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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가 있는 슬로바키아의 질리나

by 양문규

체코와 폴란드 국경에 접한 슬로바키아 북서쪽 질리나(Zilina)로 간 것은, 그곳 기아자동차 공장에 근무하는 K교수의 제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기아 공장을 왜 하필 그곳에 세웠는지 자세한 사정은 모르나, 브라티슬라바에 폭스바겐, 그리고 그곳서 질리나로 가는 중간 트르나바라는 도시에 푸조 공장이 있는 걸 보면 이쪽이 뭔가 자동차산업과 관련이 돼있는 곳이 아닌가 싶다. 질리나서 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체코 오스트라바에는 기아의 형제회사인 현대차 공장도 있어, 이 지역이 유럽으로 진출하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기지임은 분명하다.


질리나서는 K교수 제자가 정해준 숙소에 머물렀는데, 한국서 출장을 오는 이들이 많이 묵는 곳인지, 호텔 조식에 한국음식 코너가 따로 있었고 심지어 호텔 로비에는 질리나 한인교회의 예배 모임 광고도 눈에 띄었다. 나는 프라하에 살면서 한인교회를 열심히 다닌 편이었는데, 아마 질리나 한인교회도 기아자동차 직원들을 비롯해 이 지역 교민들의 구심점일 것이다. 질리나에서 프라하는 너무 멀어 질리나 교민들은 그곳 한인교회를 다니겠지만, 현대공장이 있는 오스트라바는 프라하에서 기차로 서너 시간 걸리는 곳이라, 그곳 직원들은 프라하에 가족을 두고 주말부부로 살다가 일요일에 가족들과 함께 프라하 한인교회를 나오는 걸 더러 봤다.



20141017_073656.jpg 질리나에서 묵었던 숙소



외국서 살면 교회 신세를 많이 지게 된다. 나는 장기체류자 신분이라서 프라하 도착하자마자 관할지 경찰서로 가 거주지 신고를 해야 했는데, 당장 교회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교민들은 거개가 체코어를 할 줄 몰라, 나를 도와준 한인식품 가게 집사님은 10살짜리 초등학생 아들을 데리고 나와 통역을 시켰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신세를 교회에 졌는데, 지금도 체코 생활서 많이 기억나는 것이 한인교회를 다닌 추억이다.


프라하 한인교회에는 교민들(당시 프라하 교민이 한 천 명 남짓 된다고 들었다.) 조금과 그곳에 주재하는 상사원들 몇을 제외하면, 신도들 대부분이 학생이거나 프라하를 놀러 왔다가 예배를 보러 두르는 관광객이었다. 그이들은 예배도 예배지만 특히 유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먹는 한국음식을 고대했다. 어떤 학생들은 음식이 남으면 봉지에 싸가지고도 갔다.


교회 식구들은 두 가족씩 짝을 지어 돌아가면서 70명 남짓의 음식을 준비하는데, 우리 부부도 생전 한국에서는 하지도 않던 음식봉사를 여기서 다 했다. 음식을 먹고 좋아할 유학생들을 생각하며 나름 열심히 했다. 언젠가는 프라하를 놀러 온 한국의 지인들이 우리가 음식 봉사하는 것을 기특히(?) 여겨 음식 장만하는데 보태 쓰라고 돈을 줘 그것으로 한인 가게에서 떡을 맞춰 신도들과 함께 즐겁게 나눠 먹은 추억도 있다.


아내는 한국에서는 잘 안 나가던 구역예배를 프라하에서는 나갔다. 구역 식구들과 헤어지게 되었을 때는 정이 듬뿍 들어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체코를 떠나던 당일 공항에서 구역 식구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목사님과 교회 식구들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이미 우리는 출국장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냥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는가 했는데 구역 식구 중 누군가가 출국장의 체코인 관리에게 사정을 해서 출국장 문을 간신히 열어놓고 서로들 손 한번씩 부여잡고 헤어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회학자 짐멜이, “디아스포라에 세워지는 교회는 신도들의 관계와 결속의 추축이 되며 그들에게 소속감을 일깨운다.”라고 했는데, 평생을 ‘나이롱’ 신자로 살아온 나에게 한인교회는 신앙의 문제를 떠나 특별한 추억이었다. 질리나 이야기를 하다가 한인교회 얘기로 빠져버렸는데, 내가 프라하 있을 때부터 얘기가 있어 왔던 넥센 타이어 공장이 작년 체코서 준공식을 가졌다. 글로벌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체코와 슬로바키아라는 먼 나라와, 우리 자동차 및 그 관련 산업 사이의 지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인연이 신기하기만 하다.



IMG_3195.JPG 질니라 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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