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숙한 고통, 김범
사랑이가 사라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눈 앞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졌다.
리움미술관에 교회 아이들을 데리고서 김범의 '바위가 되는 법' 전시를 관람하러 왔다. 선생님들까지 총 20명. 예배 후 번개로 이 전시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 사람이 나였고, 그래서 20명의 티켓팅과 인솔을 지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김범 전시장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맨 앞에 섰던 사랑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랑이는 내 딸이다.
설마. 얘가 먼저 전시장 안에 혼자 들어가서 관람하고 있느라 안보이는건가? 나는 전시장 입구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내려가 전시장 초입을 눈으로 스캔했다. 그런데 사랑이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이게 뭐지? 아까 사랑이를 놓친 곳으로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입구로 다시 가려는데, 에스컬레이터는 내려오는 것만 있을 뿐, 올라가는 것이 없었다. 에스컬레이터에 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그들의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내 얼굴을 봤더라면 그렇게 내려올 수는 없었을텐데.
아무도 내려오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나는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를 뛰어 올라갔다. 한번에 세 계단씩. 가까스로 입구로 다시 나갔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랑이는 없었다. 리움 미술관 중앙 로비로 나갔다. 이곳에도 사랑이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
정신을 가다듬고 티켓교환 및 오디오 가이드를 배부하는 안내데스크로 갔다. "제 딸이 없어졌어요. 도와주시겠어요? 11살이구요. 검은색 반팔을 입었어요. 안경을 썼고, 한 머리로 묶었어요. 오디오 가이드를 하고 있을 거예요. 김범 전시를 보러 들어가는 순간 없어졌어요." 직원은 침착하면서도 빠르게 김범 전시장의 직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네다섯번쯤 대화가 오고 갔을까. "김범 전시장 입구로 가보시겠어요? 찾았다는 것 같아요." "네!" 나는 뛰어갔다.
사랑이는 무슨 일이 있냐는 듯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을 껌뻑이며 전시장 입구에 서 있었다. 달려가 사랑이를 와락 안았다. "사랑아 어디 있었어? 아빠가 찾았잖아" 안도의 눈물일까 아니면 기쁨의 눈물일까. 나혼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사랑이는 입구에서 티켓을 확인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이 아니라, 그 옆길로 나 있었던 출구가 입구인 줄로 착각하고 거기로 들어가 먼저 관람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혼자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관람을 하고 있다가 문득 왜 일행들이 안보이지 생각하던 찰나, 전시장 내 직원이 말해서 밖으로 나와 아빠를 만난다는 것이었다.
사랑이와 나는 함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전시장 안으로 내려갔다. 사랑이는 다시 오디오 가이드를 손에 들고 작품들 사이를 자신있게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따라 다니다보니 곧 시야에 거대한 추상화 같기도 하고 미로찾기 같기도 한 회화 작품들이 들어왔다. 아이들은 뭐에 홀린듯 그 방으로 들어섰다. 그리고는 미로찾기를 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들고 입구에서 반대편 출구로 나오는거다. 나도 시작했다. 주욱 따라가 볼까. 앗 막혔다. 다시. 다시 해보자. 리스타트. 중앙 쪽으로 빠르게 가볼까. 아. 한참을 왔는데 또 막혔다. 대체 어떻게 하는거야. 그래봐야 이건 작은 미로 작품인데 어렵네. 다시 해보자. 그렇게 세 번을 실패하고 나서 네번째 시도에 성공할 수 있었다. "아빠, 이게 그렇게 어려워? 이거 쉬워~ 난 한번에 했어." 둘째딸 시온이가 자랑하며 말했다. "그래? 그럼 너 저거도 해봐! 저거 큰 거" 시온이가 5분쯤 했을까? "아빠 이건 못하겠어 너무 어렵다. 가자. 이거 제목이 친숙한 고통이야. 고통스럽다고."
미로를 풀다가 막혔을 때 그리고 다시 해야만 했을 때. 최단거리로 갈 수 있겠지 생각했다가 길이 막혀서 돌아가야만 했을 때. 작은 고통을 느꼈다. 그래서 작품이름이 친숙한 고통일까. 우리 인생 역시 막다른 골목을 만났을 때, 지름길인 줄 알고 갔다가 돌아가야만 했을 때 쓰라린 패배와 좌절의 고통을 맛보니까. 김범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인생의 고통을 나누고 싶었나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 그보다 더 큰 고통을 경험했다. 작은 전시장이 순간 미로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입구와 출구가 뒤죽박죽이 되는 경험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있을까. 잃어버린 것을 찾는 사랑은 삶을 관조할 수 없게 한다. 예쁜 그림을 끔찍한 미로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그 위험에 뛰어들어 함께 출구를 찾게 만든다. 그 경험의 끝에는 분명 눈물이 있다. 안도의 눈물일지 기쁨의 눈물일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눈물이 우리 삶의 미로를 아름답게 채색한다.
먼 훗날 지나간 시간의 거리만큼
놀람과, 위험과, 포옹과 눈물로 채색된 그림으로 다시 우리 각자의 눈 앞에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