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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o Nov 20. 2024

1993년

어른아이

열두 살쯤 되자 친구들과 밖으로 돌며 노닥대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며 원래 있던 것들을 우리의 눈으로 다시 발견하고 탐색하는 데 몰두하느라 해가 지는 줄 몰랐다. 어서 별빛이 지고 해 뜨는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가라앉지 않은 달뜬 마음으로 잠을 청하는 날이 늘어났다.  


동네 친구들과 낄낄대다 이 골목 저 골목 뛰어다니다 보면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집에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고 우린 각자의 집으로 흩어져 들어갔는데, 나는 동네 친구인 소현과 헤어지기 싫어서 엄마 앞에 한 번씩 무릎을 꿇었다. 엄마의 기분에 따라, 소현이네 집 상황에 따라 한 번씩 ‘파자마 회동'이 성사되었다.


나는 그 애 집에서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5단짜리 가짜 소나무를 조립하여 둘레에 알 전구를 몇 번씩 휘감아 걸었고, 그 집 할머니가 신다가 세탁실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꽃무늬 버선을 가져와 커튼봉 여기저기에 걸어놓았다.


봄엔 작은 김치 밀폐통을 들고 뒷산에 올라가 고인 물가를 막대기로 휘휘 저으며 개구리알을 찾아냈다.

우린 어느 볕 좋은 날에 포도알 젤리 같은 개구리알 한 덩이를 떠 와 우리 집 베란다에 있는 장독대 사이에 숨겨 놓고 어른들 몰래 키우기로 작당을 했다.

우리는 그 통이 나름 깊이가 있다고 생각해서 관찰을 하기 쉽게 뚜껑을 연 채 '사육'을 했는데 처음엔 대여섯 마리였던 올챙이가 날이 갈수록 한두 마리씩 사라지더니 결국 한 마리, 우리의 '아로미'만 남았다.


우린 아로미가 꼬리의 흔적만 남은 어린 개구리가 된 것까지 지켜보며 ‘양육 파트너’ 간의 좋은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그런데 며칠 밖에서 딴 데 눈을 돌린 새 사달이 났다. 물을 갈아주려고 통 안을 들여다보니 아로미가 없었다.

나는 이 사건을 소현에게 알리고 해결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둘이 만나서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손을 붙잡고 안절부절못하는 일이었다.


엄마에게 들키기 전에 찾아야 했지만 또 찾고 싶지 않은 마음(사체를 차마 볼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시간만 보냈고, 결국 우리가 이사를 갈 때 베란다 타일 바닥에 짜부라진 시커먼 거죽들을 여럿 확인했다.

어린것들이라 할지라도 장차 개구리가 될 녀석들의 천부적인 재능을 우린 너무 우습게 보았다.


학교 방학 땐 '슬기로운 방학생활'을 완수하기 위해 전국 곳곳의 박물관, 미술관을 함께 다녔고, 산을 오르내리며 곤충, 식물을 채집해 표본을 떴다.


소현과 나는 학교에서 같은 반이었는데 아이들은 나만큼이나 그 아일 좋아했다. 소현은 눈빛으로, 한마디의 말로 아이들을 이끄는 힘이 있었다. 1학기에는 반장, 2학기에는 회장이었고, 그 아이 주위에는 늘 친구들이 많아서 그녀와 이야기를 하려면 그녀를 둘러싼 무리 중 몇은 헤치고 들어가야 했다.


나는 그 아이가 정말 좋으면서도 질투심에 몸이 떨릴 때가 있었는데 주로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그녀가 가졌기 때문이었고, 이런 ‘원석’을 발견한 사람이 나만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그녀가 나만의 친구이길 바랐는데.

그러기에는 그녀의 ‘어른스러움’이 도드라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학교에서 벌어졌다. 학교는 매일 이런저런 사건으로 웅성이는 곳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곳이라서.

 

신체 발육이 지능을 지나치게 추월해 버린 데다 때 이른 브래지어를 한 애, 경미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애, 손톱에 때가 시커멓게 끼고 머리를 들추면 하얀 비듬이 떨어지는 애, 눈에 띄게 왜소한 애들을 누군가 우리의 세계에서 밀어내려는 시도의 낌새만 있어도 소현은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애는 대단한 폭력이나 괴롭힘이 아니더라도 일종의 모든 폭력에 맞섰다. 유난스럽거나 소란스럽지 않게. 그것이 자연스러운 그 아이의 일인 양 부드럽게 갈등의 매듭을 풀어가곤 했는데 아이들은 그럴 때마다 경외심에 가득 찬 얼굴로 소현을 바라보는 것을 나는 종종 목도하였다.

그것이 질투가 나면서도 자랑스러워, 목구멍에 뜨거운 공기가 가득 차는 것 같이 숨이 차면서도 벅찼다.


반에는 나와 소현을 비롯해 함께 몰려다니는 친구들 일곱 명이 있었는데 우리는 여름날이면 인력꾼처럼 신발주머니를 머리띠처럼 걸고 30분쯤 걸어 안골이라는 데를 갔다.

안골 입구에서 조금 더 깊숙이 올라가다 보면 작은 폭포가 보였고, 선녀탕으로 불리는 오목하고 동그스름한 자연 풀장이 나왔다. 우리는 신발, 양말만 벗고 옷을 입은 채로 물속으로 들어가 폭포를 맞고 물장난을 치고 놀았다.

개헤엄을 치거나 다이빙을 하거나 계곡물에 한기가 들 때면 볕에 데워진 평평한 바위 위에 사지를 뻗고 일광욕을 했다.

모든 순간 견딜 수 없이 웃겨서 눈물이 나고, 윗입술이 잇몸에 말라붙어 내려올 틈이 없었다.

묵은 때처럼 들러붙은 걱정이나 불안이 없던 때였다.


어제와 같은 보통의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일렬로 누워 햇빛 아래서 한기 든 몸을 데우던 중이었다. 끄트머리에 누워 있던 인정이 말했다. 우리 집에 가보지 않겠냐며. 실은 여기서 곧장 올라가면 자기 집이라고.


우리는 오랜 시간 물속에서 노느라 춥기도 했고, 허기가 지기도 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몸이 채 마르지 않은 채로 인정을 따라갔다.


계곡을 따라 오르막길을 몇 번이나 올랐다. 어찌나 경사가 가파른지 다시 내려가겠다며 쨍알거리는 친구의 뒤를 밀고, 손을 잡아끌며 가까스로 올라갔다. 반시간쯤 올랐을까. 계곡 사이에 놓인 짧은 다리 너머로 절이 보였다. 경사가 가파른 산자락에 절터를 잡은 터라 몇 개의 전각들이 계단형으로 놓여 있었다.  


“야, 여기 절이잖아. 너네 집은 어딘데? 힘들어 뒤진다.”

나였는지, 다른 친구였는지 숨을 크게 몰아쉬며 그렇게 물었고, 인정이는 이 절이 제 집이라며 경내로 이끌었다. 불당 입구에서 나오며 고무신을 신는 사람을 '엄마'라고 불렀다.


그녀가 엄마라고 부르는 이는 민머리에 회색 절복을 입은 비구니 승려였다. 길고 깊은 눈가 주름이 입가에 닿을 만큼 큰 웃음을 지은 그 스님은 어서 오라며, 우리를 반겼다.

인정은 그 ‘승려’에게 우리를 한 명 한 명 소개해 주고, 이런저런 사족을 덧붙였다. “엄마, 얘는 우리 반 부반장 오드리예요. 얘 동생은 오 나폴레옹이래요. 아빠가 좋아하는 인물을 애들 이름으로 지었대요. 재밌죠? 이런 식으로.

인정은 조금 흥분한 것 같았다.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말소리는 높았다.


절 내부에서 스님들이 외는 낮은 경소리와 중간중간 똑, 똑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제가 사는 세상과는 완전히 생경한 이곳을 조심스럽게 탐색하기 시작했다. 불당 안에서 퍼지는 은은한 향냄새가 경내에 스몄다. ‘인정이한테 나는 냄새네.’라고 나는 생각하며, 이 냄새가 나에게로 함부로 스미는 것은 아닐까, 사소한 걱정이 스쳤다.


한여름인데도 전각 사이의 작은 골목이 바람길목이었는지 바람에 펄럭이는 젖은 옷이 피부에 달라붙어 소름이 돋았다.


나는 그때 무심히 소현을 바라보았다. 소현의 시선은 인정에게 오롯이 머물러 있었다. 물기 어린 빛나는 눈으로, 너라는 세계를 새로이 알기 원하다는 눈으로.


인정은 제 방에 둘러앉은 친구들에게 차례로 수박 한쪽씩을 건네며 말했다.


“누가 나를 불당 처마 밑에 놓고 갔더래. 쌀알 같은 눈이 내리던 밤이었는데 스님이 문가에 검은 그림자가 언뜻 스치는 것 같아서 문을 열어보니 신발 내려놓는 댓돌 옆에 내가 강보에 싸인채 놓여있더래. 스님이 얼른 안아 드니 무슨 갓난쟁이가 울지도 않고 세상 다 산 노인인 것 같은 눈으로 스님을 빤히 보더래. 스님이 인생의 깨달음을 거기서 얻었다던가? 나는 도통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진짜 엄마도 없고 아빠도 없어. 세상 어딘가엔 있을 수도 있겠지. 나는 모르니까 없는 거지. 여기서 언니, 동생들하고 같이 살아. 아까 볕 쪼이는데 니들한테 갑자기 말하고 싶더라. 몸이 따뜻해져서. 기분 좋아서.”


인정은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오랜 시간 연습한 대사를 외는 배우처럼 우리에게 자신의 내밀한 속을 무심히 열어 보였다. 어찌나 지나는 말인 것처럼 이야기하든지 나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래, 그런 삶도 있겠지, 하고 어려서 언어화할 수 없을 뿐 그저 그렇게 마음 안에 받아들이고 잊어버렸다.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날 우리는 담임 선생님의 안전에 대한 당부와 해야 할 방학 과제 같은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하고 몸을 들썩거렸다. 기어코 방학 잘 보내고 와, 소리와 동시에 우리는 책상과 의자를 앞뒤로 거칠게 밀어내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우리 일당은 운동장에 있는 모래 씨름장 턱에 둘러앉아 방학 첫날에 해야만 하는 ‘중대한 일’에 대해 작당 모의를 했다.


그때 소현이 오늘 무얼 하든 문구점을 먼저 들러야겠다고 해서 우리는 군말 없이 그 애를 따라갔다. 소현은 분홍색 pvc 재질의 천으로 된 필통을 골랐다. 아이들 모두에게 예쁘다는 말을 듣고서야 그걸 사서 자기 가방 안에 비닐째로 조심히 넣었다.


“너 필통 바꾸게?”


나는 문구점에서 나오며 소현에게 물었고 걔는 소리 없이 웃었다. 꼭 대답을 들으려고 물은 건 아니어서 나도 같이 웃었다.


무료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한 방학이 중반쯤 지나갈 때 우리는 동네 애들을 모아 빌라 공사판에서 술래잡기를 하기로 했다. 작은 건물의 공사판은 숨을 데가 뻔하지 않고, 사고의 위험을 회피할 때마다 보상을 받는 느낌을 주는 데라 적당히 큰 어린이들이 모험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어른들의 공간이자 출입 금지 구역이기에 ‘까부라진’ 애들이라면 한 번쯤은 노란선의 경계를 넘어야 하는 곳.


소현은 공사판에 가기 전에 우체국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소포를 부쳐야 한다면서. 같이 가겠냐고 묻자 나는 그러자고 했다.

우체국에 가서야 걔가 거길 간 이유를 알게 되었다.


“너 여기 우편 번호 안 썼어. 저기 뒤에 책자 있으니까 찾아서 써와.”

우체국 창구에 무료하게 앉아 안경알을 옷소매로 닦던 여자 직원이 그 애가 건넨 편지봉투 아랫면을 확인하고 편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O불사’

나는 그 주소를 흘낏 내려보고는 소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에? 여기 거기 아냐? 인정이 사는 절?”

“맞아. 인정이한테 보내려고.”

소현은 가나다 순으로 나열된 우편번호부의 책장을 넘겨 손가락으로 신중히 짚어 내려가며 그 절을 찾았다.

“여기 있다! O불사.”

소현은 편지봉투 위에, 그 우편번호를 단정하고 바른 글씨로 정성껏 눌러 적고는 창구 직원에게 다가가 소포로 부쳐달라며 편지와 분홍색 필통을 포장한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밑바닥에서 두근두근하고 뜨겁게 울컥거리는 무언가를 느꼈다.

내가 예사로 넘겨 들었던 인정이의 구불구불 휘어진 삶을 반반히 펴서 마음속에 포개어 둔 걔가 나에게는 너무 크고 높았다.

어떻게 너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마음에 담고, 흘려버리지 않는 마음을 가졌냐고 나는 당장 따져 묻고 싶었다.

나는 겨우 십 대 문턱을 넘어선 그 아이의 마음이 나이에 비해 너무 커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소현은 곧 나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헤아리는 듯했지만 내가 기대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절에선 걔가 여름방학 때 무얼 할까 궁금해서.’라고 말했을 뿐.


나는 그날 소현에게 토라진 아이처럼 굴었다. 그 애 옆에 습관처럼 붙어 다니긴 했지만 사사로운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 입을 닫았다.

경외나 두려움, 시기, 자책, 좋아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 뒤섞인 불투명한 마음에서 그렇게 군 것이었을까?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그 마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그 아이를 생각하면, 우체국 안에 있는 커다란 데스크 앞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우편번호부를 세심히 뒤졌던 그 애의 도톰한 손바닥과 깊고 검은 눈이 떠오른다.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 중에 내면의 틈새로 균열이 생긴 이를 제일 먼저 알아채고 손을 내미는 그 아이는 정말이지 나에게 특별한 ‘어른아이’였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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