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북한산 등산을 다녀왔다.
산에서 일출을 보고 싶었지만, 여름의 길목에선 첫차를 타도 따라잡을 수 없게 빨라진 태양의 출근시간이었다. 그래도 바지런히 새벽 네시 반에 일어나 다섯 시 첫 차를 타고 불광역으로 향하는 길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6시 10분, 내가 아는 유일한 북한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곳은 족두리봉으로 오르는 가파르고 험한 루트다.
종종 바위를 두 손 두 발로 기어야 한다.
이미 떠버렸지만 조금 더 올라가야 하는 태양과 나란히 수직상승하는 기분은 짜릿했다.
평일 이른 아침 등산의 가장 큰 특권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산과 나, 둘 뿐이라는 것이다.
향로봉을 지난 뒤였을까, 잠시 앉아서 잠시 숨을 고르는데 70대로 보이는 남자 어르신 한 분이 지나가시길래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다. 어르신께서 내 인사를 이렇게 받으셨다.
"아니, 예쁜 아가씨가 왜 혼자 산에 왔어~~"
나의 무의식적인 반응은 "(숨길 수 없던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네??"였다. 이 쯤되면 나는 인정해야만 한다. 나는 종종 프로불편러가 된다는 것을. 다행히 내 표정을 못 보고 축지법을 쓰시며 빠르게 사라지셨다. 70대 노인분이 매일 산을 타시는 건가?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예쁜 아가씨?' 예쁘다고 해주신 게 고맙기는커녕 호칭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그리고 그 문장에 담긴 의미를 가늠해보려 했다.
'예쁜 아가씨는 혼자 산에 오면 안 된다는 법이라도 있었나? 그럼 안 예쁜 아가씨는 혼자 산에 와도 괜찮다는 건가? 그럼 예쁘게 생긴 총각은, 혼자 산에 와도 된다는 것인가 안 된다는 것인가? 예쁜 아가씨가 혼자 산 말고 바다에 가는 건 괜찮은 건가?'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품기엔 지나치게 예민한 생각들이었다.
하지만 바위 넘어 바위를 지나면서 하기엔 복잡한 생각들이었고 나는 한 발 한 발 떼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사모바위를 지나, 살면서 가장 험난했던 구간을 지나 문수봉(727m)에 다다랐다.
서울시와 고양시가 파노라믹뷰로 한눈에 들어오는 믿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또 다른 어르신을 만났다. 며느리로 추정되는 분과 함께 온, 역시나 70대로 보이는 남자 어르신이었다. 나는 백운대까지는 얼마나 걸리는지 아시냐며 말을 걸었는데...
이것은 대한민국 70대 남성 등산 인구의 표준 인사말인가? 그분 또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왜 예쁜 아가씨 혼자 산을 올랐어~"
나는 두 번이나 비슷한 인구집단에게서 똑같은 말을 듣게 되자 깨닫게 된 바가 있어 프로불편러였던 시점을 버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한국인의 정을 느끼기로 했다. 중요한 건 어떤 자극이 오던, 내가 선택하는 반응이다.
<당신 기준으로 훨씬 어려 보이는 젊은 동포 여성이, 평일 오전에 혼자서 산을 오르는 게 기특하네. 얼굴이 못나지도 않았는데(하지만 그 정도 나이를 드셨으면 어느 젊은 여성이 안 예쁘게 보이실까. 마치 내 눈에 모든 어린이들이 마냥 예쁘고 귀여운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이왕이면 짝이나 친구랑 같이 오르면 더 안전하고 좋을 텐데 왜 혼자 왔을까?'> 약간의 근심과 애정이 담긴, 한국인 특유의 행간을 읽어야 하는 인사법이었던 것이다.
그 함축된 애정과 염려가 담긴 말에 '예쁜 아가씨', '혼자'라는 단어 선택이 들어간다는 점에선 여전히 웃음이 나오긴 한다. 아마 그 시대의 어르신들이 그들의 문화 속에서 배운, 여성에게 건네는 가장 사회적인 인사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아마 이런 말을 건네며 수십 년 전 와이프에게 작업을 거셨을까?
"아니 왜 예쁜 아가씨가 혼자서 밭을 맨 대요~ 이리 줘 봐요. 도와줄랑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