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마음의 빚이 있어, 김지은
재희 언니는 겨우 서너 걸음 만에 미화 자리로 다가와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막 돌아선 지은의 엉덩이를 걷어찼다. 지은의 허리가 앞으로 맥없이 꺾이며 콘크리트 바닥에 무릎을 세게 찧었다. 지은은 들이마신 숨이 목구멍에서 가슴으로 관통하기도 전에 막혀버린 듯 컥 소리를 내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 애는 숨을 고르며 마음의 평정을 되찾고자 노력했지만 후들후들 떨리는 몸을 간추릴 힘은 없어 보였다. 재희언니는 제 발밑에 동그랗게 몸을 만 채 꿈틀거리는 지은이를 건조하고 냉담한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나대지 마, 썅년아.”
그녀의 서늘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날카롭게 벼린 바늘이 되어 나의 가슴을 예리하게 뚫고 지나갔다.
재희언니는 잠든 고양이처럼 엎어져 있는 지은이의 머리채를 잡아 일으켜 세운 뒤 한 손으로는 그 애의 목을 짓누른 채 주먹 쥔 손으로 지은이의 뺨을 후려쳤다. 뼈와 살이 닿는 둔탁한 소리와 아이들의 짧은 비명 소리가 교실 안에서 뒤섞였다. 지은이의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려 깨끗한 그 아이의 교복 셔츠의 깃을 붉게 물들였다.
지은은 재희언니의 폭력에 순응하며 그 시간을 견딜 뿐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 몸을 맡기는 것이 작정한 일이었던 양 일방적으로 제 몸에 쏟아지는 주먹질과 수세를 담담히 맞아들였다. 재희언니는 지은이가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뺨을 때리고 배를 걷어차 넘어뜨렸다. 모두가 어떡해, 어떡해 하며 입을 동그랗게 모아 웅성일 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보며 발을 동동거렸다.
무슨 용기였는지 1 분단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나는 칠판 뒤로 밀려난 교탁을 밀어 제치고 교실 앞문으로 달려 나갔다. 재희언니의 눈길이 뛰쳐나가는 내 뒷모습에 깊이 머물렀다는 것을 느꼈지만 훗일을 걱정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교무실 문을 옆으로 거칠게 밀고 들어가자 난로 주위에서 커피를 마시며 동료 교사들과 한담을 나누던 담임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담임의 팔을 붙잡고 무작정 우리 반으로 뛰었다.
“선생님, 지은이 죽어요. 빨리요.” 이런 말들을 가쁜 숨과 함께 내뱉으며 복도를 내달렸다.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지은은 재희 언니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교실 뒤쪽 사물함에 기대어 있었다.
미화가 앉아있는 의자에서 노란 물이 바닥으로 똑똑 떨어졌다.
재희언니가 교실 뒷문에서 말문을 잃은 상태로 몸이 얼어버린 담임을 보자 쓰레기를 버리듯 지은이의 머리채 잡은 손을 무신경하게 놓았다. 지은은 미끄러지듯 사물함에 등을 스치며 바닥에 떨어졌다.
지은은 담임의 등에 업혔다. 지은의 얼굴은 가끔씩 고통으로 일그러졌지만 원래 얼굴로 잠시 돌아올 때 나는 그 애의 또렷한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굵고 세찬 빗발처럼 쏟아지는 폭력에도 내면에 고요한 정원을 지켜낸 그 아이는 내게 커다란 경이였다.
다음 날 학교에 가자 두 자리가 비어있었다. 지은은 전치 16주가 나와 대학 병원에 입원을 했고, 재희 언니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두들 추측만 할 뿐 아무도 소식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날 교실 창문에서 칠판지우개를 털던 주번이 회색 투피스 정장을 입고 하이힐을 신은 여자가 학교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지은의 엄마가 학교로 온 것 같다고 떠들었다.
나는 그 사건이 있고 며칠 안 되어 지은의 부모가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지방법원 앞에서 개업한 부부 변호사라는 것, 재희 언니는 말을 하기 전부터 외삼촌네 식솔의 무성의하고 성긴 울타리 안에서 거칠게 자라났다는 것을 떠도는 이야기로 주워 들었다.
재희 언니는 입김이 센, 힘 있는 어른들의 몇 차례의 모임과 논의 끝에 퇴학 처분을 받았다. 그리고 지은은 퇴원 후 다시 학교에 나왔다. 눈가와 입가에 옅은 연둣빛의 멍이 남아있었지만 지은에게 움츠러든 기색은 없었다.
지은이 학교에 다시 나온 다음 날 미화의 아버지가 단팥빵과 크림빵으로 가득 찬 기다란 종이쇼핑백을 양손에 들고 학교에 찾아왔다. 그는 거칠고 메마른 두 손을 앞으로 그러모으곤 “우리 미화랑 사이좋게 지내줘. 친하게 지내줘.”라고 작게 이야기하며 종이백에서 빵 하나를 꺼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아이들은 저들의 가슴팍까지밖에 오지 않는 나이 든 남자를 보고 놀란 듯 서로의 눈치를 볼 뿐 그에게 다가서지 않았다. 내가 자리에서 막 일어서려는 찰나 지은이 성큼 앞으로 걸어가 빵을 받아 들었다.
“아버지,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미화의 아버지는 지은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고마워, 고마워.”라고 작게 말했다. 활짝 웃으며 잡힌 굵은 주름이 그의 짙은 얼굴에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었다.
나는 지은의 뒤를 이어 그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빵을 받았다. 그제야 아이들이 앞으로 몰려나와 그에게 빵을 받았다.
재희 언니가 빠지고, 지은이가 교실로 돌아와 다시 예전처럼 책을 읽자 교실 분위기는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우리가 바랐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아무도 인지하지 못하는 보통의 날들로 일상이 채워졌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나서 지은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했고, 전처럼 고여있는 말을 내뱉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 애에게 하고 싶은 말이 내 안에 고이고 고여서 결국은 시들어버려 심연에 던져버리거나 그렇게 메말라가는 것을 보고도 내버려 두었다.
지은에게 진 마음의 빚을 영영 갚을 수 없는 수치심과 미안함에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기 어려웠다. 나도 사실은 미화를 언제나 보호해주고 싶었다고, 그 애에게 단단한 껍데기는 되어주지 못해도 연약한 공기방울이라도 되어주고 싶었다고, 그런데 그럴 수 없었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나는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지은이와 미화를 번갈아 보며 매일 속울음을 삼켰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고, 초겨울이 되자 우리는 고등학교 입시 문제로 분주해졌다. 그즈음에 지은과 내가 함께 주번인 날이 돌아왔다. 교실 정리를 끝내고 나니 둘만 남게 되었다. 뒤로 밀어놓았던 책상과 의자를 제자리에 놓을 때까지 우리는 청소에 필요한 말을 제외하고 다른 말은 나누지 않았다. 정리된 교실을 둘러보고 책가방을 챙겨 "나 먼저 갈게."라고 나가려는데 지은이 나의 팔을 살며시 붙잡았다.
“잠깐만. 시간 괜찮아? 할 말 있는데.”
"어... 왜?"
지은은 내게 <I’ll be missing you>가 수록된 퍼프 대디의 cd를 건넸다.
“요새 내가 듣는 노래인데 좋더라. 너도 좋아할 것 같아서 네 것까지 샀어. 그리고 나 OO외고 썼는데 합격했어. 너한테 처음 말하는 거야."
“와… 축하해. 잘됐다. 진짜 잘됐다.”
나는 그 아이의 얼굴과 cd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그때 내 마음 안에서 진심으로 기쁘고 행복한 마음이 봉긋 솟아올랐지만 나는 지은에게 그 마음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감정의 꼬리가 길고도 질긴 사람인가, 하고 마음이 내려앉았지만 어두워진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태연한 척 굴었다.
“그래서 학교 근처로 이사가게 됐어. 여기서는 아무래도 통학하기 어려우니까. 너도 시험 준비하느라 바쁘고 앞으로 이야기할 시간이 없을까 봐."
나는 지은이가 내 곁에서 멀어지게 되었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몇 달 만에 그 아이의 눈을 오랫동안 바로 보았다. 지은이의 투명하고 다정한 눈을 보자 의식적으로 꾹꾹 눌러 놓았던 속울음이 눈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 애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몸을 흔들며 울었다.
지은은 내 등을 한 번씩 토닥이며 왜 우냐고 물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내 울음의 연유를 이미 마음 깊이는 알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나는 그때 미안해, 너무 미안해, 비겁해서 미안해,라고 말했지만 울음소리에 묻혀 지은인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속으로 한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은 아침부터 눈이 많이 내렸다. 우리는 창가에 나란히 기대어 서서 조용히 그리고 무겁게 내리는 눈이 지붕과 땅을 하얗게 덮는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헤어졌다.
나는 지금 지은의 삶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애의 또렷한 정신과 고요한 내면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의 삶을 그대로 지탱하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지은은 여전히 지은답게 살고 있을 것이다. 분명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