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자증에 대한 글을 찾기가 어려워서 직접 써보기로 결심하다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에 로그인을 했다.
근 1년만의 로그인인 것 같다. 그만큼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는 뜻도 되지만 한편으론 글로써 넋두리하며 구구절절 내 마음을 털어놓을 일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지난 1년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결혼을 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며 이전과 다른 모습의 삶의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남편과 나의 나이가 어린 편은 아니기에 결혼과 동시에 적극적으로 임신을 위한 노력을 했다.
결혼 전에 내가 자궁 관련 수술을 한 이력이 있는터라 자임이 쉽지 않을 거라는 예상도 했었기에 산부인과에 가는 것도 거리낌은 없었다. 병원에서 '자궁에 이상은 없고 결혼한지 6개월도 되지 않았으니 일단 자임을 시도해보라'는 희망적인 말을 들었다. 하지만 6개월이 넘어도 임테기에 2줄이 뜨는 일은 없었다.
보건소에서 지원해주는 산전검사를 마쳤다. 나의 난소 나이가 실제 나의 생활연령보다 높음을 확인했을 때는 '아 역시..' 싶으면서도 씁쓸함은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다며 나를 위로해주는 남편이 있어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더 큰 시련은 내 쪽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의 정액검사 결과는 '무정자'였다.
“우리 신혼이라 야식도 자주 먹고, 운동도 자주 안하고 그랬잖아. 검사를 하기 전날 나랑 노느라 너무 늦게 잤잖아,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렇게 나온게 아닐까?" 나는 놀랐지만 애써 괜찮다고 말했고 남편은 많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에이, 그래도.. 설마.'
우리는 난임센터에 비뇨기과에서 다시 정액검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며칠 전 함께 병원에 내방하여 함께 의사선생님을 만났다. 요즘 의료공백 문제로 대체근무가 많다며 아주 피곤한 표정을 하던 의사는 발음만은 확실하게 구사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검사 결과, 환자분에게는 정자가 없습니다. 0이에요. 부스러기도 없어요."
부스러기도 없다니.. 정자 부스러기가 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마치 남편의 정자를 과자 부스러기같이 하찮게 표현하는 것 같아 기분이 언짢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종이에 볼펜으로 '0'이라고 꾹꾹 눌러 적는 의사의 손가락이 참 뭉툭했고 못생겼다는 생각을 했다. 글자는 또 왜 그렇게 날려 쓰는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분이었다.
의사에 말에 의하면 남편의 정액 양 자체가 평균보다 현저하게 적은 편이고 추가 검사를 통해 그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호르몬의 영향일지, 유전자의 영향일지, 고환이 문제일지는 2, 3차 추가검사를 해보아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고 말이다. 만약 호르몬 검사와 유전자 검사가 정상이고 고환에 정자가 있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이 되면 수술을 통해 정자를 추출해야 하고 그 정자로 시험관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운이 좋아야만 시험관을 통해 임신을 시도할 수 있다는 말이었다.
보통은 '자연임신 - 인공수정 - 시험관 시술' 순서로 임신을 시도해볼 수 있고 남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시험관을 시도하지만 우리는 시험관 시술을 할 수 있기만을 기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당신의 검사와 수술 이후에 시험관을 하거나, 시험관을 하지 않거나.. 둘 중에 하나겠네? 이제 뭔가 명확해졌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정리가 된 듯했다. 나는 늘 최악의 상황을 상상해보는 사람이라 아주 절망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아주 조금은 예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집에서 혼자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 시작하자 세상이, 내 삶이 좀 원망스러웠다.
그동안 동물이 등장하는 꿈을 꾸면 죄다 '태몽' 아니나며 남편과 나누던 이야기들이 허망했다.
생리가 조금만 늦어져도 혹시 임신이 아닐까 얼리 임테기를 사러 약국에 다녔던 과거가 우스워졌다.
최근 재미로 보았던 사주와 타로에서 '임신'에 관해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결과를 웃어넘겼던 것이 떠올라 섬뜩했다.
뭐든 느리게 성취하고 빙빙 돌아가는 것 같던 내 과거가 떠올랐다.
이놈의 인생아, 그래, 내 이때쯤 내 삶에 고난이 올 줄 알았다!! 그동안 그래도 많이 무난하고 행복했지?
이때쯤 나에게 폭탄을 던저줄 줄 알았다!!!
누구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었다.
그리고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임신이 하고 싶었을까? 아이를 갖는게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할까?
내가 왜 아이를 가지려고 했더라
시험관을 경험한 숱은 임산부들의 글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정말 미친듯이 고통스러운 경험일 것 같은데, 그 글들을 보는것만으로도 겁이 나고 무서워서 눈물이 나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 시험관 시술을 할만큼 아이가 갖고 싶은걸까?
그동안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구나. 남들이 다 하는걸 나도 하고 싶은 마음 정도가 아닐까? 그냥 어리고 순수한 내 아이의 아름다움을 경험하고 싶은, 나만의 욕심이 아닐까. 나는 생명체를 품고 세상에 내놓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키울만한 책임감이 있는 사람일까.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아직 알지 못하는 내 미래에 새로운 생명을 함께 그려놓고 싶은 내 마음은 뭘까.
남편은 얼마나 절망적일까.
어린 아이들을 보면 이뻐서 사족을 못쓰는 남자. 농담으로 자녀는 다다익선이라며 세상 그 누구보다 자상한 아빠가 되어줄 것 것 같은 남자.
시험관 수술이 무서울 것 같다며 엉엉 우는 내 옆에서 자신은 아직 울지 않을 거라며 눈을 부릅뜨고 되려 나를 토닥여주는 남편이 너무 안쓰럽고 또 한편으로는… 원망스럽기도 하다. 그래, 원망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약 한 달 뒤에 남편은 다시 비뇨기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하게된다. 자세하게 듣지는 못했지만 항문으로 뭔가가 들어간다고 한다. 아마 고통스럽겠지.. 그리고 의사는 수술 후 바로 검사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와 남편은 3차 검사인 고환 조직검사까지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시험관 시술에 도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할 수 있는건 다 해보고 싶다.
정말 남편의 몸안에 정자가 단 1마리도 없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받아들여야 될 것이다.
우리는 계획했던 세계 여행을 더 여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더 비싸고 좋은 것들을 더 많이 갖고 더 자주 경험할 수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보게 될 수많은 어린 아이들을 보며 종종 눈물 짓게 될 것이다.
잔인하게도 우리 부부 둘 다 교사이기 때문에 자주 슬퍼질지도 모르고 또 한편으로는 언제 그랬냐는듯 어느새 무뎌질지도 모르겠다.
일단은 몸에 좋은 걸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잠을 충분히 자고, 스트레스를 최대한 덜 받아야 한다.
아직은 그 어디에도 말할 수 없는 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감사하다.
아직은 희망을 쓰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