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들의 침묵>
한니발과 클라리스에게 세상은 양들의 비명로 너무나도 시끄러운 곳이다.
천재적인 정신과 의사로서 인간 군상의 지겹고 더러운 바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야 했던 한니발은 식인함으로써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우리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양을 도살하고 먹을 수 있듯 그에게 인간은 자신 이하의 존재이기에 식인 행위에 아무런 죄책이 없다.
클라리스는 아버지의 사명을 이어받는다. 양들의 비명에 괴로워하고, 실패로 끝날 것을 알면서 어린 양 하나를 안고 도망친다. 양들을 구원하고자 한다. 예수가 양을 인도하듯 그녀 역시 그렇게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된다.
한니발은 한눈에 그녀를 알아본다. 그래, 너도 양들의 비명이 멈추기를 바라는구나. 양들의 침묵을 바라는구나. 나는 식인하고 너는 구원함으로써 그렇게 같은 목적을 바라는구나. 세상은 나를 사이코패스라 두려워하고 너를 훌륭한 요원이라 치켜세우지만, 그 경외의 끝에 우리는 비로소 양 이상의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다. 너는 나와 동일하다.
한니발은 클라리스에게 예우를 갖춘다. 그리고 그녀의 트라우마를 알고자 한다. 너는 나와 같은 수준이 맞느냐? 끊임없이 질문하고 추측하고 답을 갈구한다. 마침내 클라리스가 가여운 어린 양을 구원해내자 그는 그녀를 인정한다. 그래, 네가 살아있어야 아름다운 세상이지. 우리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잖아? 나는 또 한 마리의 양을 침묵으로 인도하러 간다. 너도 너의 방식으로 양들을 침묵으로 인도하거라.
극과 극은 맞닿아 있다. 어설픈 히어로와 고독한 빌런의 교감은 이 어지러운 세상을 침묵하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