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낳은 기타리스트 프란시스코 타레가가 작곡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언젠가 스페인을 여행하면 꼭 알람브라 궁전을 둘러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 마음을 먹은 사람은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의 배경이 됐다는 절벽 마을 론다를 떠나 알람브라가 있는 그라나다를 향할 때만 해도 꿈에 부풀었다. 해바라기는 이미 저버렸는지 눈에 잘 안 띄었지만, 올리브 밭을 달구는 태양 아래 고원을 달리면서 아내는 참으로 행복해했다.
스페인은 꽃보다 빛나는데. 자연은 태양으로, 성당은 황금으로라고 한다. 아내는 스페인의 하늘과 태양을 유독 사랑했다. 반면 운전하는 나는 작열하는 태양에 얼굴을 두들겨 맞는 기분이었다. 선글라스조차 없던 게 실책, 이마에서 비 오듯 흘러내린 땀으로 눈은 맵고 쓰렸다.
간신히 그라나다에 도착하여 구시가지의 미로로 들어섰지만, 출발 때부터 작동이 시원치 않았던 내비게이션은 그나마 멈춰버렸다. 보통 나는 도심 외곽에 싼 숙소를 정해 그곳에 차를 주차해 놓고 시내 관광을 하는 식이었는데 그라나다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숙소예약을 해오던 사이트에서 우수고객에게 주는 사은 쿠폰을 받아, 알람브라 궁전과 가까이 있는 럭셔리한 호텔서 숙박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숙소를 기를 쓰고 찾아갔는데, 호텔서는 약도 하나를 내주며 공영주차장에 차를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낯선 환경에다 집중력이 떨어져 골목 이리저리를 헤매다가 차도와 인도를 가르는 봉에 차 앞 범퍼부터 시작해 문짝을 지나 뒤 범퍼까지 보기 좋게 긁었다. 게다가 보험은 렌터카 회사 것이 아닌 싸구려 보험을 들어 놓은 터라 더 막막했다.
그래도 알람브라 궁전은 보아야 하지 않겠나! 근데 여기 와서야 입장권은 몇 달 전에 예약해야 된다는 걸 알았다. 아니면 새벽같이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요행으로 당일 표를 구하는 것이다. 호텔서 소개한 가이드가 안내하는 단체관람도 있는데 그건 무지무지 비쌌다.
사고만 안 났어도 이것저것 시도해 볼 텐데 그냥 포기했다. 숙소와 지척인 궁전을 바깥만 보고, 궁전 뒤 언덕길을 올랐다. 암만 꼭대기로 올라가도 궁 안은 꼭꼭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저녁이 되자 알카사바 성 위의 검푸른 하늘의 용솟음친 구름으로 노을이 타들어 갔다.
해질 무렵 산 아래서 성을 올려다보면 그것이 마치 붉게 타는 것 같다고 해서 백성들이 ‘알람브라’라고 불렀다. 알람브라는 아랍어로 ‘붉다’는 뜻이다. 혹은 성을 짓던 시절 밤에 횃불을 밝히고 붉은빛 아래서 공사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있다.
나는 아내에게 “궁 안만 구경하고 다녔으면 알람브라의 낙조를 볼 수 있었게냐?”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그러자 아내 역시 자기도 이 석양이 더 마음에 든다며 상심한(?) 나를 위로해 줬다. 차 사고나 내고 뭔 개소리냐고 대꾸해 줬으면 훨씬 마음이 편했으련만……
곧 사위가 어두워지며 바람은 서늘해졌다. 아주 멀리서 기타와 캐스터네츠 소리가 들려왔다.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은 아니었다. 그러나 들려온 그 음악 역시 화려함과 호사로움의 극치를 이룬 알람브라 궁전을 버리고 떠나야 했던 스페인 무슬림들의 애환을 떠올리게 했다.
1492년, 800년간 스페인을 지배해 온 이슬람의 역사는 그라나다를 마지막으로 결국 막을 내리고 새로운 기독교 세력이 들어선다. 정작 이슬람 몰락의 정점은 1499년이다. 광기의 성직자 히메네스 추기경은 그라나다의 민족 구성을 바꾸고 이슬람 문화의 흔적을 모조리 제거한다.
그는 그라나다의 도서관의 책 200만 권가량을 중앙 광장에서 불태운다. 그러나 새로운 지배자들조차 그 아름다움을 거부하기 어려웠던지, 알람브라 궁전만은 남긴다. 그리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나 19세기 서구의 낭만주의자들은 자기들 방식으로 알람브라를 재발견한다.
타레가의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도 이런 배경서 태어난 곡이다. 그의 또 다른 기타 곡 ‘아라비아 카프리치오’도 ‘알람브라의 추억’ 이상으로 신비롭고 에그조틱하다. 나는 이 곡들을 떠올리면서 감상에 젖어 성 아래 언덕을 내려왔다
그러나 이 감흥 역시 마지막 장면에서 깨졌다. 차 사고로 밥맛도 없다가 비로소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궁전 근처에는, 이곳이 왕년에 무슬림들의 도시였다는 것을 장삿속으로 이용하려는 듯이 어설픈 케밥 집들만이 즐비했다. 알람브라 같이 꾸며놓은 케밥집은 더 가관이다.
옛날 아랍상인의 거리(알바이신)에 있는 한 케밥 집을 갔다. 관광지 음식이 다 그렇기도 하지만, 이태원서 먹는 것만도 훨씬 못한 엉터리 케밥을 먹고 나왔다. 감상에 젖어 떠올린 ‘알람브라의 추억’은 잠깐이고, 차 때문에 속상해하며 잠 못 이루는 그라나다의 밤을 보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