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은 전략, 브랜딩은 철학
제목이 자극적이라 불편한 마음으로 이 글을 클릭하신 분들께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 먼저 전합니다. 그래도 이 글을 읽다 보면, 제가 가진 생각에 일정 부분이라도 동의하게 되실 거라 생각합니다.
사실 저는 [브랜드 전략], [브랜딩 전략]의 표현을 싫어합니다.
‘전략’이라는 단어의 뜻을 곱씹어 보면, 아마도 고개가 끄덕여지실 겁니다. 전략은 戰略입니다. ‘싸움 전’에 ‘공략할 략’입니다. 심지어 ‘공략할 략’에는 ‘밭 전’도 들어가 있습니다.
‘남의 밭을 공략하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싸울 것인가’. 이것이 ‘전략’이라는 단어의 함의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략은 무시무시한 단어입니다. 남과 싸워서 이길 준비를 하고 있는, 배타적인 언어입니다.
물론 시장 경제의 원리에 따라, 선택을 받는 브랜드가 있으면 선택을 받지 못하는 브랜드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브랜드가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태어날 뿐, 태생부터 남을 죽일 목적으로 탄생하지는 않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설령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예외 브랜드에 한해서만 ‘전략’과 어울리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저는 [마케팅 전략], [디자인 전략] 등과는 다르게 브랜드는 전략 따위가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는 전략이 아닙니다. 브랜드는 철학입니다. 브랜드 필로소피, 즉 그들의 철학을 잘 ‘표현’ 하기 위한 여러 방법들을 강구할 뿐입니다.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이나모리 가즈오는 늘 필로소피를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본 기업 사상 최대 규모인 2조 3000억 엔의 부채로 파산한 일본항공 JAL을 재건시키기 위해 회장으로 재임하게 되었는데요.
2010년, JAL에 무보수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나모리 회장이 곧바로 착수한 건, 다름 아닌 ‘필로소피 제대로 세우기’였습니다. 그렇게 그가 새로 세운 JAL 필로소피를 각 부문의 직원들이 조례 시간에 돌려가며 읽었다고 하죠.
이나모리 가즈오의 저서 <왜 리더인가>에도 “리더가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구성원들에게 이른바 ‘필로소피’를 전하는 일이다.”라고 기술되어 있습니다.
나는 철학이 없는 사람과는 함께 일하지 않는다
- 이나모리 가즈오, <왜 리더인가> 중
그런데 철학이란 무엇일까요? 이나모리 가즈오의 필로소피를 확인하지 못한 입장으로서는 철학이 아직까지 다소 모호합니다. 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철학’을 따분하고 지루한 것이라 받아들이다 보니, 대단히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최진석 철학과 교수는 <탁월한 사유의 시선>이라는 책을 통해서 철학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깨 주었습니다.
철학이란 철학자들이 남긴 내용을 숙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자기 삶의 격을 철학적인 시선의 높이에서 결정하고 행위하는 것, 그 실천적 영역을 의미한다.
- 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중
최진석 교수가 언급한 것처럼, 철학은 실천의 방향을 의미합니다. 브랜드가 어떻게 표현하고 행동해야 할지, 기준점이 되어주는 것이 바로 브랜드의 철학인 셈입니다.
죄를 뜻하는 ‘sin’의 어원은 ’과녁을 벗어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목적과 목표를 벗어난 행동이 죄를 부른다고 말하고 싶었던 선조들의 혜안이 아닐까 싶습니다.
브랜드 비전과 브랜드 미션은 브랜드가 엇나가는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합니다.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 놓으니, 이는 당연한 처사겠지요.
다만, 많은 분들이 브랜드 비전과 브랜드 미션을 혼용합니다. 단어의 뉘앙스가 비슷해서, 둘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하여 아래에 간단히 정리해 보았습니다.
브랜드 비전은 ’어떤 문제를 해결해서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가?‘
브랜드가 바라보는 긍정적 미래입니다.
브랜드 미션은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
브랜드가 해결해야 할 궁극적 문제입니다.
여기에 <팬을 만드는 마케팅>의 문영호 저자는 ’브랜드 약속‘을 추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는 고객에게 어떤 약속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죠. 책의 내용에 따르면 이 브랜드 약속을 정할 때는 반드시 3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합니다.
1) 업계 1위가 하지 않은 약속을 한다.
2) 내가 하고 싶은 약속이 아닌, 고객 입장에서 필요한 약속을 한다.
3) 브랜드 약속을 통해 고객이 우리를 더 좋아할지 고민한다.
이렇게 브랜드 비전과 미션에 이어 브랜드 약속까지 잘 정리를 하게 되면, 브랜드 필로소피는 자연스럽게 정립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실천하지 않으면 철학이 아무 의미 없듯이, 브랜드의 생사여부도 필로소피의 실천에 달려있지만요.
그럼 이번 글도 요약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1) 브랜드는 전략이 아닌, 철학이 어울린다.
2) 철학을 한다는 것은 실천의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3) 브랜드는 비전, 미션, 약속 등을 통해 필로소피를 가꾼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브랜딩 관련한 깊이 있는 글로 다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