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Harmony Jan 26. 2020

51. 원한 적 없는데요

사랑한다는 건

잠시나마 경제적인 위기를 경험한 뒤로 가장 크게 들었던 생각은

"그래도 돈이 좀 있을 때 그걸 가지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음을 표현해볼걸. 그 사람들에게 좀 더 쓸걸." 이었다.

미래의 나를 위해 쓰겠다고 아득바득 돈을 모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좀 더 베풀지도 못하고 내 마음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돈이란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는걸 인지하고 나서야

나에게 있어서 정말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할까.

그래서 요즘은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아도 예상치못한 수입이 생기면 그걸로 작게나마 주변 가족, 친구들에게 뭔가를 주고싶은 마음이 들곤한다.


지난 학기에 열심히 활동한 결과로, 이번 달에 개인적인 수입이 조금 더 늘어났는데 밖에 나가서 이것저것 구경하고 맛있는걸 먹다보면 종종 동생 생각이 났다. 최근 직장생활을 힘들어하는 듯한 동생의 모습에 안쓰러운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이 좋아하는 간식, 동생이 좋아하는 캐릭터 등이 눈에 들어오면 주머니 사정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동생 몫의 무언가를 더 샀다. 집에 돌아와 시크하게(나 나름의 "오다 주웠다." 느낌) "너 주려고 샀어. 먹어(가져)"라고 던져주고 방으로 돌아오면서 동생의 긍정적인 반응("오!"나 "와!" 정도)을 뒤에 달린 귀로 들으며 스스로 기뻐하던 나였다.


그런데 며칠 뒤, 시간이 지나도 내가 동생을 위해 사온 간식들은 냉장고 안에서 나올 줄을 모르더니 결국 주말에 아빠가 드시고, 동생 쓰라고 선물한 작은 물건들도 그냥 책상 위에 여기저기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서는 기분이 상했다.

'기껏 먹으라고, 쓰라고 줬더니 이렇게 무신경할 수가 있는거야? 냉장고에 그 간식이 있다는걸 까먹은거 아니야?' 언니의 알량한 자존심을 내비치기 싫어서 차마 입밖으로 내뱉지 못한 말들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그런 내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무렇지 않게 방에서 자기 할일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나 역시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할자신이 없어서 방에 들어와 생각했다.

'쟤는 내 마음을 왜 이렇게 몰라주지.. 내게 고맙지 않은건가?' 내가 마치 짝사랑하는 누군가가 되어버린 양.

그리고 깨달았다. 동생은 내게 그런걸 해달라고 한적이 없다는 걸. 동생은 짧은 리액션으로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고 그게 동생이 할 수 있는 반응의 전부일수도 있다는 걸. 난 지금 "내가 널 위해 무언갈 했으니, 너도 그에 상응하는 무언갈 보여줘."라는 말도 안되는 기대를 하고 있다는 걸. 나 혼자 좋아서 한 행동을 가지고 내 기대에 부응하는 결과를 보지 못했다고 상대를 원망하는 건 우습고 이기적인 행동이라는걸. 내 행동은 나를 과시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던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동생이 바란 사랑은, 동생을 위한 사랑은 그게 아닐텐데.

무언갈 받기 위해 주는 건 사랑이 아닌데.

사실 그 이상의 반응이 없더라도 난 여전히 동생을 사랑할텐데.

그런 선물을 받지 않더라도 동생은 날 사랑할텐데.


올바르게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원하지 않는걸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내게 맞추길 기대하지 않는 것.

주는 것만으로도 기쁜 것. 받지 않아도 사랑스러운 것. 존재만으로 고마운 것.

굳이 물건으로 표현하는게 아니더라도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것.


나는 지금 얼마나 잘 사랑하고 있는 중일까. 

또 얼마나 불안해하고 있는 중일까.

이런 사랑,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사랑하는'건 참 어렵다.




작가의 이전글 50. 너는 참 씩씩하고 예쁜 중3 학생이구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