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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May 12. 2024

런던과 아테네로 나눠진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들

난 초등학생 때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장래희망이 고고학자라고 얘기하고 다닌 적이 있다. 슐리만 위인전을 읽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슐리만은 어린 시절 트로이 전쟁 이야기를 듣고 그것에 큰 감동을 받아, 커서 고대 트로이 유적 발굴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나중 알고 보니 슐리만은 정식 고고학자는 아니었고 사기꾼 기질이 다분한 부자 밀수상인이었다. 하긴 당시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막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었으므로 슐리만은 고고학자로서 정식 교육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슐리만이 발견했던 곳도 정작 트로이가 아니었다. 


그는 발굴을 한답시고 곳곳을 파내 고대 유적지 대부분을 파괴한다. 그리고 약탈하고 밀수한 고대 유물을 모국인 독일 베를린 소재 민족학 박물관에 기증해 독일국민에게는 큰 선물을 갖다 준다. 슐리만의 이런 부당하고 대담한 ‘문화이식’ 행위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런던의 영국 박물관을 관람했을 때다. 박물관을 들어서자마자 1층 초입에 있는 이집트, 그리스, 근동의 유물들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다. 관 채 가져온 클레오파트라를 비롯한 수많은 미라들, 아시리아 왕궁의 입구를 지켰던 인간사자상과 궁전 벽의 부조!


이집트의 미라(상), 아시리아 궁전 벽의 부조(중), 아시리아 궁전 입구를 지키던 인간사자상


파르테논 신전에 사다리 타고 올라가 떼 온 수많은 장식조각들, 어떻게 저리도 통째로 그리고 노골적으로 떼어 왔을까 하는 생각에 놀랍기만 했다. 당시 그리스는 오스만터키의 지배를 받을 때라 어찌할 경황도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도 울분을 금치 못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지역 안에 있는 박물관을 갔더니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의 장식 조각품 중 남아 있는 절반을 전시해 놓고, 영국이 가져간 반은 모조품으로 대체해 이를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장식조각들 중 특히 프리즈는 하나의 연속된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영국이 가져간 절반 때문에 나머지 남은 조각은 금방 티가 나 보일 수밖에 없었다. 슐리만이나 영국은 자신들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합리화하는 것일까? 얘기나 한번 들어 보자! 


영국박물관의 엘긴 마블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의, 영국이 가져간 파르테논 신전 조각의 모조품들


영국 정부와 영국 박물관 측은 파르테논서 가져온 조각품(가져온 사람 ‘엘긴’의 이름을 따서 ‘엘긴 마블’이라 부른다.)은 그리스만이 아닌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이며, 대기오염으로 악명 높은 아테네에 돌려줄 경우 훼손이 우려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파르테논 조각을 떼 온 엘긴의 경우 그의 아들인 제8대 엘긴 백작 역시, 1860년에 제2차 아편전쟁의 마지막 단계에서 프랑스와 연합해 북경 외곽에 위치한 여름 궁전을 약탈한 다음 이를 불태워버린 전력이 있는 자다.  


영국은, 독일이 그리스 문문을 가져간 사실을 떠올려, 자신들이 파르테논 신전 조각을 뜯어 간 것을 합리화할지도 모른다. 아주 먼 옛날 마케도니아 제국의 알렉산더 대왕은 세계 정복을 통해 엄청난 금은보화를 끌어 모았고 그것을 페르가몬이라는 도시에 저장해 놓았다. 


이 도시는 이제는 다 사라지고 없는데, 다행히 그 흔적이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조금 남아 있다. 독일은 자칫하면 다 사라져 버렸을 법한 인류의 문화유산을 자신들이 보존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영국은, 오늘날 그리스라고 불리는 현대 국가가 그곳에서 발견된 신전의 조각들에 대해 영국보다 더 많은 권리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왜냐하면 현대 영국도, 현대 그리스도, 그 조각이 제작됐던 시대에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령 현대 그리스가 고대 그리스를 계승한 국가라 간주한다면 그리스 현 정부는 오늘날 터키 지역서 발굴된 그리스 유적에 대한 소유권이라도 갖고 있단 말인가? 이런 여러 이유로 영국은 지난 200여 년 동안 그리스와 첨예하게 대립해오고 있다. 


파르테논 신전을 방문했을 2016년 당시, 한창 공사 중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는 강화도를 침입했다가 퇴각하면서 당시 조선왕실 도서관의 분관이었던 외규장각에서 의궤 340여 책을 약탈하고 나머지는 건물과 함께 불태운다. 이 약탈한 책들은 가져간 프랑스 자신도 오랫동안 그 존재 자체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임시직 사서로 일하던 한국인 박병선 박사가 그 책들을 발견하고, 한불 간의 오랜 협상 끝에 지금은 우리에게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상태다. 프랑스는 늘 한국이 문화재 관리를 제대로 해낼 능력을 있는지를 내세워 완전한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선, 강탈한 문화재의 원산국 반환이 당연하다는 ‘문화 민족주의’와, 국가 경계를 넘는 인류 문화유산의 보존과 연구를 위한 최적 환경을 따지는 ‘문화 국제주의’가 맞서고 있다. 


내가 전문가는 아니나 이를 민족주의 감정에만 기대서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반환을 위한 법적문제를 따지는 일도 중요하나, 특정 문화재가 바로 이곳에 있어야 하고, 이곳서 연구됨으로써 그 가치가 드러날 수 있다는 자국의 문화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 관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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