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부차트가든의 에프터눈 티

캐나다 중서부를 여행하면서, 이웃나라인 미국도 영국이 그 뿌리가 된 나라지만, 캐나다는 영연방 국가라서 그런지 유독 영국을 선망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러 면에서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가정집이나 공원 또는 공공장소에 꾸며놓은 정원에서 그런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내가 본 영국의 정원이라야 런던 시내에 광대하게 펼쳐진 왕립 또는 공립 공원 정도이지만, 18~19세기 영국 소설들을 읽으면 영국인들의 정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1813)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배우자가 될 이의 택지를 처음 방문했을 때, 자연의 묘미가 훼손당하는 일없이 정원이 자연스럽게 꾸며진 것에 흡족해한다. 정원에 대한 주인의 서투르지 않은 취향이, 주인에 대한 호감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캐나다 여행 당시 밴쿠버 건너 빅토리아 섬 한가운데 있는 부차트가든을 찾았다.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면서 상상했던 정원들의 모습이 거기 다 있었다. 이를테면 부차트가든은 프랑스나 이태리 정원과 달리, 자연의 풍취를 살린 영국의 전통적 풍경화식 정원의 전형이다. 

원래의 자연과 지형을 활용해 좌우대칭을 피하고 잔디, 암석정원과 화단, 관목림, 폭포, 작은 언덕 등을 배치했다. 계곡을 활용해 조성한 정원도 있고, 계곡수가 분수대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런 정원은 짐작컨대 근대초기 영국 중류계급에서 유행한 정원에 뿌리를 뒀을 것이다.   

부차트가든의 여러 정원들

부차트가든은 방대한 크기의 정원인지라 중간에 점심 식사도 하며 구경해야 했는데 밖으로 나올 수는 없으니 가격이 다소 비싼 그 안의 다이닝룸을 이용했다. 우리야 간단한 식사를 했지만 옆자리의 일본인 부부는 우리 먹은 음식 가격의 두 배가 넘는 ‘애프터눈 티’를 주문했다. 

남의 테이블을 자세히 쳐다볼 수는 없었고, 애프터눈 티는 티 포트와 함께 다과, 샌드위치, 아이스크림 따위가 담긴 삼층 접시 등, 음식도 음식이지만 성찬을 위한 집기들이 럭셔리하게 보였다. 분량은 두 사람이 먹기엔 많아 보였는데, 남은 음식은 싸가지고 가는 것 같았다. 

 

부차트가든 다이닝룸의 메뉴판

18세기 중반 영국 가정에서는 아침 식사 때는 가족과 차를 마시고 오후에는 친구나 지인과 함께 누군가의 집에 모여 애프터눈 티를 즐겼다고 한다. 맛있는 홍차와 다과는 안주인이 솜씨를 뽐내는 자랑거리였고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했다.

애프터눈 티가 탄생할 무렵 대서양 무역의 주요 상품이 설탕이었다. 당시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 설탕이 대량 유입된 것은 서인도제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 때문이다. 그리고 이 플랜테이션은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흑인 노예에 의존해 이뤄진다.

 

당시 설탕은 그 무엇에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향신료였다. 이 시기 영국의 설탕소비는 2500% 증가했다고 하는데  영국인은 모든 음식에 – 심지어 와인과 고기에까지 – 설탕을 첨가한다. 당시 영국으로 수입된 설탕은 다른 식민지 제품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았다. 

설탕은 중독성이 강한 일종의 ‘소프트 드러그’다. 그것은 홍차의 맛을 더 내기도 하고 초콜릿, 과자,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내면서 유럽 사회에 끝없는 소비를 창출시키며 사람들을 부단히 설탕 소비에 빠져들게 한다. 그리하여 이 설탕은 유럽 사회에 부르주아를 탄생시킨다. 

오스틴 소설 등에 등장하는 시골의 저택과 정원들은 서인도제도의 사탕수수 농장 사업서 얻어낸 거대한 수익에서 탄생했을 것이다. 영국 여성들은 우아한 저택과 정원(가령 맨스필드 파크)에서 설탕을 탄 맛있는 홍차와 함께 설탕으로 만든 달콤한 스콘을 즐겼으리라.  

부차트가든의 아름다운 영국식 정원과 이 정원을 보며 우아하게 즐기는 애프터눈 티는 바로 이러한 과거 영국 선조들의 부를 배경으로 한다. 나는 이 풍경이 부러우면서도 한편으론 18세기 설탕 산업이 창출해 낸 풍요로운 문화의 정체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