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맞는 회사를 4년 만에 떠나는 이유”
맞다, 3년 하고도 9개월 정도 근무했던 회사를 퇴사했다.
“아니, 왜 잘 맞는 회사인 거 같은데, 퇴사를 하세요?” 내가 퇴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지인들은 조금은 놀란 표정으로 주로 저런 대답을 한다. 뭐 인정한다. 내가 생각해도 다녔던 회사와 내 궁합은 잘 맞았으니까. 더군다나 같이 일했던 동료들과 대표님과의 사이도 좋았기에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퇴사를 하고 이렇게 퇴사를 위한 변명을 글로 쓰는 것만 봐도 말이다. 하지만 잘 맞는 것과는 별개로 ’ 일‘이라 함은 ’ 성장‘과 ’ 구조‘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하는 분야라 생각하는 편이기에 오랜, 그리고 깊은 사유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내가 하는 일은 식음료산업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매니저의 일을 했다. 산업에서의 트렌드를 보면서, 어떤 내용과 주제를 교육으로 만들어야 할까 고민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주제에 맞게 전문가들을 섭외하고 수강생들을 모객하고 운영했다. 식음료 산업에 연관된 약 200명 정도의 전문가들과 년에 약 500~700명 정도의 수강생을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수많은 업계 선배님들과 말을 섞고, 같이 산업에 대한 이야기 할 수 있는 꿈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하는 업무와 역할도 좋은 성과가 있던 편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인정받아 사실상 내 내 경력에는 과분한 팀장이라는 직책을 받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24년의 절반이 채 지나가기도 전에 스스로 “나 지금 괜찮은가?”라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무난한 회사생활, 좋은 동료들과의 관계, 삶이 안정적으로 보전되는 회사생활까지 어쩌면 완벽에 가까운 시기였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목이 말라 물을 마셔도 목마름이 가시지 않는 뻑뻑한 기분은 괜찮은 것들까지 잡아먹는 것 같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나는 이 생활을 만족하지 못하고 있을까?”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떤 일인가에 대한 깊은 생각을 시작했다. 아니, 관점을 바꿔보려 했다는 말이 더 적확하겠다. 관점은 관찰의 방향이라는 뜻이니 방향을 바꿔보려 노력했다.
나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지? 명함에는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f&b교육기획’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또 ‘기획’은 뭐지? 기획이라는 직무에 대해 고민해 보기 시작했던 시기가 바로 그 시기였다. 나는 무엇을 ’ 기획‘으로 정의하고 일하고 있는가? 생각해 보면 지난날 나는 일을 그냥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어쩌면 누군가가 정의한 틀 안에서 일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아직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퇴사라는 결정은 그 답을 찾는 과정에 불가피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있던 회사에서 그 답을 찾는 건 어려웠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를 좋게 생각해 주는 사람과 회사를 떠나고 싶은 사람을 없을 터, 성장이 멈춘 그 느낌과 목마름의 원인을 하루라도 빨리 찾아 없애고 싶었지만 게으른 몸뚱이는 그저 아닐 하게 흘러갔다. 집중력이 떨어진 채 일을 한 탓이었을까? 아니면 진짜 그 시기의 불경기 때문이었을까, 마침 당연하게 생각된 성과들도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었고 그 좌절감은 당당했던 내 온몸 곳곳에 스며들어 혼란했던 생각을 더 흔들어놓았다. “내가 했던 것들이 내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 순간 ”나는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 에 대한 판단이 점차 진해지고 있었다. 좋게 말해 ‘감각’으로 진행된 과거의 것들은 ‘동기‘를 잃어버린 사람에겐 ‘사치‘였다.
“팀장님은 정말 친절하고 태도가 좋아”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들과 자주 맞닿는 일이다 보니 그런 역할이 많았던 덕이기도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고 한다. 그 말에 보답이라도 하듯 나는 어떻게 더 친절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더 좋은 태도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물론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는 야비했던 것 같다. 내가 ’ 기획‘이라는 부분에 정면승부를 할 수 없었으니까, 자신이 없었으니까, 이거라도 급급하게 인정받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 인정만 받고 살았던 사람은 조금만 인정을 못 받을 때 그 인정을 받기 위해 자신을 태우기도 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매일매일이 야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악순환이라는 말이 있다. 원인과 결과가 반복되면서 계속해서 상황이 악화되는 일을 말한다. 회사에서의 나는 딱 그 상황이었다. 겉으로는 전혀 티 나지 않았겠지만, 속에서부터 시작된 “내 일은 무엇인가?”에 대한 심오한 고찰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으면서 말 그대로의 악순환이 계속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겉으로는 더욱 친절했다. 왜냐면 나는 야비함을 선택한 거니까, 스스로 비굴해진 결정들은 온몸에 스며들어 좌절감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난 스스로를 무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회사에서의 새로움과 도전은 부정적으로 생각했고, 알면 뭐 안다고, 세상 가장 현명한 사람처럼 둔갑하며 그 부정에 대한 합리화를 해나갔다. “지금 내가 아닌, 다른 직원이라면 행동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싫었다. 상황은 계속됐고, 마음을 잘 추스르지 못한 나는 결국 조금씩 회사와 거리를 뒀다.
빨간색 색안경을 끼면 세상은 빨간색으로 보인다. 특히나 그 색이 하얗고 깨끗할수록 더욱 빨강으로 보인다. 회사와의 거리감은 스스로 색안경을 씌웠다. 당연했던 것들도 당연해 보이지 않았고, 상식적인 호의도 꼬아서 보아지기도 했다. 직원들과의 이야기에서도 긍정적이고 좋은 에너지보다는 희망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스스로는 이 모든 원인이 내 속의 색안경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안경이 좀처럼 벗겨지지가 않았다. 그 안경이 스스로를 게으르게, 비굴하게 만드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정정당당하고 싶었던 모습과는 멀어진 상황이 점점 태도로 드러남을 알게 된 순간, 나는 퇴사를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 저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
“왜,,? 무슨 문제가 있니?”
평소 대표님께 꽤 솔직한 편이라 그간 느낀 이야기를 꺼내놓았고, 대표님은 다행히 이해해 주셨다. 사실 직원과 대표의 대화라기보다는 먼저 길을 걸어준 선배와 칭얼대는 후배와의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명분이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스로 그 의미를 자주 되뇌는 편이기도 하다. 회사에서도 역시나 그 ‘명분’이 내 발목을 잡을 때가 많다. 퇴사의 이유? 라 한다면 이 회사를 더 다닐 명분을 못 찾겠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싫고, 못나고, 힘들고 와는 다른 문제다. 스스로 떳떳하지 않다는 감정, 그것이 나를 이빨에 낀 고기처럼 신경 쓰이게 만들었다. 생각이 많을 땐 오히려 문제를 간단하게 만들어서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지? 솔직해지면 간단할 일이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 뭐 하고 싶어?”
“나, 도전하고 싶어 위험하지만 해보고 싶어”
“지금 하는 일은 너에게 자극이 안되니?”
“좋은 일이지, 재밌는 일이고. “
“뭐가 문제야?”
“지금 일은 스스로 위험함을 못 느낀다는 게 문제야. 지금은 위험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다른 회사로 이직하고 싶다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곳은 내게 너무 안전하다는 게 문제야.
“그거 너무 배부른 소리 아냐?”
“…”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건 어쩌면 세상의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난 나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뭘 하고 싶은 사람이고, 뭘 추구하는 사람인지 더 명확하게 정의하고 싶거든. “
“그게 회피 아닐까?”
“맞아 그게 회피일지도 모르지, 그런데 오히려 난 부딪히는 과정을 겪고 싶어. 그게 내 명분을 만들어줄 거 같거든”
한 사람의 일은 그 사람의 책임과 선택의 연속으로 만들어짐을 믿는다. 그렇기에 지금 어떤 책임을 지고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일을 결정한다. 나는 지금 어떤 책임과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사람일까, 답이 나오지 않으면 보는 시야와 관점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내 퇴사는 이러한 명분으로 시작했다.
“대표님, 지난 4년 동안 많은 성장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제스스로의 명분을 위해 움직이려 합니다. 더 부딪히고, 깨지고, 도전할 수 있는 곳으로요. 그렇기에 제가 그냥 그런 퇴사생이라 생각지 말아 주세요. 오히려 졸업생이라 생각해 주세요. 졸업생처럼 자주 찾아뵙고 연락드리겠습니다. 회사가 부끄럽지 않을 졸업생이 될게요. “
아름다운 퇴사란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명분이 있는 퇴사는 끝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임을 믿는다. 앞으로의 선택이 걱정되지만, 어쩐지 든든하다. 회사생활은 갑과 을의 구조로만 판단될게 아니다. 회사생활은 ‘일’이란 영역에서 나와 관계 맺는 인연과 조직이다. 내 일이 소중하다면 그 인연과 조직은 단순한 구조로만 치부되서는 안된다. 모든 인연은 소중하게 세심하게 잘 다뤄야 함을 더욱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