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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문규 Oct 20. 2024

이인직 신소설의 무대는 왜 모두 강원도?

우리나라 최초의 신소설 작가 이인직에게는 네 편의 신소설 작품이 있다. 그중 『혈의루』(1906)는 청일전쟁을 무대로 하니 그렇다 치고, 나머지  『귀의 성』(1907)과 『치악산』‧『은세계』(1908)는 모두 강원도를 무대로 하고 있다. 나는 강원도에 있는 대학에 근무했었다.


한국현대소설사 수업은 이인직의 신소설부터 시작되는데, 공교롭게도 이인직 작품들 거개가 강원도를 무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 중에는 당연히 강원 지역 출신이 많으니, 이들에게는 이인직 소설이 학습동기(?)를 유발할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인직은 강원도 사람은 아니다. 출생지는 경기도 음죽으로 돼있다. 현재 음죽이라는 지명은 없어졌는데 경기도 이천쯤 되는 곳이다. 비록 이인직이 강원도 출신은 아니나, 그가 자신의 작품들 무대를 주로 강원도로 설정한 건 우연은 아닌 듯싶다.  


『귀의 성』은 강원도 춘천 삼학(악) 산 남내면 송현이 무대다. 이곳에서 사는 ‘강동지’에게는  딸 ‘길순’이 있다. 길순은 서울에서 춘천 군수로 내려온 김승지의 첩이 되고 이후 그를 쫓아 서울로 간다. 그러나 본처의 구박을 받고 끝내 본처의 흉계로 살해되는 비극적 이야기다. 


『귀의 성』은 권세를 이용해 축첩을 일삼는 탐관들을 강하게 비난한다. 강동지는 “양반을 보면 대포를 놓아 씨를 없애고 싶다”든지, “춘천부사인지, 군수인지, 인피 벗기는 불한당들이 번갈아 내려오는데, 이놈이 가서 살겠다 싶으면 오는 놈마다 그놈이 그놈이라.”라고 분노한다.


그럼에도 춘천 사람 강동지는, 결국 딸을 첩으로 보내고 서울의 양반 사위를 얻어 집안 셈을 펴보겠다는 무지한 인간이다. 강원도는 그러한 몽매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그래서 탐관들의 수탈도 더 용이하게 이뤄지는 것이다.   


원주 단구동이 무대인 『치악산』은 작품 제목부터 ‘치악산’이다. 치악산은 “원주 경내에 제일 이름난 산”이라고는 하지만, 이인직이 보기에 치악산은 “명랑한 빛도 없고 기이한 봉우리도 없고 시꺼먼 산이 너무 우중충한” 불길하기 짝이 없는 산이다.   


더욱이 치악산 깊은 곳에는 “백주에도 호랑이가 득시글거려 남의 고기 먹으려는 사냥포수가 오히려 제 고기로 호랑이의 밥을 삼는 일이 종종 있는” 곳이다. 치악산은, “범이 개 끓듯 ”하고 “화적당들이 자가사리 끓듯 득시글대는 흉악한” 야만의 장소다.      


원주 단구역말로 시집온 개화양반 딸 이 씨 부인은 계모 시어머니의 박대와 모함으로 치악산에 버려져 갖은 수난을 겪는다. 이인직이 보기에 강원도 치악산은 수구의 어두운 세력이 판치는 미개와 야만의 상징이다. 


『은세계』의 무대는 강원도 대관령 아래 있는 강릉의 금산 마을이다. 대관령은 지금도 그렇지만 눈과 바람으로 유명하다. 작품에 묘사되길 그곳엔, “겨울 한 철에 바람이 심할 때는 기와장이 훌훌 날리고, 눈이 많이 올 때는 지붕 처마가 파묻힌다.” 


작품은 저녁 해가 떨어지면서 대관령에서 눈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폭설이 내리는 대관령 또는 강원도는 중앙과의 단절을 더욱 느끼게 한다. 한 강원도 출신 작가는, 강원도 사람들은 “눈 때문에 세상이 막히는 때가 견디기 힘들었다.”라고 얘기한다.  


『은세계』의 주인공 ‘최병도’는 강릉 사람으로 자신의 재산을 갈취하려는 부패한 봉건관료에 저항하다 원주 감영에 끌려갔다가 반죽음이 돼 옥에서 풀려난다. 그는 ‘삼백 삼십 리’ 길을 되돌아 고향으로 돌아오나, 고향을 눈앞에 둔 채, 대관령 고갯마루턱 성황당 밑서 숨을 거둔다. 


폭설로 대관령 아래 강릉 동네의 사람들이 갇힐 때 그곳에 사는 힘없는 백성들은 중앙으로부터 분리, 단절된 소외감을 더욱 가질 수밖에 없다. 이인직 소설에 등장하는 강원도 무대는 문명개화와 대비되는 야만, 미개의 공간이거나 문명으로부터 소외된 공간이다. 


이인직은 이러한 강원도라는 미개, 야만의 공간을 무대로 설정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려고 한 것일까? 강원도라는 공간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이 시기 조선 사람들 역시 야만스럽고 용렬하고 미개화한 백성들이다. 이런 백성들의 나라는 필연적으로 망할 수밖에 없다. 


『은세계』에는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 혹은 망하기를 기대하는 이야기가 무려 여섯 군데 이상 나온다. 이러한 필연적 망국론은 곧 일본 등 외국 세력의 개입이나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즉 우리가 나라를 잃은 이유를, 일본의 탐욕이 아닌 우리가 무지하고 몽매했기 때문이라는  내부의 문제에서 찾는다. 따라서 조선 사람들은 남보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먼저 탓해야 한다. 이인직은 이완용의 정치비서가 돼 막후에서 한일합방을 성사시키는데 열심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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