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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반 Sep 07. 2023

나는 기도한다 (2022.12.06)

신민, 우리의 기도

신민, 우리의 기도-나는 동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한다 나는 껴안는다 나는 연대한다


"저희 배송기사님이 지금 가실 거예요." 한 직원이 거래처랑 통화하면서 나를 힐끗보며 말했다. 나름 눈치를 보며 하지만 가장 적절한 단어를 찾은 것이었다. 순간, '배송기사'라는 단어가 머릿 속을 휘저었다. '아 내가 배송기사였나? 회사랑 계약할 때 그런 단어는 없었는데... 물론 배송일이 이 곳에서 내 주업무이긴 하니까... 배송기사라..." 그 날 나는 하루 종일 '배송기사'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었다. 그렇다 나는 배송기사다.



학교를 그만 두고서 3개월쯤 쉬었다. 위염을 치료받았고 3년 반 동안 하루도 못쉰 것을 보상 받듯이 쉬었다. 몸을 회복하고 나니 대책없는 나의 가정 경제를 돌보아야 했다. 한편으로는 그 사이에 따로 준비하는 일이 생겨서 본격적인 일을 하기는 어려웠다. 일단 사람인과 알바몬에 이력서를 올려놓고 밤낮으로 검색했다. 며칠 간은 어느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사흘 쯤 지났을까.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누구시죠?" "배송기사 일 해보시겠어요? 하루 5시간 정도만 근무해도 월 500씩은 충분히 버실 수 있어요. " "괜찮습니다." 적은 근무시간과 넉넉한 급여라는 말에 혹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1톤이상 트럭 차량을 갖고 있어야 그런 조건이 가능하고, 차를 빌려야 하는 경우는 근무조건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했다. 여러모로 나의 여건과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거절한 이후에도 전화는 계속 왔다. 아마도 내 나이 41세 아저씨들이 많이 진입하는 직업이겠지 싶다.



나는 결국 어느 회사 배송 직군에 원서를 넣었다. 주 20시간 오전 근무인데 4대보험 가입에 6개월 계약직이다. 오전에 바짝 근무를 하고 6개월만 하면 되니까 부담도 없겠다 싶어서 지원했는데 덜컥 붙었다. 이 회사는 한마디로 기업형 인쇄소라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쇄물을 제작해준다. 코로나 이후 배송 서비스를 늘렸고, 그런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나를 배송 담당으로 뽑은 것이다. 처음에 나는 '배송기사'라는 정체성 딱지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오히려 '20시간 아르바이트'로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게 되었다. '20시간 아르바이트 배송기사'



얼마 전 대통령의 말을 뉴스 헤드라인을 통해서 보게 되었다. 대통령은 화물연대에게 불법파업을 중단하고 업무를 개시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뭐?" 화물 배송기사는 파업을 하면 불법? 헌법에 보장된 파업권을 대통령이 명령으로 무시한다고? 화물연대의 파업은 나의 일도 아니고 자세한 사정도 몰랐지만 부아가 치밀었다. 헌법은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고 파업권은 그 중 하나이다. 이러한 헌법상 권리를 대통령이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명령으로 내릴 수는 더더욱 불가한 일이다. 대통령이 노동자를 무뢰배 정도로 보지 않는 이상.



사실 나는 화물연대의 파업 이유와 당위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같은 배송기사로서 같은 노동자로서 화물연대가 기대고 있는 그 헌법적 권리-파업권을 지지한다. 나도 그 헌법적 권리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은 나와 같은 육체 노동자를 무뢰배를 보듯이 보는 그 시선에 저항한다.



우리 민족이 배달의 민족이라서 그런 건지 늘어난 배송물의 양과 함께 배송 기사도 엄청나게 늘었다. 우리의 가정 경제 역시 쿠팡과 배민, 마켓컬리와 쓱배송없이는 더 이상 돌아가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와 무관한 사람들이 아니다. 나 역시 이 일을 하기 전에 배송기사들을 보면 전혀 다른 세상에서 움직이는 배송 로봇보듯 그들을 보았다. 언젠가 아내가 내게 말했다. "삶이 닿아있지 않으면 공감하지 못하고 판단하기 쉬운 법이야" 그들은 그저 막히는 2차선 도로를 떡하니 막아세우고 배송물을 태연히 나르는 방해물들이었다. 내가 보지 않아도 알아서 배송물을 놓고 가는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처음 배송기사 일을 전수해주던 27살 선배 기사는 과속 감시 카메라의 위치를 피해 더 빠르게 배송하는 법부터 알려주었다. 모든게 그들에게는 시간이고 돈이니까. "여기 도로 변에 차를 세우고 뛰어서 빌딩 인포데스크에 전해주고 뛰어와야 해요. 주차장에 들어가면 돈을 내야하잖아요. 이 방법 밖에 없어요." '여기'는 역삼동 1차선 도로다. 절대 걷지 않고, 아무것도 먹지 않고, 화장실도 자주 가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도 꿈은 있었다. 군대에서 막 제대한 그는 디자인 전공 대학생이다. "저는 창업할 거예요. 이 짓을 하기 전에는 강남 빌딩의 회사원들이 부러웠었어요. 멋있는 수트 입고 일하는 모습 멋있잖아요? 근데. 1개월 지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모두 노예구나 하는 생각. 다 노예예요. 절대 싫어요. 창업할 거예요." 그는 오늘도 꿈을 품고 달린다. 노예에서 벗어나 지배자가 되는 꿈. 그 역시 이 사회의 시선을 느끼고 있다. 노동자를 노예로 보는 시선. 그리고 그 시선이 한 청년에게 왜곡된 꿈을 심어준 건 아닌가 싶다. 노예를 지배하는 지배자의 꿈.



나는 배송기사다. 나는 나의 노동이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럽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노동 위에 서 있고, 우리 친구들의 노동 위에 얹혀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의 삶과 닿아 있지는 않아서 다른 이의 삶과 그의 노동을 함부로 판단하곤 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우리에게 찾아온 택배 박스를 보면서 우리 삶의 무게와 그 택배 박스의 무게가 동일한 것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나는 연대하기로 한다. 화물연대와. 나는 동료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을 껴안기로 다짐한다. 오늘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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