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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규섭 Jun 14. 2024

태평성대의 꿈 - 십장생도 12화

  

정조가 1776년에 재위했다.     


“아,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하지만 불령한 무리들이 사도세자를 추숭(追崇)하자는 의논을 한다면 선대왕 유언에 따라 형률로 논죄하겠다.”
 - 정조실록, 1776년 3월 10일     


추숭(追崇)은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은 이에게 임금의 칭호를 주다’는 뜻이다.
만약 추숭이 이루어지면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한 자들은 모조리 처벌하는 정치 보복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 죽음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개입하거나 논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1780년(정조 4), 연암 박지원은 종형인 박명원(朴明源)을 따라 청(淸)나라 건륭제의 칠순연(七旬宴)에 참석하는 사신의 일원으로 동행한다.
조선의 사신 일행이 연경에 도착해보니 청나라 황제는 여름 별궁에 가 있었고, 하는 수 없이 열하(熱河)까지 가게 된다.     

연암 박지원은 이 기간에 중국의 문인들과 사귀고, 문물제도나 견문한 내용을 분야별로 기록하여

[열하일기]라는 연행기를 남겼다.
[열하일기]는 생전에 책으로 출간되지 못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1789년 단원 김홍도가 사행단에 포함되어 중국을 다녀온다.
공식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
일설에 따르면 정조가 화성행궁을 짖기 위한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첩자로 파견했기 때문이란다.


단원 김홍도가 중국을 방문하고 그린 [연행도]에는 서양화법인 원근법과 명암법이 적용된 그림이 있다. 이 시기, 김홍도는 중국에서 본 그림을 참조하여 기존의 [서가도]나 [호렵도]를 한층 더 발전시켰다고 추정한다.  

   

김홍도의 자는 사능이며 호는 단원으로 도화서에서 입신하여 지금 현감으로 있다. 당시 도화서 그림은 서양의 사면척량화법을 새로이 본받고 있는데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한쪽 눈을 감고 보면 기물들이 정돈되어 서 있는 것처럼 보여 세속에서는 이를 가리켜 책가화라고 한다.
반드시 채색을 했는데, 한 시대의 귀인으로 집 벽을 이 그림으로 장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김홍도는 이러한 재주에 뛰어나다.  -(이규상/일몽고 중 화주록)   


김홍도는 청나라에서 구해 온 각종 채색화와 물감과 화지를 도화서로 가져왔다.
새로운 창작기법이나 물감 사용법 따위를 해설한 보고서도 함께 제출했다. 공무를 수행한 것이니 당연했다.
용주사 후불탱화 제작을 감독하고, 도화서에 [책가도], [곽분양행락도], [한궁도], [태평성시도]와 같은 그림을 지도하고 제작했다.     

[18세기 말경에 제작한 십장생도를 바탕으로 창작한 그림이다. 앞선 그림과 가장 큰 차이는 공간의 변화이다. 바다처럼 표현한 큰 호수가 좁아졌고 육지가 넓어졌다. 육지에는 없던 개울이 생겼다. 현실적 세계관이 적용된 탓이다.]    

 

당시 십장생도는 더욱 간결해졌지만, 형식의 발전은 멈추었고 지루한 반복이 계속되었다.
도화서 별제는 김홍도에게 새로운 십장생도 제작의 감독을 맡겼다.  

   

“단원 선생은 얼마 전 청나라를 다녀왔습니다.
새로운 그림과 화법을 수용하여 창안한 그림은 우리 도화서 화원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수십 년 동안 변치 않은 십장생도에 새로운 활기를 넣어줄 것이라 믿소.”

     

“이번 사행 길에서 배운 것이 많소. 이 경험을 도화서 모두의 것이오.”  

   

김홍도의 지도 아래, 근 한 달에 걸쳐 십장생도 초본이 창작되었다.
초본이 완성된 후 채색작업에 들어갔다. 채색에는 새로운 물감을 사용하고 첨단기법이 동원되었다.
채색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김홍도는 귀찮은 기색 하나 없이 대답하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드디어 새로운 십장생도가 완성되었소. 임금께 보이기 전에 평가모임을 할 것이오. 이 모임에는 도화서의 모든 화원과 홍문관 응교가 참여할 것이오.
특히 그림을 배우는 사습생도는 빠짐없이 참석하도록 하시오.”

    

홍문관 응교가 묻는다.  

   

“연경의 천주교당에는 서양의 그림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이한 원근법과 명암법을 사용하여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실물과 똑같이 그린다고 합니다. 단원 선생께서도 보셨는지요?”     

[카를성당 벽화. 단원 김홍도가 연경의 천주당에서 본 그림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교함에 놀라 손으로 만지는 사람, 나자빠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사실적으로 그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실물과 구분이 어렵다고 하나 그림은 그림일 뿐이지요.
사람의 등에 날개가 있거나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에 정신이 혼미해지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우리와는 확실히 철학이 달랐습니다.”   

  

“단원 선생께서 그린 신선도에도 기이한 사람이나 동물이 나옵니다. 서양의 기이함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신선은 군자의 상징이고, 해태나 기린, 용 따위는 모두 태평성대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특정 신선을 추앙하거나 영수(靈獸)가 진짜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림은 그림답게 그려야 합니다. 그림을 현실처럼 그리면 사람들이 현혹됩니다.
서양의 그림은 우리의 것과 매우 다릅니다. 하지만 일부 기법은 수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청나라에서 유행하는 그림이 지나치게 사치하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조선의 그림과는 어떻게 다른지요?”   

  

“북경의 유리창(琉璃廠)에는 현란한 색채의 온갖 그림이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금 청나라는 역사 이래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조선의 그림과 비교하는 일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이니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사습생도가 손을 들고 질문을 한다.   

  

“예전의 십장생도와 비교해 공간의 비율이 달라졌네요. 바다가 대폭 축소되고 육지가 넓어졌군요.”

    

“네. 초본을 만들면서 가장 토론을 많이 한 부분입니다. 화원들은 모두 바다보다 육지의 공간이 넓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넓은 공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이 때문에 육지가 쪼그라지고 표현할 것이 줄어든다는 의견입니다.”

[바다처럼 표현하던 큰 호수는 좁아졌고 커다란 섬을 그려 마치 육지로 연결된 것처럼 보인다. 신령한 기운을 뿜는 거북은 도교적인 표현이 아니라 특별한 거북이란 뜻이다. 이후 거북은 자라나 남생이로 바뀐다. 현실을 수용한 것이다.]     


홍문관 응교가 거든다.  

   

“숙종 임금 이후로 십장생도의 호수는 마치 바다처럼 그렸습니다. 조선이 철학의 중심 국가라는 넓은 세계관이 투영되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바다는 조금씩 줄어들었습니다.
선비들은 오랑캐라고 여겼던 청나라에 복수하고 전쟁을 하는 일이 현실과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청나라도 초기의 야만성을 벗고 선비를 우대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정책을 쓰고 있습니다.
인조 대왕 14년(1636년), 병자호란 이후 150여 년간 전쟁이 없었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개선되어 왜구의 침략도 없었지요.
선비들은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수용하고자 합니다.

이것은 저의 개인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호락논쟁 이후 서울과 경기에서 활동하는 대부분 선비가 주장하는 것입니다.”   

  

“작아진 호수 위에 큰 섬이 있어서, 전체가 육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화면 구성은 조선 땅에 관심이 커진 것을 반영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조선 땅에 관심은 곧 현실적 풍요를 갈망하는 마음이 커졌다는 것를 의미합니다.”

    

“자세히 보니, 곳곳에 변화가 있군요. 없던 개울이 생겼네요.
폭포는 두 군데 그렸고, 영지를 먹던 사슴 대신 물을 먹은 모습으로 바뀌었네요. 좀 더 현실감이 있습니다.
한쪽에 치우쳤던 복숭아나무를 중심부에 그렸네요. 소나무, 대나무와 잘 어울립니다.”     

[십장생도에서 동굴은 핵심 요소이다. 중국의 요지연도, 해학반도도에는 동굴이 없다. 동굴은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십장생도와 결합한 결과이다.]

    

“김홍도 선생의 진경산수화는 조선 팔도의 명승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선비가 그림 속의 명승지를 찾아 풍류를 즐긴다고 하지요. 선비들은 폭포 아래 물길이 흐르는 것을 편안하다고 느낍니다.”  

   

홍문관 응교가 그림을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말한다.   

  

“십장생도의 요소가 바뀌거나 없애지는 않았군요.
자세히 보니 아침 해를 바다가 아니라 중천에 그렸군요. 무슨 특별한 이유라고 있는 것이오?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 거요?”

     

“아침 해를 그린 것은 붉은색 때문입니다. 붉은색은 단심(丹心) 즉, 양심을 뜻합니다.
십장생도에서 붉은 해는 영원함을 의미하지요. 아침 해를 중천에 그린 것은 태평성대가 절정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까, 붉은 해에 영원함과 절정의 상징을 함께 넣었다는 말이군요. 음...조형적으로는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앞선 십장생도에는 학이 10마리, 사슴은 9마리, 거북 2마리가 있었는데, 이 초본에는 훨씬 많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네, 학 18마리, 사슴 13마리, 거북 4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육지 공간이 넓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림 속에는 반짝이는 보석이 수없이 박혀 있어 더욱 밝아 보입니다.”

    

“태점(胎點)입니다. 생명점이라고도 하지요. 예전 그림에는 태점이 조금만 있었습니다. 이번 그림에는 괴석과 나무에 촘촘하게 태점을 그려 넣었습니다. 뭇 생명의 힘이 넘친다는 의미입니다.”   

  

“사슴 무리 중에는 새끼도 있는데, 당연히 화목한 가족을 뜻하겠네요.
가족은 천륜으로 맺어진 관계이고, 양심의 근본인 효(孝)가 시작되는 곳이니 어찌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단원 김홍도가 말한다.

    

“제가 청나라에서 본 서양 그림은 화면이 통일되고 세밀했습니다.

조선으로 돌아와 스승, 동료 화가들과 의논하고 연구해보니 우리 그림과는 근본부터 달랐습니다.
청나라에서 만났던 선비들은 서양의 원근법, 명암법은 개인의 관점이라고 주장합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서양 그림에는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는 있겠지만, 양심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담기는 어렵습니다.
십장생도에는 임금을 비롯한 만백성의 꿈이 담겨있습니다. 사슴 가족은 만백성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학과 사슴, 복숭아를 더 많이 그렸고 화면 전체에 태점을 넣었다.]

     

16세의 사습생도가 밝은 표정으로 말한다.

     

“그렇게 깊은 뜻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소인은 그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나들이하는 것처럼 즐거워 보입니다.”  

   

별제가 웃으면서 답한다.  

   

“정녕 그렇게 보았다면, 이번 십장생도는 성공한 것이다.
만백성의 꿈은 그림 속의 사물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한다. 오래 두고 감상하면서 이슬비처럼 스며들어야 좋은 그림인 게지.”

     

홍문관 응교가 헛기침을 하자 조용해졌다.  

   

“최근 광통교 서화사에서 팔리는 십장생도에는 도교적인 요소들이 가득하다고 합니다.
3천 년을 산다는 황학, 6천 년을 산다는 청학이 등장하고, 심지어는 괴석에 금칠까지 합니다.
이를 어찌 보십니까?”

    

“조선은 세계에서 성리학이 가장 발전한 나라입니다. 임금을 비롯한 만백성이 성리학의 가르침을 따라 양심과 예법을 지키며 살고 있습니다.
어떤 선비는 역사 이래 가장 부유하고 평화로운 시대라고 합니다. 조선의 그림이 이런 시대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임금께서는 조선의 문화가 너무 퇴폐하다며 걱정한다고 합니다. 풍요한 시대를 반영하는 것과 도교의 내용을 그리는 것은 무슨 관계입니까?”  

   

“숙종 대왕 이후로 십장생도는 완전해졌습니다. 조선의 꿈이 오롯이 담겨있습니다.
십장생도는 만백성이 최종적으로 도달해야 할 세상이기에 삶의 의욕과 활기를 만들어냅니다.
임금께서 걱정하는 것은 십장생도가 아니라 부질없는 욕망을 자극하고 겉치레만 요란한 패관소설입니다.
오히려 속화(俗畵/문인화, 수묵화를 제외한 모든 채색화)를 더 많이 그리도록 장려하십니다.”

     

“선비들은 걱정이 많소. 부자가 된 중인들은 사치를 일삼고 청빈한 선비를 깔보기까지 한다오.
새로운 십장생도가 백성들의 부질없는 욕망을 부추길까 걱정됩니다.”   

  

“응교 나리께서는 이번 십장생도를 보고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온 세상을 다 보는 것 같소. 그림 속의 사슴과 학을 따라가다 보면, 여기가 무릉도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신선이 경지에 이른 듯 마음이 평안하고 어떤 잡생각도 들지 않소.”

     

“백성들도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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