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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톱달방랑자 Apr 28. 2021

꽃보다 아름다워.

취향에 관하여 #5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것들은 아주 사소한 것일 때가 많다. 마음에 드는 노래 한 곡, 마음을 적시는 책 한 권, 좋은 향기, 푸르른 하늘, 그리고 꽃. 산에 들에 피어있는 꽃들이 예뻐 보이기 시작하면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라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이미 호호 할머니가 되어있어야 맞지 않을까? 꽃을 좋아하는 건 아주 오래되고 유구한 나의 취향이다. “그중 무슨 꽃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고민이 시작되겠지만. 정말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게 좋다. 꽃이라는 건.


어딘가에서 읽었던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꽃이 비싼 건 그 꽃 한 송이를 피우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의 값이라고. 어린 왕자와 장미의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는 문장이었는데,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나는 꽃 선물에는 고르는 이의 시간과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느 선물이 그렇지 않겠냐만은, 꽃 선물은 유독 그런 기분이 든다. 꽃집에서 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나오는 것도 많은 고민이 필요하고, 직접 고른 꽃으로 꽃다발을 만드는 일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선물 받는 게 아니더라도 꽃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언젠가 내 작업 공간을 만들게 된다면 한 켠에는 꽃집을, 한 켠에는 카페를, 한 켠에는 작은 갤러리를 두고 싶다고 막연한 꿈을 꿀 정도니 말 다 했지.


봄이면 벚꽃, 여름이면 장미, 가을이면 코스모스, 겨울이면 매화. 철마다 피어나는 꽃들을 보면 대견하기까지 하다. 꽃망울이 터져 나오기 직전의 꽃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응원을 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꽃들은 꺾어서 간직하기보다, 제 온 힘을 다해 피고 지기를 지켜보고 싶어 지게 된다.


기분이 울적한 날이면 가끔 꽃시장에 들르고는 한다. 파리에 있을 때에는 꽃시장이 멀기도 하고, 그야말로 새벽시장이라 차 없이는 가기 어려운 곳이었기 때문에, 대신 일주일에 한 번씩 참새가 방앗간에 들리듯 꽃집에서 꽃을 한 아름 사들고 돌아오고는 했다. “그냥 줄까? 아니면 꽃다발로 만들어줄까?”하고 묻는 꽃집 주인에게 “그냥 줘.”라는 대답을 하면, 큰 크라프트지에 내가 고른 꽃을 돌돌 말아 안겨주는데, 그걸 품에 한아름 안고 돌아오는 길이면 마음이 그렇게나 풍족할 수가 없었다. 사실 꽃집에 있는 꽃 종류라는 게 계절이 바뀌지 않으면 비슷비슷하기 마련이어서, 나는 매주 다른 꽃집을 탐험하듯 돌아다녔다. 흔하지 않은 꽃을 발견하면 뛸 듯이 기쁘기도 했고. 그렇게 골라든 꽃들은 일주일 동안 우리 집 곳곳을 빛내기도 했고, 나의 포토존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눈 떠서 그냥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선물하기도 했고, 생명을 다해 시들어갈 때면 괜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렇게 꽤 자주 꽃집을 드나들며 알게 된 내 꽃 취향은 이러했다. 알이 단단한 장미보다는 하늘하늘한 라넌큘러스나 작약이 좋았다. 작약 중에서는 겹겹이 드레스처럼 뒤로 젖혀져 피는 것보다는 안에 술이 들어찬 색이 짙은, 모란에 가까운 것이 좋고. 망고 튤립이니, 겹튤립이니 하는 것보다는 심플한 기본 튤립이 좋다. 메인 꽃은 아니지만, 초록이들 중에서는 유칼립투스, 그중에서도 폴리안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글동글하고 하늘하늘한 것이 좋다. 벚꽃보다는 매화가 좋고, 크고 알이 굵은 꽃들보다는 들꽃처럼 섬세한 작은 꽃들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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