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미야, 막내 오라고 해라!
길 모퉁이에 정육점이랑 건너편 순댓국 집에 송편 좀 갖다 줘라!
친할머니는 손이 큰 음식 솜씨가 좋으신 분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 아버지 전부터 왕십리에 살았었고, 왕십리 재래시장 앞에 친할머니와 고모네, 그리고 우리 집이 옹기종기 모여 살았었다. 며느리인 엄마는 힘드셨겠지만, 난 어릴 적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신나게 놀던 때였던 게 확실하다.
대부분 할머니네 집에 수시로 모였지만, 명절 때가 되면 작은집 식구들까지 모여서 빈대떡을 굽고 송편을 직접 빚어 먹으며 먹거리 잔치를 했다. 기름 냄새와 솔잎으로 쪄내는 구수한 송편 냄새는 왕십리 골목을 누볐고, 할머니는 애미의 막내인 나에게 늘 배달 심부름을 시키셨다.
소금 간을 한 맵쌀 가루를 대야에 붓는다.
반으로 나누어 하얀 쌀가루와 쑥이 들어간 초록 쌀가루로 나눈다. 작은엄마는 이것저것 심부름을, 고모는 송편에 들어가는 부 재료를 맡으셨다. 쑥은 연한 잎으로 골라 끓는 물에 소금 간하여 데쳐내어 절구로 곱게 찧어낸다. 흰 쌀 대야는 엄마가, 쑥 쌀 대야는 할머니다 맡아 치댔었다. 오래 치대야 맛있는 송편이 된다. 할머니는 다른 누구도 떡을 치대지 못하게 하셨다. 할머니 자신과 애미만이 떡 치대는 자격조건을 갖고 있다고 믿으셨다. 풋콩은 삶아서 소금을 뿌려 놓는다. 깨는 볶아 빻아 꿀로 버무려 놓는다.
이다음부터는 우리 집, 고모네, 작은집까지 사촌들까지 둘러앉아 송편을 빚기 시작한다. 떡 반죽을 밤알만큼 떼어 둥글게 빚은 다음 가운데 우물처럼 파서 그 안에 콩이나 깨 소를 넣고 오므려 반달 모양으로 예쁘게 빚는다. 할머니는 매번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셨다. 시루에 깨끗하게 씻어 놓은 솔잎을 깔고 빚은 송편이 서로 붙지 않게 놓는다. 솔잎, 송편, 솔잎, 송편을 반복해서 담고 쪄낸다. 다 쪄낸 송편은 대야에 다시 담고 엄마는 참기름을 뿌리고 할머니는 그 투박한 손으로 떡 사이 참기름이 잘 비벼지도록 버무린다.
몇십 년 전의 기억이지만, 그 고소한 참기름 냄새와 솔향은 아직도 내 코에 머물러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종종 나의 아침식사는 크루아상과 커피였다.
집에서 밥 먹을 시간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잦아지면서 생겨난 아침 버릇이었다. 나에겐 값비싼 또는 아무리 강남 유명 제과점이라 하더라도 그 빵집의 기준은 크루아상이었다. 마치 중국집의 맛집 기준이 요리가 아닌 짜장면과 같은 이치였다. 너무 달아도, 기름져도, 너무 바삭하거나 촉촉해도 안된다. 크루아상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적당한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우수수 떨어지는 페스츄리만이 누릴 수 있는 부스러기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턱 밑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무심한 듯 툭툭 털어내며 마시는 커피 한 모금은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었다.
유학시절에도 역시 크루아상과 커피는 나의 아침을 맡아주었다.
크루아상과 커피 푸드카트한국과 같이 제과점에서 파는 빵이 아닌, 뉴욕의 크루아상과 커피는 길거리에 있는 푸드 카트에서였다. 가장 싸고 가장 맛있었다. 프랑스의 유명한 카페에서 막 구워낸 맛은 아니지만, 주머니 가벼운 유학생에겐 바닥에 떨어진 크루아상 부스러기를 먹고 있는 뉴욕 비둘기와 함께 하는 아침식사는 그 어떤 밥상도 부럽지 않았다.
며칠 전 엄마가, 맛있지만 멀어서 자주 못 가시는 떡집에 다녀오셨단다.
친정 집에 들러서 송편을 가져가라고 하셨다. 엄마도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집에서 송편 빚어 먹는 것을 멈추셨다. 몇 년 전 팔순을 넘기셨지만, 추석이 다가오니 엄마도 그 옛날 할머니 송편이 그리웠나 보다. 친정 집에 송편을 가지러 가니, 송편과 크루아상을 주셨다.
기분이 묘해졌다.
한 편의 어릴 적 기억이 솟아났고, 또 한 편의 젊은 날 길거리 아침식사가 생각났다.
송편은 반달 모양이고 크루아상은 초승달 모양으로 ‘초승달’이라는 뜻이다. 둘 다 ‘달’과 상관관계였다. 송편과 크루아상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추억이 있는 먹거리이지만, 단 한 번도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송편을 한 입 베어 무니 잘 익은 풋콩과 쫄깃함이 살아있었다. 크루아상을 한입 먹어보니 빵 안이 텅 빈 바삭함에 두 눈이 번쩍 떠졌다. 두 가지 맛의 처음 경험이었지만, 그 조화가 나쁘지는 않았다. 단지, 송편에 막걸리를 먹어야 할지, 크루아상에 커피를 마셔야 할지가 고민이었다.
추석인 일주일 후에 떠오를 꽉 찬 보름달(만월 滿月)을 생각하며
반달(반월 半月) 송편과 초승달(초월 初月) 크루아상의 조화를 입에서 받아들이고 있는 하루였다.
크루아상(croissant)은 프랑스어로 ‘초승달(crecent)’을 의미한다. 초승달처럼 생긴 페이스트리의 모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크루아상은 프랑스 빵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시작은 17세기 오스트리아 빈에서이다. 1683년 오스트리아 빈을 침공하려던 오스만 제국은 한밤중에 몰래 빈으로 침입을 시도했다. 하지만 밤새워 일하던 제빵사인 피터 벤더(Peter Wender)가 이러한 움직임을 알고 오스트리아 군에 알려서 결국 오스트리아는 전쟁에서 승리를 할 수 있었다. 이후 전쟁 승리를 기념하고 제빵사의 공을 기리기 위해 오스만 제국 국기에 그려진 초승달 모양으로 빵을 구울 특권을 그에게 부여하면서 크루아상이 탄생하였다.
이 초승달 모양의 빵은 1774년 합스부르크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루이 16세와 결혼하면서 프랑스에 전해졌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따라온 오스트리아 제빵사들이 초승달 모양의 빵을 프랑스 왕궁에 소개하였고, 큰 호응을 얻게 되어 이후로 이 빵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을 뜻하는 크루아상이라 불리게 되었다. – 건강 백과 크루아상 이야기 중
추석 차례는 철 이르게 익는 벼인 올벼로 만든 오려 송편과 햅쌀로 만든 술과 햇과일, 햇곡식으로 만든 음식과 토란국 등을 올린다. –p38
우리의 조상들은 상고시대부터 떡을 만들어서 즐겨 왔으며 지금까지도 집안의 잔치나 큰일이 있을 때는 떡을 만들어 이웃과 나누어 먹는 풍습이 남아 있다. 떡의 재료는 맵쌀, 찹쌀 등이 주재료이고, 고물로는 콩, 팥, 녹두, 깨 등을 쓰며 고명으로 대추, 밤, 잣 등이 쓰인다. 떡을 만드는 방법에 따라 분류하면 가장 많은 떡은 시루에 떡가루를 안쳐서 찌는 떡인 증병으로 각색 편, 팥시루떡, 백설기 등이 이에 속한다. 곡물을 쪄서 이를 다시 절구에 넣어 끈기 나게 치는 떡은 조병이라 하며 절편, 인절미 등이 있다. 곡물가루를 물을 넣어 반죽하여 빚은 떡인 물 편으로는 송편, 경단, 단자 등이 있다. – p338
참조 : <3대가 쓴 한국의 전통음식, 황혜성ᆞ한복려 저, 교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