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À Paris
아빠, 오늘은 퐁피두 도서관에 왔어요. 여행할 때 퐁피두센터에 왔었는데 그땐 미술관만 둘러보아서 이런 공간이 있는지 몰랐어요. 공부할 장소를 찾아보다 우연히 퐁피두 센터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을 알고 놀랐어요. 마치 숨어있던 장소를 발견한 느낌이었거든요.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어요. 거의 모두 프랑스인이었는데 노트북을 든 중고등학생부터 커다란 짐을 메고 있는 노숙자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오는 곳처럼 보였어요. 퐁피두 도서관 안으로 들어오니 책뿐만 아니라 방대한 양의 영화, 음악, 영상 미디어 자료들을 마주할 수 있었어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컴퓨터들과 이어폰까지 갖춰진 이곳엔, 특정한 목적이 있을 것만 같아 더욱 궁금해지네요.
-2016, 파리 교환학생 시절, 아빠에게 쓴 편지 중 일부
Les halles
퐁피두 센터는 마레 지구와 시테 섬, 그리고 레 알(Les Halles) 사이에 위치해 있다. 레 알(Les Halles)은 말 그대로 시장이라는 뜻으로 이 지역은 1970년 전까지 파리에서 각종 물건이 팔리는 곳이었다. 그래서 프랑스의 유명 소설가 에밀 졸라는 이 지역을 ‘파리의 복부’라고 했다.
파리의 한 복판에 위치한 이 지역은 ‘이노상’이라는 공동묘지와 청과물시장에서 방대하게 쏟아져 나오는 각종 쓰레기들로 인해 온갖 악취를 풍겼다. 또한 창녀촌과 술집이 밀집해있던 지역이라서 조롱하는 의미로 ‘보부르’beau + bourg(아름다운 지역)라는 이름이 붙었다. (아직도 프랑스 사람들은 퐁피두를 보부르라 한다.) 낙후한 지역에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건물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조르주 퐁피두 Georges Pompidou라는 대통령 덕분이었다.
조르주 퐁피두 Georges Pompidou
조르주 퐁피두는 원래 문학도이며 미술, 음악, 영화 등 현대 예술에도 상당히 조예가 깊은 예술 애호가였다. 그는 대통령은 당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미술관 건립에 대한 계획을 발표한다.
"옛 예술품을 위한 곳으로는 루브르 박물관이 이미 있으므로, 우리에게는 현대 예술을 이끌어 갈 새로운 박물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지어질 도서관이야말로 예술적 영감을 낳는 지성의 장이 될 것입니다." -조르주 퐁피두 Georges Pompidou
그는 박물관이면서 조형예술·음악·영화·책·음향 등 다양한 시청각 자료와 연구소가 한 곳에 모이는 복합 예술 문화 센터를 만들고자 했다. 1971년 7월 15일, 퐁피두센터를 위한 공모전이 열었고, 이탈리아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와 영국의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의 작품이 당선되고 이탈리아 건축가 지안프랑코 프란치니 Gianfranco Franchini가 공동으로 참여하게 된다. 이 세 사람과 함께 전적으로 현대아트에만 헌정된 프랑스 최초의 뮈제 퐁피두 센터가 탄생하게 된다.
3명의 신인 건축가들이 원하는 것 : 실용적이고 친근한 퐁피두
이 세 명의 젊은 건축가들은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우승하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원하는 것을 마음껏 기획했고, 그 결과 전적으로 독창적인 것을 탄생시킬 수 있었다. 렌초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는 자신들의 도발적인 ‘계획’을 위풍당당한 ‘현실’로 만들었다.
이들은 '실용성'을 살리기 위해 건물 내부 형형색색의 파이프와 에스컬레이터를 밖으로 뺐다. 따라서 100% 비어있는 내부 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실용성과 더불어 그들의 건축 철학은 친근성이었다. 책 속의 일화를 가져와보았다.
-누군가 피아노에게 “당신의 디자인은 정말 끔찍하군요. 바깥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라니, 그것은 마치 슈퍼마켓처럼 보이는 데요”라고 하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바로 그것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답니다. 왜냐하면 안에 들어가는 것을 겁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요." -렌조 피아노 Renzo Piano
그러나 퐁피두 센터의 개관을 앞두고 사람들은 주위 환경에 비해 너무 강렬한 색채와 창고나 공장을 연상케 하는 외관에 당황했고, 이러한 건축물이 과연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미술관이 될 수 있을지 우려했다. 하지만 1977년 개관 후 이 괴짜 같은 건물은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다. 루브르 방문객의 70%가 외국인인 것에 비해, 퐁피두는 방문객의 60%가 프랑스인들인 것을 보면, '국민'에게 사랑받는 곳임에 틀림없다.
매력포인트 : 피아자 (Piazza)와 에스컬레이터
1.
퐁피두 센터는 전체 부지의 절반에 해당하는 면적이 비어 있다. 이 광장을 피아자 Piazza라고 한다. 빽빽하게 들어선 레 알 지구에서 공백을 두어 여유를 주었고, 건물 지하 1층에 해당하는 입구까지는 문턱이나 계단 없이 경사면으로 이어진다. 퐁피두를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신이 언제 들어섰는지 인식하기도 전에 어느새 현대 예술의 중심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건축가들은 미술관과 도시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피아자 piazza를 미리 계획했다. 사람들은 책을 읽거나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앉아 쉬면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거리의 예술가들이 펼치는 공연을 지켜본다. ‘전시장 따로, 사람들의 일상 따로’가 아니라 광장의 자유로운 풍경을 전시장이 흡수하는 모양새이다. 즐기고 쉬는 공간 속에 예술이 있고, 예술 속에서 즐기고 쉰다.
2.
에스컬레이터를 건물 외부에 두어 층층이 오를 때마다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다. 특히, 맨 꼭대기 층에서는 멀리 몽마르트도 감상할 수 있어 우리는 이 공간에서 '파리'라는 또 하나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퐁피두 입구의 넓은 광장에서는 퐁피두 센터의 사람들이 이동 중인 에스컬레이터를 보며 정적인 건물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현대 프랑스 정신을 담고 있는 퐁피두 센터
퐁피두는 여전히,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창조적인 문화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퐁피두 관장 라스빈은 “우리의 미션은 다(多)학문적인 것이기 때문에 퐁피두가 하나의 뮈제라고 볼 수는 없어요. 우리는 콘서트, 토론, 공연을 개최하고, 도서관도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다 함께 흘러간다고 볼 수 있죠!”라고 말한다. 퐁피두는 다방면으로 프랑스인들의 일상이 녹아들어 있는 곳임을 역설한다.
퐁피두는 과거의 '향수(鄕愁)와 역사의 온실’이 되지는 않을 것이며, 언제나 ‘불안한 사상을 위한 안전한 장소’가 될 것이다.
<참고도서>
[파리 에스파스] 김면
[낭만적인 프랑스 뮈제 산책] 김복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