보겠다던 '서울의 예쁜 브런치 카페에서 브런치 먹기', '훌쩍 기차여행 떠나기' 등.. 의 나름 버킷리스트였던 항목들은 아직까지도 마음 한켠의 리스트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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