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일담」과 『화산도』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제주 4‧3 사태를 그린 현기영의 「순이삼촌」(1978)이 발표된다. 이 소설은 언급 자체를 금기시해 오던 4‧3 당시 제주도 양민학살 사건을 그린다. 작가는 이 작품 때문에 당시 수사기관에 끌려가 고문을 당하는 등 개인적으로 큰 필화를 겪는다.
지금의 시점서 보자면 특별한 이념적 색깔 없이 담담히 제주도민의 수난을 그리고 있음에도, 당시로서는 이러한 소재를 갖고 작품을 쓴다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다. 그런데 실은 이미 오래전 4‧3을 다룬 소설이 깜짝 등장했다가 별 주목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적이 있다.
4·19 직후 상대적으로 정치적 자유를 누린 시절의 덕을 본 때문인가 싶은데, 「갯마을」(1955)이라는 토속적인 서정소설로 유명한 오영수가 「후일담」(1960)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오영수 작품 중에서도 다소 예외적인 작품이기는 하다.
「후일담」은 「순이삼촌」에 비하면, 아주 소략하게 4‧3을 그리지만, 이 작품에서 오히려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후일담」에 등장하는 ‘국민학교’ 교사 남편은 ‘제주도 반란’(오영수는 4‧3을 이렇게 지칭한다.) 당시 반도(叛徒)로 낙인찍히면서 행방을 감춘다.
아내는 남편 때문에 경찰로부터 감시와 고문을 당하면서 끊임없는 위협에 시달리자, 시댁 마룻장 밑 광에서 수개월 은신한다. 도저히 그 생활을 견뎌낼 수 없자 마침 시댁 집으로 하숙을 들어온 군인 박 중위에게 구명을 호소해 ‘양민증’을 발급받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 남쪽의 전세가 불리해지자 경찰에서는 재빨리 부역, 귀순, 반도의 가족부터 검거를 시작하는데, 박 중위가 구해준 여인은 결국 이때 경찰에게 바다로 끌려가 수장을 당한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것은, 반도의 아내를 구명하는 과정에서 군부대와 경찰당국 간의 갈등이 그려진다는 점이다. 박 중위가 속한 제주도 파견 국방군 연대는 제주도민에 대해 비교적 호의적인데 반해, 경찰은 양민들을 가혹하게 대하는 것이다.
오영수가 이러한 군과 경찰의 갈등에 대해 어떤 정보를 갖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로부터 한참을 지나서 제주도 출신의 재일동포작가 김석범의 『화산도』라는 소설이 등장한다. 오랜 세월의 작업 끝에 1997년 완성된 이 작품은 4‧3의 거의 모든 걸 그린 대하역사소설이다.
원작이 일본어라 번역본으로 읽어야 하나, 자이니치 작가이기에 남도 북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4‧3을 보는 고유한 시각이 나타난다. 이 소설의 미덕은 딴 지면을 빌려 얘기해야 할 터이고, 이 작품은 4‧3이 비극적으로 확대되는 결정적 계기를 경찰이 조장한 것으로 못 박는다.
1948년 4월 3일(토요일) 오전 두 시를 기해 제주도 전 지역 14개 지서에 대한 게릴라들의 습격이 결행된다. 이 습격으로 경찰 측이 다섯 명, 게릴라 측도 열 명의 사망자가 난다. 그러나 4월 28일 국군 대표와 게릴라 대표가 어렵사리 만나 평화협상을 하면서 정전이 이뤄진다.
이 평화협상의 성립은 경찰에게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식으로 큰 충격을 준다. 협상의 결과, 경찰의 게릴라 토벌대는 미군정청의 명령으로 출동이 정지되고 섬의 치안책임은 전적으로 국방경비대에 위임된다. 권한이 크게 제한된 경찰당국은 군의 지휘 아래 들어간다.
이에 경찰로서는 기사회생의 비책이 필요했다. 4‧28 평화협상을 물거품으로 만들기 위해, 5월 3일 평화협상으로 한라산에서 하산하는 귀순 게릴라들을, 게릴라 부대로 위장한 경찰 측이 기습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비극적 대학살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당시 제주도 경찰은 서북청년회 출신들과의 혼성부대로 돼있었다. 공산당에 쫓겨 월남한 서북청년들은 제주도 ‘빨갱이’들에 대한 적개심에 불탔다. 당시 미 중앙군정청 경무부장인 조병옥은 서북청년회본부에 요청해 500명 회원을 경찰관으로 임명한 뒤 제주도에 파견한다.
조병옥은 해방 직후 미군정이 가장 중시한 경찰수장에 발탁된 자다. 그는 미션스쿨인 공주 영명학교 졸업생으로 미국유학파 박사다. 미군정 고문 윌리엄스의 아버지는 조병옥이 졸업한 영명학교를 세운 선교사다. 조병옥은 이런 인연 등으로 미군정하 출세의 가도를 달린다.
조병옥은 해방정국서 4‧3을 잔혹하게 진압하는 등, 이승만의 정치적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 한다. 마키아벨리즘의 총아 이승만은 대통령이 된 후 조병옥을 탐탁지 않은 야당 세력으로 배척한다. 조병옥은 이승만과 대결코자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급서 한다. 이어 4‧19가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