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말기 숙명여중에 입학한 박완서 작가는, 당국의 조선어 말살 정책에 따라 학교에서 한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나 보다. 해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정식으로 한글을 배우고 난 후 최초로 읽은 한국 현대소설이 여성작가 강경애의 「지하촌」(1936)이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한국 빈궁문학의 수작으로 알려져 있다. 박완서는 이 소설을 읽다가 욕지기가 나 먹은 음식을 다 토해버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과연 어떤 장면이었기에 그랬는지 궁금하다. 실제 이 작품을 읽다 보면 도처에 그럴 법한 장면들이 나오기는 한다.
「지하촌」의 ‘칠성’은 어려서 경풍으로 절름발이가 된 소년이다. 아비 없는 칠성은 동냥을 해, 품삯 일을 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한다. 소설 내 사건은 칠성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이 작품이 정작 얘기하고자 하는 건, 극빈에 처한 농촌 여성의 비참한 현실이다.
이를 좀 유식한 표현을 빌려 말한다면 ‘빈곤의 여성화’ 또는 ‘빈곤의 모성화’라고 부르는 것이다. 성별로 보자면 가난은 모두에게 똑같이 오지 않는다. 「지하촌」은 가사노동과 농사일이라는 이중의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농촌여성의 현실이 충격적으로 그려진다.
먼저 극도의 궁핍한 현실과 불결한 해산 환경으로, 자식을 불구자로 낳거나 죽게 하는 비참한 상황이 그려진다. 앞서 말했듯이 칠성은 어린 시절 경풍으로 절름발이가 되고, 칠성이 짝사랑하는 이웃집 ‘큰년’이는 눈이 먼 불구로 태어난다.
큰년 어머니는 남의 집 밭일을 하다가, 큰년의 동생을 낳게 된다. “내남없이 가난한 것들에게 새끼가 무어겠니?”하는 동네 부녀들의 한탄이 무색하게, 큰년네 아기는 낳자마자 죽는다. 산모의 뱃속서 나온 아기가 얼마나 밭고랑을 타고 헤맸는지 아기머리가 다 흙투성이가 된다.
사람들은, “그게 살면 또 병신이나 되지 뭘 하겠니? 눈에 귀에 흙이 잔뜩 들어갔다는데, 아이쿠 죽기를 잘했지, 잘했지!”라고 말한다. 또 설사 아기가 태어났다 하더라도 애들을 양육해야 하는 현실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동냥을 마친 칠성이 집에 오면, 동생은 형이 얻어오는 과자나 사탕을 찾는다. 동생이 업고 나온 아기도 머리를 갸웃하며 칠성을 바라보고 손을 내민다. 어머니는 늘 그렇듯이 밥 바리에 보를 덮고 김을 매러 나갔다. 칠성은 수저를 들고 보를 들친다.
국에는 파리가 빠져 둥둥 떠다니고 밥 바리에 붙었던 수없는 바퀴 떼는 기겁을 해서 달아난다. 칠성은 파리를 건져 내고 밥을 푹 떠서 입에 넣었다. 밥은 도토리가 대부분이고 밥알은 어쩌다가 씹힐 뿐이다. 아기는 밥알마저 없어 도토리만 먹다 다 캑캑하고 게워 놓는다.
아기는 먹은 게 없으니 나올 똥이 없다. 봉당선 파리가 와그그 끓는데, 그 속에서 아기가 똥을 눈다. 깽깽 힘을 쓰니, 똥은 안 나오고 밑이 손길같이 빠지고 거기서 빨간 핏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아기는 기를 쓰느라 두 눈을 동그랗게 비켜 떠, 얼굴의 힘줄이 칼날같이 일어난다.
그 조그만 이마에 땀이 비 오듯 하고 봉당에서 피똥을 누느라 병든 고양이 꼴을 한 그런 아기를 낳을 바엔 차라리 진자리에서 눌러 죽어 버리는 것이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박완서는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기어이 먹은 것을 다 토한다.
아기의 머리에 종기가 지질하게 났고, 거기에는 언제나 진물이 마를 사이가 없다. 그 위에 가늘고 노란 머리카락이 이기어 달라붙었고 또 파리가 안타깝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아기는 자꾸 그 가는 손가락으로 머리를 쥐어 당기고 종기 딱지를 떼어 오물오물 먹었다.
이웃 개똥어머니가 쥐 가죽이 약이라기에, 어머니는 쥐를 잡아 아기의 머리에 갖다 붙였다. 아기는 종기가 나려고 가려운 모양인지 자꾸만 그걸 떼려고 했다. 어머니가, 아기의 머리에 씌운 헝겊을 잡아 걷으니, 쥐 가죽이 딸려 일어나고 피를 문 구더기가 아글바글 떨어진다.
한 원로작가는 한국의 단편소설을 엄선해 영어로 번역한 『The Rainy Spell & the Korean Stories』가 나왔을 때, 강경애의 「지하촌」이 선집에 포함된 것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하층민의 지독한 가난이 한국문학의 대표적 소재가 됐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인 셈이다.
예술에서 삶을 긍정하고 즐거움만을 찾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아마도 이 소설이 고통스러울 것이다. 화가 밀레는 자신은 결코 고통 없이 지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고통은 예술가들 자신을 가장 정열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