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반가운 무명의 너에게
반가워!
어떤 말을 먼저 하면 좋을지 한참 동안 고민했어. '안녕'이라 말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흔한 인사를 건네는 게 좋을까, '고마워'라 말해서 내 마음을 전하면 좋을까, '어...' 하면서 다음 말을 고르는 적잖이 당황한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지 말이야. 첫인사를 '반가워!'로 정했으니 차근차근하고 싶은 말을 해볼게.
반가운 우리 아가야. 안녕? 우리 가족에게 찾아와 줘서 고마워. 어... 진짜 어색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나를 아빠라고 칭해볼까 하는데 너도 익숙해지길 바라. 오늘은 내가, 아니 아빠가 살면서 가장 놀란 날이고, 정확하게 어떤 감정이었는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날이고, 현실적인 타입의 아빠가 현실을 잊고 과거의 날들과 미래의 나날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돈 날이야. 엄마랑 아빠는 오래전부터 널 기다렸는데 그게 너일 줄은 몰랐어. 문장이 좀 이상하지만 나중에 이게 무슨 말인지 아주 잘 이해하게 될 거야.
있잖아. 사실은 몇 주 전부터 엄마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였어. 엄마는 아빠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맡은 일을 책임지고 하는 사람이거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불평 없이 더 나은 방법을 모색하고 해쳐나가는 사람인데 몇 주 전부터 일 할 때도, 평소에도 가슴이 답답해지고 울렁거리고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하더라는 거야. 그런 말을 들으니까 엄마도 아빠도 처음에 걱정이 먼저 됐었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고. 엄마는 농담처럼 너(?)를 임신한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빠가 왠지 아닐 것 같다고 했었어. 그러다 오늘 아빠가 일하고 있는 동안 엄마가 걱정 반 호기심반으로 산부인과를 찾아가 봤나 봐...! 너무나 반갑고 놀라운 소식을 가지고 왔더라고.
오늘 저녁, 엄마랑 아빠는 신도림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기로 약속했었는데 만났을 때까지도 엄마는 이 기쁜 소식을 알려주지 않았어. 아빠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데. 저녁 식사를 먹다가 문득 술이 생각나서 막걸리 한 잔 먹는 거 어떠냐며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네 엄마가 자꾸 거절을 하는 거야. 그럼 그만 말해야겠다 싶어서 멈추려던 찰나! 갑자기 가방에서 작은 물건을 꺼내더라고. 처음엔 이게 뭔가 싶다가 점점 정신이 또렷해지더니 임신테스트기라는 걸 알았고, 자세히 보니 임신이 맞다고 표시되어 있는 거야. 그리고 동시에 엄마가 가방에서 또 한 번 뭔가를 꺼냈는데 이번에는 너의 인생 첫 사진, 엄마 뱃속 초음파 사진을 보여줬고 초음파 동영상 속 우렁찬 심장박동 소리까지 들려줬어. 아빠는 너를 기다렸고 네가 찾아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수없이 예상했었지만 전혀 생각해본 적 없는 반응을 보였어. 눈이 정말 정말 커졌고 말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머릿속에 아무런 언어도 생각나지 않았어. 한참 동안 엄마가 보여준 물건들을 바라보며 얼어있었어. 그리곤 아빠가 뱉은 첫마디가 '축하해!!!!'였지 뭐야. 말없이 있는 아빠 모습을 보고 그제야 엄마도 실감이 났는지 눈물을 글썽였어. 그러다 아빠가 내뱉은 축하한다는 말에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했어. '남의 일이야? 웃기네 흐흐'. 축하해라고 외친 아빠 말에는 우리 가족에게 네가 찾아왔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우리들에게 축하한다는 의미가 담겨있었다는 걸 기억해줘.
아직은 이름도 애칭도 없는 엄청난 존재의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다시 한번 반갑고 고맙고 축하해! 우리 잘 적응해보자! 잘 지내자!
from.
2020년 08월 09일/ 6주 3일 2개월/ 아..아빠가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