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케 쇼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취준생 치고 소소한 하루치 과제—운동 또는 모임 또는 청소—를 완수하고 나면 오늘을 보람차게 보냈다는 기분이 든다. 뿌듯함도 잠시, 의욕은 사그라들고 몸은 자꾸만 침대를 향한다. SNS 속 친구들은 취미도 패션도 연애도 커리어도 너무나 성공적으로 이뤄내고 있다. 방구석에 비비적대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지 싶었는데 뉴스를 틀면 무기력한 청년이 아주 많다고 한다. 안도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안심은 이내 한심으로 바뀌어 스스로를 갉아먹는다. 1인분의 인생이 주어졌는데 나는 오늘도 0.2인분만 꾸역꾸역 해내고 바닥에 등을 도로 붙인다.
당신의 무기력은 당신 탓이 아니다. 입바른 위로도, 고도의 돌려까기도 아니다. 동아시아 세 국가의 청년세대가 공통으로 겪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취업 준비도 않고 '그냥 쉰다'고 응답한 한국 청년들, 세속적 욕심을 버리고 해탈한 '사토리(さとり) 세대', 치솟는 청년실업률에 누워있기를 선택한 '탕핑(躺平)족'의 출현은 무기력한 개인의 발밑에 공통된 중력이 도사리고 있음을 증명한다.
청년세대의 자기객관은 어느새 자기비관으로 치달았다. 현재를 직시하려던 이들은 현실의 처참함에 겁먹고 몸을 사리고 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어느 때보다 치열한 방어전을 벌이는 중이다. 일상으로 흘러들어오는 온갖 자극에 신경을 곤두세운 채 불안의 성벽을 굳건히 하며, 게으름과 우울증 사이를 저울질하며 자신의 일상을 아픈 손가락처럼 끌어안는다.
영화감독 미야케 쇼의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2020),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2023)은 오늘날 일본 청년세대의 모습을 가장 진솔하게 표현한다. 감독은 그들의 상황을 자극적으로 전시하지도, 태도를 나무라지도 않는다. 영화가 끝나면 검은 스크린에 비친 관객의 모습이 영화 속 인물과 중첩되는 순간이 온다. 그렇게 우리는 교훈이라는 아픈 가시 없이도 자신의 모습을 찬찬히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 죽음도 슬픔도 비껴가는 무위
'나(에모토 타스쿠 분)', '사치코(이시바시 스즈카 분)', '시즈오(소메타니 쇼타 )'의 관계는 좀 복잡하다. '나'와 사치코는 가볍게 연애하는 중이고 '나'와 시즈오는 룸메이트여서 세 사람은 단짝처럼 어울린다. 사치코와 시즈오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다가 둘이 진지하게 사귀게 됐다고 토로해도 '나'의 반응은 쿨하다. 사실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달은 '나'가 시즈오를 붙잡아도 그는 곤란하다는 표정만 지을 뿐이다.
몽환적으로 부유하는 카메라는 세 인물의 방황을 담는다. 무단결근, 밤샘음주, 섹스가 일상인 그들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목표가 없다. 현재에 집중하고 미래에 연연하지 않는 배짱이 아닌 안간힘으로 미래를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모양새다. 진지한 연애와 직업정신에 뒤따르는 책임을 어떻게든 회피하기 위해 바닷속 물미역처럼 흐물거린다. 삶을 뒤흔들 것처럼 보이던 가족의 병마와 연인의 배신도 그저 강한 해류일 뿐이다. 미역은 어쨌든 바위를 붙잡고 버텨야 한다. 그러니 흔들리는 모습은 자연스럽다. 무위한 일상이 모든 것을 비껴가게 한다.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삶의 타격조차 리듬이 되는 법
청각장애인 프로 복서 '케이코(키시이 유키노 분)'는 도쿄의 허름한 체육관에서 훈련받는다. 화이트보드와 수신호로 소통하는 케이코와 코치는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눈빛을 반짝반짝 빛낸다. 달군 눈빛 새로 콤비네이션 미트 트레이닝이 이어지면 잽, 위빙, 훅이 툭, 휙, 부웅 터져 나온다. 불리한 신체조건 때문에 경기에 지고 노년의 관장이 건강 문제로 체육관을 폐업하면서 케이코의 꿈은 위기를 맞는다. 그럼에도 일상은 여전히 툭, 휙, 부웅 이어진다.
케이코는 커리어에 대한 목표를 드러내지 않는다. 물론 시합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지만 복싱하는 이유는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아픈 게 싫다"는 진심은 또렷하게 표현한다. 케이코의 훈련 일기를 관장의 아내가 나직이 낭독하는 시퀀스는 케이코의 일상을 고유한 리듬으로 묘사한다. 'X월 X일, 날씨 흐림, 러닝 10km, 콤비네이션 3라운드. X월 X일, 날씨 맑음, 러닝 8km, 콤비네이션 4라운드...' 불안정한 미래와 그럼에도 단단하게 지속되는 일상이 만들어내는 삶의 운율은 '아픔'만큼이나 선명한 감각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다가올 펀치는 분명 아프겠지만 케이코는 오늘도 강변을 뛴다.
오늘 치 과제로 미야케 쇼의 영화 두 편을 봤다. 어떤 날의 나는 보잘것없는 인생을 허비하다가도 또 다른 날은 케이코처럼 끈질기게 일상을 지켜낸다. 맞고 틀린 걸 고르기엔 너무 지쳤다. 내려놓는 마음으로 영화 속 인물을 바라보자 마음속에 뭉클함이 피어올랐다. 그들은 삶 앞에 민낯이었다. 사람을 대할 때 가면을 쓰지도, 자신의 모습을 포장하며 스스로 기만하지도 않았다. 나는 으레 집어 들던 휴대폰을 내려놓고, 쪼그라든 나의 자아를 조심스럽게 두드려 펴기 시작했다. "내가 궁금한 건 오직 나야. 다른 곳에 눈 돌리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