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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루체른의 바그너 박물관에서

by 양문규

스위스 도시 중 아름다운 도시 아닌 데가 있겠냐만, 루체른도 루체른 호수와 웅장한 리기 산으로 그 명성이 높다. 라흐마니노프는 루체른 호수에 면한 암반 노두를 폭파해 별장을 짓고 살았다는데, 바그너도 한때 루체른 호숫가서 살고 현재 그의 집은 박물관으로 운영된다.


1561977837695-8.jpg 스위스 루체른의 바그너 박물관


나는 솔직히 말해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의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의 오페라는 엄청 길고 지루해(?) 끝까지 제대로 들어본 게 없다. 단 그의 오페라의 서곡들이나 합창곡, 행진곡들 중에는 귀에 익숙한 것도 있고 독일민족의 힘찬 기상을 듣는 것 같아 좋다.


『뉘른베르크의 가수』의 「현상의 노래(Prize Song)」도 꽤 멋진 아리아이기는 하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다. 그의 음악을 일부러 그 이상을 넘어 듣고자 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그가 ‘반유대주의자’이고, 히틀러가 바그너 음악 마니아였다는 사실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바그너는 음악 말고 사회 다방면에 걸쳐 많은 글을 썼다. 그중 「음악에서의 유대주의」라는 글은 문제가 많은 글이다. 그는 유대인 음악가를, 독창적인 내용을 일궈내기보다는 다른 이들의 생각을 훔치고 이리저리 뒤섞음으로써 자칭 예술가연 하는 이들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 당시 자신과 같은 오페라 작곡가였던 마이어베어를 반유대주의 표적으로 삼아 공격한다. 그러나 괴테는 오히려 마이어베어가 자신의 극시 『파우스트』를 음악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최고의 작곡가 후보 중 하나로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바그너가 마이어베어를 비난한 데에는 유대인도 유대인이지만, 당시 오페라 무대에서 그가 거둔 막대한 성공에 시기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참고로 바그너는 멘델스존도 살아생전에는 그렇게 칭찬했지만 죽고 나서는 유대인 음악이라고 비난을 해댔다.


앞서 말했듯이 바그너 오페라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길다. 지루해서 듣고 있노라면 어떤 때는 소음으로까지 들릴 정도다. 거기다 긴장된 금관악기의 소리와 남성 성악가들의 높은음과 거친 성량은 생각만 해도 힘들다. ‘바그네리안’들한테는 좀 미안한 얘기이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바로 이 운명론적이고 비장미 넘치는 바그너 음악에 빠진다. 가난한 젊은 시절 그는 식비를 아껴가면서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바그너의 오페라를 보고 또 본다. 히틀러는 정권을 잡고 나서는 나치 전당대회가 열릴 때마다 바그너 곡들을 행사음악으로 쓴다.


바그너의 오페라가 신화에서 소재를 많이 가져오고 히틀러는 신화적 영웅을 숭배하고 이런 점에서 바그너 음악이 히틀러의 코드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바그너 오페라가 보여주는 스펙터클, 파노라마, 거대성은, 파시즘 정치를 미학화 하는 데도 적절히 이용된다.


예술에서 유머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바그너가 적성에 안 맞는다. 예술 속 유머는 숭고함을 거스르고 신성을 배제하고 인간적인 것을 지향한다. 바그너는 인본주의보다는 국수주의를 노골화한다. 그의 음악이 위압적이고 진지해 보이고 심각해 보일 수밖에 없다.


바그너 박물관에는 바그너의 부인 코지마의 초상화도 있고, 그녀의 자취들 역시 살펴볼 수 있다. 코지마의 유대인 혐오는 남편 바그너보다 한 술 더 떴다. 그녀 역시 남편과 마찬가지로 재능 있는 유대인을 인정하는 아량이 조금도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말러가 빈 궁정오페라 감독으로 임명될 때, 코지마는 그가 오로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임명을 저지하러 나서 말러는 쓰라린 상처를 안는다. 말러는 리스트의 딸이자 바그너의 아내로서 코지마를 대단히 존경했기 때문이다.


스위스 바젤의 대학 교수로 와있던 철학자 니체 역시 처음엔 바그너 음악의 매력에 빠진다. 니체는 음악이 철학보다 윗길이라 생각한 자다. 그는 바젤에 있을 때 루체른의 바그너 집을 수도 없이 방문한다. 누구 말에는 바그너의 아내 코시마를 연모하기도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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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1986943271.jpg 루체른 바그너의 집에서 좌측부터 코시마, 바그너, 코시마의 아버지 리스트(위), 코시마의 초상화(아래)


그러나 니체는 점점 국수주의 또는 범 게르만주의로 나가는 바그너 음악에 실망하고 나중엔 그를 비난하는 것으로 선회한다. 괴테는 “세계로부터 가장 확실하게 도피하는 방법으로 예술만 한 게 없고, 세상과 가장 확실하게 결합하는 방법으로도 예술만 한 게 없다”라고 말했다.


바그너 음악은 도피는 아니로되, 그렇다고 그것이 세상과 제대로 된 결합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멀리 포플러나무가 도열한 루체른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흰색 벽과 암녹색 덧문의 바그너 박물관은 이와는 무관하게 그지없이 평화롭기만 했다.


1561977824122-29.jpg 바그너 박물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루체른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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