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鬼神) 씻나락 까먹는 소리
우리 그림에는 귀신이 없다.
[김홍도 필/낭원투도/49.8*102.1/종이에 담채/간송미술관.
이 그림은 한 번 먹으면 1000 갑자를 산다는 복숭아(반도)를 훔쳐 먹은 동방삭이란 신선을 그린 것이다.]
낭원투도(閬苑渝桃)는 ‘낭원에서 신성한 복숭아를 훔치다.’라는 뜻이다.
낭원은 중국 곤륜산에 있다는 여신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 이름이다.
여기에 있는 신성한 복숭아를 하나 먹으면 1천 갑자를 산다고 한다. 개구쟁이 신선인 동방삭은 이런 복숭아를 세 개를 훔쳐 먹고 3천 갑자, 18만 년을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단원 김홍도 그림 속 인물이 동방삭인지 아닌지는 명쾌하지 않다.
만약 동방삭을 그렸다면 신성한 복숭아를 들고 기뻐하는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런데 인물은 웃거나 기쁜 표정이 아니다.
인물은 복숭아를 들고 만지면서 꼼꼼히 바라보고 있다.
복숭아를 훔쳤으면 도망가야 하는데, 엉덩이를 뒤로 빼고 엉거주춤 뒷걸음치는 자세를 하고 있다.
보통 이런 모습은 부정하거나 의심할 때 나타난다.
1700년대 후반의 선비였던 홍대용이나 연암 박지원 같은 북학파 선비들은 서양 천문학에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구는 둥글며 태양의 주위를 타원형으로 돈다는 사실부터 공전주기와 시간까지 정확히 알았다.
중국에 있는 천주교 성당에 그려진 성화를 보고 아주 불쾌했다는 기록도 있다.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고 있는 천사의 모습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평균 수명이 60세 전후였는데, 그깟 복숭아를 먹었다고 18만 년을 산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선비들은 하늘을 날아다니고 도술을 부리는 존재인 귀신 따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를 믿거나 따르는 사람들을 경멸했다.
그림 속 인물은 동방삭의 모습을 빌린 조선의 선비일 것이다.
‘과연 이 복숭아를 먹으면 불로장생할 수 있을까? 천도복숭아가 있기나 한 건가? 정말 그것을 믿는단 말인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자(朱子, 朱熹)는 바로 장자의 기론적 생사관에서 그 대안을 찾았다.
귀신이란 기(氣)의 변용태이지 내세의 어떤 존재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세의 존재는 없다. 인간은 죽으면 자손을 남길 뿐이고, 그 확정된 외연인 사회만이 남을 뿐이다.
결국 사후에 믿을 것도 이들뿐이며, 사후에 생전의 나를 평가할 이들도 이들뿐이다.’
[조선의 힘/오항녕/역사비평사/2010]
귀신은 기가 변해서 이상한 모양이 된 것이다.
성리학에서 기(氣)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하나는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이라는 인간의 감정과 욕망이다.
둘은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현실 사회, 속세이다.
결국 귀신은 현실과 인간의 감정이 얽혀 만들어낸 허상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러한 성리학을 내면화하는데 근 100여 년이 걸렸다.
중종 때 조광조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관청인 ‘소격서’를 철폐하였고, 궁궐에서 미신이 믿는 일체의 행위를 격렬히 반대했다.
그래서인지 수묵화든, 채색화든 간에 귀신을 그린 작품은 거의 없다.
조선 후기, [신선도], [요지연도] 따위의 그림들이 청나라로부터 수용된다. 이런 그림은 지극히 도교, 미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김홍도/군선도(群仙圖)/종이에 담채/1776/국보 제139호/호암미술관.
이 그림은 8폭으로 모두 연결한 상태에서 가로 575.8㎝, 세로 132.8㎝의 크기이다.
그림의 일부는 훼손되고 잘라나갔다.
화선지에 먹을 주로 사용하고 청색, 갈색, 주홍색 따위로 담채로 채색하였다.
그림 속에 나오는 신선들은 대부분 중국에서 유래했다. 도교적인 요소가 다분하지만 선비들은 신선을 군자의 상징으로 수용했다.]
단원 김홍도는 [풍속화]가 아니라 [신선도]의 대가였다.
7m가 넘는 [신선도]를 단박에 그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실제 김홍도는 여러 신선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중국에서 전래한 신선들의 이야기에는 돈과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언제나 백성들을 돕고 함께 한 존재로 표현된다.
[신선도]에 등장하는 여러 신선들은 선비나 군자의 또 다른 이름으로 수용한 것이다.
정조 때 규장각 검서관을 지낸 이덕무(李德懋)는 ‘깨끗하고 맑은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하루에 몇 번이라도 신선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유학에서는 절대적 존재나 하느님 같은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그림에 신적 존재를 표현한 경우는 없다.
신이 없는데 귀신이 있겠는가.
우리가 알고 있는 귀신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이나 외국에서 수입된 것이다.
흔히 ‘도깨비’는 산적처럼 용모가 단정하지 못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런 도깨비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의 ‘오니’로 변한 것이다.
아무튼, 우리 그림에는 귀신이 표현되어 있지 않고 특별한 연관성도 없다.
그림에 등장하는 동식물이나 사물은 숭배의 대상인 토템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의 은유나 상징일 뿐이다.
귀신이 등장하거나 미신적인 요소가 있는 그림의 예술적 가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인문학적 가치가 없는 그림은 비싼 쓰레기 취급을 한다.
인간의 삶은, 실체가 없는 허망한 귀신이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의해 규정된다.
삶이 어렵다고 귀신을 믿고 불러들이면 인간문명은 후퇴한다.
세상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망이다. 그 사이에 귀신을 끼우면 사회를 망치는 사람이 된다.
공동체의 가치와 공명하지 못하고 이웃의 삶을 돌보지 못하는 존재야말로 진짜 귀신일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