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문규 Jun 16. 2024

오스카 와일드와 마광수

내가 학부를 다니던 시절 마광수 선배는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자 조교로 있었다. 내가 그를 마광수 ‘선배’라 부르는 것은 선생이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너무 가깝고, 그를 ‘광수 형’이라 부르는 동기애들도 있었지만 그와 그럴 정도의 친분은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선배는 그때도 여러 기행(?)을 보이는 좀 희한하고 특이한 사람이긴 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지만 부활절 기간 중 채플 시간인 것으로 아는데, 그 예배시간에 무대 위에서 반라의 배우들이 팬터마임으로 공연하는 연극을 그가 연출했던 것도 기억난다. 


나는 친분도 없었거니와 기본적으로 마 선배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당시는 70년대 후반 유신독재정권의 말기로 내 딴에 문학은 시대의 사회역사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고 따라서 작가의 사회적 책무, 윤리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 선배는 이와는 달리 예술에 대해 심미적 관조자라 할까, 쾌락주의자라고 할까 그런 이였다. 세월이 흘러 나의 박사학위논문 심사 때 마선배가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들어왔다. 통상 심사는 3차에 걸쳐 진행하는데 1차가 끝나고 마선배가 나를 개인적으로 불렀다. 


그때 내 논문의 주제는 한국의 근대소설을 식민지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관련을 지어 설명하는 것이었다. 마 선배는 나에게 문학을 꼭 그런 식으로 공부해야 하냐고 물었다. 자기는 그런 심사에 참여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서 논문을 통과시키기는 하겠지만 이후 심사에는 참석하지 않고 심사평은 서면으로 적어 보내겠다고 했다. 나는 ‘불감청고소원’이라 생각하면서 애써 그를 무시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많이 아쉬운 생각이 든다.   


마 선배 생각에 궁극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당시 그가 어떤 글을 썼는지 나름 열심히 읽어봤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후회도 있다. 적어도 그의 관점을 톺아 보면서 나의 생각들을 좀 더 내실 있게 다듬었어야 된다는 생각이다. 


그를 옥살이까지 하게 한 <즐거운 사라>조차 나는 제대로 읽지도 않고 소문으로만 듣고 비난하기에 바빴다.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1891)을 읽다 보면 마 선배 생각이 와일드와 꼭 똑같은 건 아닐지라도, 그의 의견도 경청할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프랑스에 보들레르, 랭보 등의 예술지상주의 문학가들이 있듯이 영국에는 오스카 와일드가 있었다. 오스카 와일드의 유일한 장편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는 젊은 시절 쾌락을 추구하며 살아간 아름다운 청년 도리언 그레이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레이의 아름다움을 흠모해 그의 초상을 그린 화가, 또 그레이를 유미주의 또는 쾌락주의적 삶으로 인도하는 귀족 평론가가 등장한다. 실제 오스카 와일드는, 소설 속의 도리언 그레이와 같이 예술지상주의를 지향하고, 쾌락주의의 삶을 추구하다 불행한 삶을 마친다. 


이 소설에는 나 같은 이의 문학관에 뼈를 때리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한다. 가령 이런 내용이 있다. “진정한 예술가는 대중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남을 위하고 이롭게 한다는 소위 이타심이란 다른 사람들의 삶을 간섭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는 것을 말한다.”


“이기심은 늘 주변에 전적으로 획일적인 유형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웃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똑같은 의견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이기적이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세계적 대문호 톨스토이는 이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했다.     


톨스토이는 예술에서 이른바 ‘도덕적 감염론’을 주장한다. 그는 진짜 예술이란 어떤 한 사람이 어떤 작가의 도덕적으로 진지한 정신 상태에 감염돼 그 정서를 느끼고, 또 그것에 의해 타인과의 결합을 느끼는 정신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오스카 와일드는, ‘문학이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며, 문학의 윤리성을 강조하는 사람들과는 반대의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오스카 와일드 소설 속엔 부르주아 중산층의 건강한 상식을 공격하고 야유하는 말도 즐겨 등장한다.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비겁함과 같은 것! 분별력은 꼰대들이 즐겨 쓰는 허울 좋은 말이다!” 또 이런 말도 한다. “평생 한 사람만 사랑한다는 건 지적 영역에서 한 가지 견해만 고집하는 것과 똑같고 우리는 이를 관습적 무기력이나 상상력 부족이라 부른다.”


오스카 와일드에게 쾌락주의란 삶의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의 쾌락주의는 퇴폐주의로 치닫고 이내 파멸로 끝난다. 그러나 와일드는 과연 이조차 파멸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는 “삶 전체가 어차피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지용의 슬픔과 임화의 분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