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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잇샤 May 23. 2020

북한 사람 만나러 시베리아 삼만리

폴란드 교환학생기 - 2



그땐 러시아에 당장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울란우데 닷산에서


왜 그랬을까,

아직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러시아에 가서 당장 북한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남한에 대해 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우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정말 북한 사람.



그래서 나는 4년 전 아주 추웠던 겨울,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아빠한테

처음으로 러시아 여행 가는 걸 들켰는데,

23살에 내가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딸이 2년 전 겨울에

혼자 여행 왔던 곳을 오게 된 아빠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분명히 바르샤바로 교환학생을 간다는데,
비행기는 블라디보스톡으로 가는 걸 탄다는 거야.  그제야 물어보니깐
한 달 동안 혼자 여행한다고.
그땐 러시아 여행 많이 갈 때도 아니잖아.
이미 다 예약해놨는데 못 가게 할 수도 없고.
아주 미칠 뻔했다니깐.


아무튼 아빠의 입을 통해 들었던

21살에 나는 참 무모했다.




이르쿠츠크 - 너무 추워서 맨날 패딩 두개는 기본으로 입었다.


그때 내가 탔던 비행기는 아에로플로트였는데,

그 이유는 국적기인 대한항공을 타면

중국으로 돌아가는 반면에

러시아 항공기인 아에로플로트는

북한 상공을 날아간다기에

혹시나 북한 땅을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이 비행기를 택했다.


북한 상공에서 찍은 북한 사진


나는 한 달 동안 러시아 여행을 할 때

호스트가 호스팅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던

이르쿠츠크, 울란우데를 빼놓고는

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현지인 집에서 숙박을 해결했다.


그래서 여행객들이 다니는 곳보다는

좀 더 현지인들이 다니는 곳을 많이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 집에서 자고

그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러시아에 대한 애정도

조금씩 생겨났다.

이 여행을 통해 만났던

친구들은 아직도 연락하며 지내는데,

한 친구는 내가 23살에

블라디보스톡으로 어학연수를 갈 때

정말 큰 도움을 주었다.

독수리 전망대




정말 아직도 잊을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이 있지만,

가장 잊을 수 없던 순간은

내 여행의 목적이었던

북한 사람을 만났던 때였다.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내가 우수리스크라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이다.

우수리스크는 굉장히 작은 시골 동네인데,

이 곳에 고려인들이 참 많이 살고 있다.

그래서 고려인 문화센터도 있는데,

이 곳은 한국사람들이 패키지여행으로 오면

꼭 들리는 필수코스이다.


나 역시 한국인이기에 그곳을 혼자 찾아갔는데,

마침 내가 갔던 날이 설날 당일이어서

고려인들이 모여 설날을 맞이해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뒤에서 혼자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회자가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서 온 블라디보스톡 대사가

연설을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하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바로 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분이

벌떡 일어나서

무대 위로 올라가셨다.

그분 왼쪽 가슴엔 북한 배지가 달려있었는데,

눈으로 봐도 믿기지가 않아서 놀라고만 있었다.


고려인 문화센터 설날 맞이 잔치 (?)


그런데 그분의

"우선 나는 음료수를 마시며 동무들을

열렬히 환영합네다!!"라는
환영사를 듣고 나서는 믿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블라디보스톡 대사의 연설이 끝난 뒤에는
북한 여성 두 분이 무대에 올라오셔서
반갑습니다를 부르며 축하무대를 해주셨다.
반갑습니다를 따라 부르면서 들으니
고려인, 남한인, 북한인 할 거 없이
그냥 한국인으로서 설날을

함께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하기도 했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리고 언제쯤

다 같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울란우데에서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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