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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헤미안 Lyn Jul 16. 2020

코로나 여름휴가

휴가 계획 세우셨나요

  7월에 들어서자 코앞으로 다가온 여름휴가에 대한 이야기가 부쩍 자주 오고 간다. 제주도나 강원도, 부산과 같은 인기 여름 휴가지로 발 빠르게 비행기와 숙소 예약을 마친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직 미정이라는 반응이다. 현재와 같이 여러 지역에서 감염과 전염이 반복되는 코로나 발생 상황에서 휴가 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잡코리아가 얼마 전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직장인의 9% 정도만이 휴가 계획을 세웠고 60%는 미정이며 30%는 휴가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리고 휴가 계획을 미처 세우지 못했다는 응답자의 70%가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리서치 참조: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28617647&memberNo=9028903&vType=VERTICAL)


마찬가지로 나 역시 이번 여름휴가는 별다른 계획을 하지 않았다. 매년 초,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고 숙소를 예약하며 틈틈이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음식을 찾아보는 재미로 상반기 회사생활을 버텨냈던 예년과 달리 이번에는 '여름휴가 계획'이라는 단어조차 생경해 보였다. 그래서인지 예년에는 "이번 휴가 때 어디로 가?"라는 질문이 먼저였다면 이번에는 "휴가 계획 있어?"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온라인에서 더욱 뚜렷이 확인할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여름휴가'를 검색하면 포털 상단에 가장 먼저 해외 인기 여행지나 추천 여행지를 보여주었던 반면 올해는 '국내 여름 휴가지' 또는 '코로나 여름휴가'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나온다. '코로나'와 '여름휴가'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만들어 내지만 여름휴가를 가야 할지, 또는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우리의 현재 상황을 여실히 반영하는 듯하다.






전 세계 가장 성공적인 공유경제 플랫폼 사업으로 여행인구의 증가와 함께 영원히 그 번영이 계속될 것 같던 에어비앤비가 상당수의 직원을 해고하며 급격한 경영난에 직면하고 유튜브에서는 '여행의 종말', '자유여행 마지막 세대'라는 자극적인 단어들이 떠도는 가운데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떻게 변해갈지 문득 궁금해진다. 전문가들은 현재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한 자리씩 띄어서 앉는 것과 같이 비행기 좌석 배열도 2열, 3열이 아니라 1열씩 재배치될 것이며 입출국 시에 건강 확인증을 필수로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예견한다.


한편 이와 같은 여행 생태계의 불가피한 변화는 새로운 시장과 사업 기회를 창출하는데 일례로 호텔 서비스를 집에서 받아 볼 수 있도록 각종 호텔 어메니티를 큐레이팅해서 담은 호텔 웰컴 박스와 조식 서비스를 배달하는 사업이 현재 인기라고 한다. 그렇게 앞으로는 짐가방을 들고 장시간의 비행을 하는 여행보다는 집과 집 근처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즐기고 퇴근 후  VR로 손쉽게 대륙을 넘나들며 해외 유명지를 실감나게 구경하는 여행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코로나 때문에 불가피하게 앞당겨진 새로운 여행의 방식이 일견 기대가 되면서도 적지 않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생긴다. 내게 여행은 랜드마크 앞에서 멋진 사진을 찍고 미슐랭 식당을 가는 것보다는 공항에서부터 반기는 도시 특유의 날씨와 냄새를 느끼고 숙소 근처 빵집 주인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지나가다 들린 허름한 식당에서 내 입맛에 꼭 맞는 메뉴를 찾았을 때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게 여행은 오감이 꿈틀거리고 대화의 즐거움이 있고 불쑥불쑥 끼어드는 이벤트가 있을 때 기억에 오래 남았다. 책과 인터넷에서 수십 번을 봤음에도 실제로 그 그림을 현장에서 마주하면서 완전히 매료되었던 순간이나 와이너리 투어 중 나누었던 멋진 사람들과의 대화, 공원에서 옆자리 소녀가 불쑥 건네는 나의 초상화를 받아 든 순간과 같이 환희와 따뜻함과 설렘을 느낄 때 말이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이와는 많이 달라질 것임이 분명하다. 






사무실 내 오고 가는 대화 속에서 다시금 나의 이번 여름휴가를 생각해본다. 그동안 매년 밖으로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홈캉스'를 보낼 예정이다. 벌써 내 휴대폰에는 보고 싶은 영화와 책을 몇 개 메모해 놓았다. 세상 가장 안전하고 친근한 내 침대에 누워 갖가지 간식을 손에 가득 쥐고서 오전에는 요가의 나라 인도를, 저녁에는 화려한 불빛의 뉴욕 거리를 스크린을 통해 누벼볼 생각이다. 그러다 허리가 아플 때쯤이면 모자를 눌러쓰고 집 뒤 공원에 가서 한참을 거닐다 돌아와 아로마 오일 몇 방울 떨어뜨린 욕조에 반신욕을 하고서 잠자리에 들면 그만큼 몸과 마음이 즐거운 휴가도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든다. 


안전하고, 편하고, 행복한 휴가를 기대해본다.



*커버 출처: https://pixabay.com/ko/photos/%ED%9C%B4%EC%9D%BC-%EC%97%AC%ED%96%89-%ED%9C%B4%EA%B0%80-%EC%97%AC%EB%A6%84-288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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