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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microambitious Sep 20. 2021

[번외] 형용사를 지우다가

문장을 수정하는 첫번째 단계는 형용사, 부사 등의 수식어를 지우는 것이다. 굳이 언급될 필요 없는 형용사, 부사 등을 걷어내고 명사, 동사 등의 필수 성분만을 남기면 훨씬 더 간결하고 좋은 문장이 된다. 

항상 만연체에 대한 지적을 받아온 터라, 그 방면으로 이름난 레이먼드 카버, 하루키 등을 교본 삼아 담백한 글 쓰기를 연습해 온 지 수 년째다. 글 쓰기가  살아가기의 훌륭한 은유라는 것은 이미 오래 전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 어려움마저 이렇게 꼭 닮아있을 줄이야. 화려한 미사여구로 졸렬한 필력을 치장하려는 관성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거듭되는 실패에 좌절할 때마다, 거창한 표현으로 내 성취를 포장하거나 무리한 노력으로 오히려 관계를 망쳐버린 과거도 함께 떠올라 얼굴이 붉어진다. 

간결한 문장을 연습하듯 담백한 삶에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 진한 화장을 지운 얼굴에는 거뭇한 기미며 주근깨들이 가득하겠지만, 사라지지 않을 기미를 가리는데 전전긍긍하기 보다는 그 얼룩을 가릴 만큼 주변이 환해지는 미소를 연습할 일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내 문장은 여전히 호흡이 길고 때로는 난해하다. 사람 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문장 쓰는 습관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제아무리 정성들여 초고를 다듬어도 퇴고를 하는 글쓴이의 마음은 언제나 민망하고 겸연쩍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원고를 태워버리지 않고 세상 밖에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여러 번의 수정을 거친 퇴고가 초고보다는 나을 수 밖에 없다는 확신 때문이다. 끊임 없는 실수와 부끄러운 민낯을 하고서도 계속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헛점 투성이인 내 삶도 성찰을 통해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다는 말로 섣불리 타인을 단정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고민하며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 어떤 편집자도, 작가의 초고만으로 그의 미래를 점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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