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우크라이나 여행기 #01

전쟁 막바지

by 노아

개인적으로 역사를 굉장히 좋아한다. 역사 안에는 인문학과 과학, 심리 등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잔뜩 있다. 특히 나는 전쟁사를 기반으로 하는 세계사를 좋아한다. 우크라이나를 처음 가보고 싶었던 순간도 그런 이유에서가 강했다.


전쟁 발발 직후 당시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우크라이나를 갈 생각을 가지고 회사에 얘기를 하였지만,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다. 그리고 내게도 어쩌다 보니 지내던 환경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변화를 받아내기 위해 하나 둘 정리하던 중 잠깐의 시간적 기회가 생길 것 같았다.


그렇게 우크라이나를 다시 알아보았다.




#01_우크라이나_입국_절차

우크라이나는 현재 외교부에서 지정한 여행 금지 국가이다. 외교부 허가 없이 입국 시 처벌될 수 있다. 또한 입국을 허가받고 했다 하더라도 대사관에 도움을 받을 수 없으며 모든 재산적 신체적 피해는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외교부에서는 예외적 여권 허용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원래는 언론보도 목적으로만 허가가 났지만, 재작년 하반기 즈음에 사업 영리 목적으로 예외적 허용이 가능하게끔 개정되었다. 비교적 문이 많이 열렸다.

2025-01-20 08;41;57.PNG 2023년도 하반기 이후 개정

또한 우크라이나는 전쟁 직후 초반에는 외국인에 입국을 보안, 안보를 이유로 거의 받지 않았지만, 러시아에 키이우 대공습, 점령작전이 좌절되면서 이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외국인에 입국을 거부하지 않는다.




#02_우크라이나_입국_정보수집

안전을 무조건적으로 확인해야 하기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정말 많은 정보를 수집했다. 한국 언론이 보도하지 못하는 정보들과 우크라이나에 참전 중인 한국인 국제군단 병사들, 최근 우크라이나를 나왔던 교민 분들 등 수많은 컨택 포인트를 확보해서 정보를 수집했다.


NISI20240222_0001485863_web.jpg 우크라이나 전황 (24년도 기준)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에 주요 전선은 북동지역부터 남쪽으로 걸쳐있다. 어느 곳을 여행할지도 정해야하기에 텔레그램을 비롯한 정말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더블체크 했다. (사실과 다른 정보가 꽤 많았기 때문이다.)


서부는 매우 안전한 편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경험을 하긴 어려울 것 같아 수도 키이우와 북쪽 도시들을 생각했다. 이곳들은 하루 평균 공습경보가 5-10회 이상 발생하지만 운이 나쁘지 않은 이상 신변에 위험이 생기진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했다.


생명에 위험이 있을 수 있는 판단들이기 때문에, 이러한 판단들은 교민, 참전 군인, 로컬 언론사, 텔레그램 채널 등을 통한 정보 크로스체크를 통해 내려졌다.





#03_우크라이나_이동방법

우크라이나를 들어가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은 폴란드를 통하는 방법이다. 키이우 및 인근에 모든 공항은 군사 공항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에 오직 육로를 통할 수밖에 없다. 국경을 맞대고 있으면서 격전지와 가장 먼 곳은 폴란드이다.

2025-01-20 08;50;26.PNG 폴란드 → 우크라이나 이동 경로

폴란드 수도인 바르샤바에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약 14시간 정도 이동하는 경로다. 가장 안전하면서, 저렴하다. (왕복 약 10만 원 좀 넘었던 걸로 기억한다.)


인천에서 폴란드까지만 해도 약 16시간 비행인데(경유 1회), 내린 당일날 다시 또 14시간 버스를 타는 이동 시간만 약 30시간이 넘는 일정이었다. 물론 다시 돌아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34시간이 넘는다. 이집트에서도 이렇게까진 이동을 안 해본 것 같은데, 시작부터 매우 쉽지 않은 여정이라 생각했다.




#04_여행_시작

인천에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 날아왔다. 날씨는 우리나라에 혹한 겨울 온도 정도였다. 공항에서 나온 후 가바르샤바 터미널이 있는 시내까지 열차로 이동했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jpg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1.jpg

내 짐은 백팩 하나가 전부였다. 일전 프랑스 여행 때 처음 혼자 가는 여행이라 그런지 20kg 넘게 가방을 싸다 보니, 불편한 게 너무 많았다. 어떤 일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에 짐은 최대한 줄였다. 8kg 정도였다.


KakaoTalk_20250120_090359830.jpg


바르샤바 시내에 도착했을 때 정말 웅장한 건물이 보였다. 폴란드는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에 침공으로 모든 건물이 포격당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확실히 다른 동유럽 도시들과 다르게 현대식 건물이 많았다. 물론 이러한 유럽 건축양식을 띄는 건물들은 모두 복원한 것이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3.jpg 바르샤바 버스 터미널(?)

바르샤바에서 가장 큰 터미널이다. 주로 인근 국가로 가는 장거리 버스 승객이나 매우 넓은 영토를 가진 폴란드 특성상 다른 먼 지방 지역으로 이동하는 버스가 주로 다닌다. 제일 짧은 노선이 3-4시간 거리고 보통 노선이 이동 시간만 6-10시간 정도이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4.jpg 바르샤바 터미널 내부 모습


터미널 내부는 흡사 10년 전 성남 종합 버스터미널 같았다. 매우 낡고, 추웠다. 문을 항상 열어둔다. 안에는 굉장히 많은 비둘기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공간이 특이하다고 느낀 건 폴란드어가 들리지 않았다. 대부분 우크라이나어 혹은 러시아어 같은 억양만 들렸다. 아마 우크라이나-폴란드를 왔다 갔다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많은 것 같다. 하기사 공항에 외국인이 많은 것과 같은 느낌이 아닐까 싶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2.jpg 영어를 찾아볼 수 없다. 나중엔 폴란드 문자에 발음 기호정도만 이해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 버스를 타려 하는데, 영어가 안보였다. 탑승구도, 버스 명패도 전부 폴란드어와 우크라이나어로 되어있다. 당황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티켓을 보여주며) 해당 버스 탑승구가 어디냐 물어도 영어를 알아들으시는 분들이 안 계셨다. 결국 승강장 내 모든 버스 기사님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봐서 찾아냈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5.jpg 여권 검사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을 넘는 버스이기 때문인지 여권과 함께 간단한 조사(?)를 했다. 물론 기사님도 영어가 안되시고 나도 영어를 잘 못해서 그런지 느낌상 대충 넘어간 것 같다. 그렇게 짐을 버스에 싣고 탑승했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10.jpg 우크라이나 귀요미

나를 계속 쳐다보던 한 아이. 승객 구성원은 대부분 가족 단위였다. 남자는 대부분 나이 든 노인분들이시거나 학생처럼 어려 보이는 친구들만 있었다. 14시간에 긴 여정이기에 다들 출발과 동시에 가방에서 주섬 주섬 먹을 것들을 꺼냈다. 많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계란, 두부, 간단한 샐러드 등 가벼운 음식들을 먹으며 갔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13.jpg 국경선

6시간 정도 이동했을 무렵, 자고 있던 나를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깨우셨다. 그리고 밖을 보니 국경 지대였던 것 같다. 구글 맵을 보니 맞았다. 버스는 눈보라를 맞으며 국경 검문소에서 검문을 기다렸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09.jpg 검문 중인 우크라이나 군인

군인 두 명 정도가 버스를 탑승했다. 모든 승객에 여권을 수거했다. 그리고 한 30분 정도가 지나니 한 군인이 다시 버스에 타더니 성큼성큼 내 앞으로 왔다. 그리고 그 군인은 수많은 사람들 중 내게만 쏘아대듯이 많은 질문을 했다.


"왜 왔어?"

"무슨 목적으로 왔어?"

"아는 사람이나 가족이 있어?" 등


이 질문 말고도 세네 가지는 더 물었던 거 같은데, 말이 너무 빠르고 억양 때문에 알아듣질 못했다. 어영부영 답변을 하다가 입국 관련 서류를 꺼내니 갑자기 화색이 돌며, 오케이! 하고 다시 떠났다.


어이가 없던 건, 그 군인은 내가 준 서류를 3초도 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여권을 돌려받고 우크라이나 입국 도장을 내 여권에 남겨 받았다. 맨 뒷장에 찍어주셨다. 무슨 의미인지 한참을 생각했다.


그렇게 또 남은 약 8시간을 눈보라와 함께 달렸다.


KakaoTalk_20250120_093030110.jpg 중간 휴게소

약 2-3시간마다 버스는 주유소에서 멈춰 잠시 휴게 시간을 가졌다. 정말 무서웠던 건 살면서 겪어본 최고에 눈보라를 맞았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나보다 덩치 큰 서양 할아버지들도 몸을 가누기 힘들어할 정도로 눈보라가 쳤다. 서로서로 담배 불 붙이기가 힘들어서 실내에서 담배 불만 붙이고 다 같이 나왔다. 웃긴 풍경이었다. 그런 과정을 2-3번 거치니 이제 거의 도착해 갔다. (충격적인 건 우크라이나 도로는 어떠한 빛도 없었다. 가로등은커녕 빛나는 물체가 없었다. 가시거리가 2-3m는 되었을까? 눈보라를 헤쳐가는 버스 기사님이 대단하다고 사뭇 느꼈다.)


KakaoTalk_20250120_090257673_14.jpg 키이우 버스 터미널

14시간이라는 엄청난 이동 거리에 종점인 키이우 버스 터미널에 내렸다. 첫 풍경에서부터 눈물이 날 뻔했다. 가족 단위에 승객들은 내리자마자 군복을 입은 남편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꽃과 포옹을 안겼다. 이곳저곳 눈물바다였다. 아마 휴가 혹은 다쳐서 수도로 복귀한 군인들을 만나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온 가족들이었던 것 같다.


전쟁에 참상과 현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느꼈던 순간이다. 살아 돌아온 가장을 보는 건 어떤 기분일까. 이러한 풍경을 조금 지나고 나니 버스 터미널은 금방 한산해졌다. 하나 알아둘 건, 키이우 버스터미널은 폭격으로 없어졌는지 야전에 버스터미널이 운영되고 있었다. 구글 맵에 떠있는 버스터미널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내가 내린 직후에도 공습경보는 울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구 키예프)에 도착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