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神)은 없다.
우리그림이 표현하는 해와 달 그리고 하늘
신(神)은 인간에게 숭배 받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이다.
우리그림에는 이러한 개념의 존재를 표현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가끔 호랑이를 타고 흰 수염을 휘날리는 신선이나 중국의 [산해경]에 나오는 용, 기린, 해태 따위의 괴물들을 표현한 그림이 있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무당집을 장식하거나 도교나 미신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궁궐이나 도화서 화원, 선비들에게는 수용되지 않았다.
[십장생도에 표현된 해는 아침해를 뜻한다. 아침해는 시간의 영속성의 상징이다.
결코 왕이나 절대적 존재의 상징이 아니다.
하늘은 많은 부분을 구름으로 가렸다. 최대한 하늘을 표현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강하다. 설령 하늘이 보이더라도 황색이나 감색으로 칠한다. 이는 하늘에 대한 어떠한 규정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학의 최제우도 하늘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일체 대답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조선 말기, 고종은 유교를 국가의 공식적인 종교로 규정한다.
서양 종교에 대항한 고육지책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종교적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상을 모시는 것은 인류 보편적인 행위로 특정 종교로 간주하기 어렵다.
공자, 주자, 이황, 이이의 사당에 제사를 드리는 것도 학문적 가치나 전통을 따르기 위함일 뿐이다.
자연에 인격성을 투영하는 경우도 없다.
호랑이, 매, 나비, 개, 고양이와 같은 동물이나 바위, 화훼, 나무와 같은 식물은 모두 유학적 가치의 은유일 뿐이고 독자성은 없다.
이를테면, 호랑이의 용맹한 특성을 빌어 선비의 신념을 투영한 것이다.
선비의 신념이 없으면 호랑이도 없는 것이다.
[하늘은 원래 황색으로 표현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연한 붉은 색을 사용했다. 아침 해를 강조한 것 뿐이다.
대부분의 궁중회화에서는 하늘을 황색으로 칠했다. 특별히 오봉도 같은 경우는 가물가물한 색이나 청색을 칠하기도 했다. 여기서 청색은 실제 하늘의 색이 아니라 관념적인 양심의 색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하늘(天)이나 태양(日), 달(月)에 가장 많은 절대성이 투영된다.
우리그림에는 하늘에 대한 규정이 없다.
하늘을 표현할 때, 대부분은 아무것도 칠하지 않거나 가물가물하게 칠한다.
우리그림의 바탕색은 황색인데 빈 공간이라는 뜻이다.
보통 수묵화에서는 아무것도 칠하지 않고 그냥 비워둔다.
하지만 채색화에서는 비워두면 미완성이 되기에 뭐든지 칠해야 한다.
이럴 때 황색을 칠한다.
그러니까 황색의 하늘은 빈 공간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검정에 가까운 색을 칠한다.
검정은 ‘가물가물’하다는 추상적 개념을 시각적, 현실적 표현이다.
‘가물가물’하다는 말은 ‘모르겠다,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하늘도 이런 방식으로 얼버무린 것이다.
서양화의 경우, 하늘은 다양한 색으로 칠한다.
파란색을 기본으로 회색의 흐린 하늘, 붉은 노을의 하늘, 검은 하늘 따위와 같이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한다.
이것은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인간성이 하늘의 색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화를 내면 구름이 끼고, 폭풍우나 번개가 친다. 하늘의 상태가 곧 ‘하느님’의 감정인 것이다.
로마의 태양신. 태양은 인격화 되었다.
만약 조선시대 화원이 이런 표현을 했다면 이단으로 몰려 낭패를 당했을 것이다.
우리그림에는 해(태양)가 표현되어 있다.
서양의 경우 태양 안에 사람의 얼굴이나 표정을 표현한다. 이것은 태양에 인격성이나 절대적 존재로 인식하고 수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그림 속의 태양은 인격성이나 절대성이 없다.
[정홍래의 '욱일취도'이다. 여기에 표현된 붉은해는 현실적으로 아침해이다. 하지만 그 상징은 '시간의 영원성'이 아니라 붉은 마음, 단심이다. 단심은 양심을 지키고자 하는 선비의 신념을 뜻한다.
우리그림에서 해는 그저 이런 상징으로 쓰인다. 태양신 따위의 서구적 관점과 아무 관련이 없다.]
우리그림의 해는 붉게 칠한다.
붉은색의 해는 아침 해를 상징하고 이는 시간의 영속성을 뜻한다.
그러니까 [십장생도]에 표현된 붉은 해는 ‘생명력이 풍부한 민본세상’이 영원하다는 뜻이다.
수묵화나 채색화 중에는 ‘시간의 영원성’이 아니라 지조와 절개를 지키고자 하는 붉은 마음, 즉 단심(丹心)의 상징으로 붉은 해를 표현하기도 한다.
달(月)은 동서양 모두에서 부정의 상징으로 쓰인다.
달은 깊고 어두운 밤의 표현이고, 어둠은 죄악, 어려움, 고통 따위를 상징한다.
궁중채색화에서 달은 그리지 않는다.
대신 수묵화에서 표현하는 달은 어려운 현실을 뜻한다. 가끔 ‘실낱같은 희망’으로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매월도(梅月圖)’이다. 기생 이름 ‘월매’도 같은 뜻이다.
매월도는 보름달이 뜬 깊은 밤에 핀 매화를 그린다. 이 그림은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킨다.’는 뜻이다.
달은 곧 밤을 상징하고, 밤은 어려운 현실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경연의 '월하탄금도'이다.
달밤에 거문고를 타고 있는 모습은 상당히 감성적이고 멋있어 보인다.
하지만 달밤이라는 어려운 현실에서도 유유자적, 풍류를 잃지 않으려는 선비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표암 강세황이 그린 '매월도'이다.
달은 밤의 상징이고 밤은 어려운 현실을 뜻한다. 매화는 올바른 선비의 삶이다.
상당히 고통스런 그림이지만 서정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감성과 이성이 교차 결합되어 있다.]
현대에 들어와서 달은 긍정의 상징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이때 달은 로망, 꿈 따위로 해석한다. 늦은 밤까지 노는 문화가 생긴 탓이다.
우리그림의 내용이나 조형원리는 철저히 이성적이다.
도교나 미신처럼 근거 없는 상징을 사용하지 않고 엄격한 조형방법을 지킨다.
그러나 표현하는 방법은 상당히 감성적이다.
작품의 제목은 그야말로 한 편의 시(詩)다.
딱딱한 철학을 감성적으로 풀어 표현하는 예술의 역할에 충실하다.
사실, 이성과 감성은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되지 않는다. 서로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발전한다.
화려한 꽃그림에서 내재된 의미나 철학을 찾아 감상하는 일,
이성적인 작품에서 미묘한 감성을 찾고 느끼는 것은 모두 좋은 미술감상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