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Oct 07. 2024

국제 연애 할 때 알아야 할 것 - 1

Part 1. 연애 시작 전 주의 사항

영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 남자들과만 연애를 했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답답해서 영국에 왔고 무엇보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런던에 왔으니 한국인이 아닌 남자들과 연애를 하는 것은 어떨지,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데이트를 했다. 궁금한 마음도 물론 컸지만 사실 나는 목표가 확실했다. 몇 번의 데이트로 끝날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함께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영국에서 함께 정착해서 살 수 있는 파트너를 찾고 싶었다.


그동안 시행착오가 꽤 많았다. 다행히 다음 파트너에 대한 목표와 기준이 명확했던 덕에 나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은 초반에 빨리 끊어낼 수 있었다.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주변의 국제 연애 중인 친구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적이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거나 연애를 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꼭 고려해야 할 점들에 대해 내 생각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번 글은 특히 국제 연애 시작 전 주의 사항에 대한 글이고 (주로 서양 문화권의 관점에서) 다음 글은 관계에 있어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사실 이 글은 여성 독자에 포커스를 둔 글이지만 남성에게도 적용된다.


환상에 젖지 않기

나도 영국 남자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이상하게 내가 사랑에 빠진 배우들은 모두 영국 출신 배우들이었는데, 콜린 퍼스, 주드로, 톰 하디 등등 로맨틱 영화에서 영국 영어를 구사하는 예의 바르고 멋진 젠틀맨의 모습을 보며 나도 저런 남자를 한 번쯤은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막상 영국에 와서 실제 영국 남자들을 만나보니 놀랍지 않게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굉장히 컸다. 그 '영국식 영어'로 아무렇지 않게 성차별주의적이거나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욕을 시도 때도 없이 하거나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봤다. 사실 생각해 보면 K-POP이나 K-드라마를 보고 한국 남성들이 모두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 다 알잖아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이건 유러피언 한정일 수 있는데 주로 여자들의 환상의 대상이 되는 국가 - 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 출신 남자들도 그게 여자들에게 먹힌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은 영국인 동료가 영국 밖으로 휴가를 다녀왔는데 자기가 영국식 영어만 써도 여자들이 좋아서 껌벅 죽더라며 자랑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 한번 깨달았다. 어떤 환상에 젖어 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는 것을.

진심으로 이 표정으로 쳐다봄

얼마 전 회사 점심시간에 각자 다른 나라에서 온 여자 동료들 모두가 입을 모아 자기 나라 출신 남자들은 절대 피하라고 얘기해서 이 정도면 지구를 떠나야 하는 수준 아니냐며 모두가 빵 터진 적이 있었다. 그만큼 개인의 경험에 따라 느낀 점이 다를 수 있으니 특정한 환상이나 편견에서 벗어나 상대를 알아가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환상은 누구나 가질 수 있고 내가 매력을 느끼는 요소로 상대를 평가할 때 충분히 가산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지독하게 사랑에 빠졌던 영국 배우들...이런 남자들 영국에 없습니다


패티쉬 조심하기

안타깝게도 아시아 국가 출신 여자들은 한 가지 더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패티쉬'인데, 특히 우리 같은 동양인에겐 '옐로 피버'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처음 겪게 되면 단순 개인적인 취향인지 패티쉬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가장 큰 차이점은 취향을 넘어서 인종이나 외모에 대한 강한 고정관념과 과도한 집착이 수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특히 옐로 피버 남성들은 동아시아 여성들을 하나의 고정된 이미지로 바라보고, 우리를 개별적인 사람으로 대하기보다는 자신이 상상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매력을 느끼려는 성향이 강하다. 예를 들면 그들은 동양인 여성들이 문화적으로 남성들에게 순종적이고, 예의 바르고 조용해서 자신의 의견을 잘 드러내지 않아 본인이 컨트롤하기 쉬운 대상이라고 생각하거나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선호한다고 한다. 이들은 단순한 개인적 호감을 넘어서 우리의 인종적 정체성만으로 성적 대상화한다.


데이트 어플에서 매치되어서 몇 번 대화하다가 서로 인스타그램까지 팔로우하게 된 남자가 있었다. 단순 호기심에 그의 팔로우 리스트를 보게 되었는데 (특히 성적으로 자신을 드러낸) 동양인 일반인 혹은 모델 여성들을 상당히 많이 팔로우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된 후로 그 순간 바로 차단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하나의 작은 팁은, 인스타그램 팔로우 리스트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대략 알 수 있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패티쉬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일단 나와 인종 혹은 문화권이 다른 상대를 만나면 경계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 초기 데이트 단계에서 동양인에 대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며 동양 여성에 대한 '특별함'을 자꾸 강조를 한다든지, 동양 문화에 대한 집착적인 질문을 한다든지 하면 의심부터 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상대가 얼마나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의 경우에는 일부러 그런 고정관념에 반대되는 모습을 계속 보여줬다.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거나 상대방과 이견이 있을 때 솔직하게 반대 의견을 말하거나 대화를 하면서 불편한 부분이 있으면 바로 지적하는 식으로 말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남자라면, 그런 독립적이고 자신의 목소리를 가진 모습에 매력을 느낄 것이고 그렇지 않은 남자라면 어차피 본인이 알아서 떠날 것이다.


너무 다른 데이트 문화

한국에서만 연애를 한 사람들이 해외에 나와서 가장 충격을 받는 게 바로 이 데이트/연애 문화가 아닐까 싶다. 이것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사실 이전 글에서 다룬 적이 있기 때문에 또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해외에 나와 사는 친구들끼리는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로 이곳의 데이트 문화는 정말 스포츠고 (너무 경쟁이 심해서), 풀타임 직업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또 가장 스트레스받는 일 중에 하나이다.

아마 한국인들을 가장 미치게 하는 유형이자 유럽 문화권에서 꽤나 흔한 유형은 '커밋먼트 포비아(Commitment Phobia)' 일 텐데 친밀한 관계나 장기적인 헌신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다. 보통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초반에 짚고 넘어가면 쉽게 거를 수 있다. 나는 첫 데이트 때 '나는 장기적으로 인생의 파트너가 될 사람을 찾는데 넌 어떠니'라고 바로 물어봤다. 이때 커밋먼트 포비아들은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하거나 지레 겁먹고 은근슬쩍 대답을 피하고 넘어가려 한다. 내 남자친구는 저 질문에 대해서 '이 관계가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너를 단순히 장난으로 만날 생각은 없고 진지하게 알아가보고 싶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금사빠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기

한국은 아직도 '남자와 여자는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꽤나 지배적이다. 그래서 연애 대상이 될 사람과 아닌 사람에 대해서 오해가 없도록 구별이 비교적 확실한 편이고 호감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는 '과도한 친절'에 대해서 오히려 경계하는 편이다. 그러나 서양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경계가 모호한 경우가 굉장히 많고 그게 일반적이라 순진한 사람은 기본적인 매너와 호의를 이성적인 호감으로 착각해 금사빠가 되기 쉽다.


영국의 예시를 들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기본 매너와 친절이 몸에 베여있다. 문을 잡아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소한 것에 Lady First라며 양보를 한다든지, 차도를 함께 걸을 때 인도 쪽으로 여성을 안내하거나 지나가는데 아무 이유 없이 미소를 짓는다든지 하는 행동들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기본적으로 하는 매너에 속한다. 영국에서는 인사를 포옹으로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친근함의 의미로 볼에 살짝 뽀뽀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친구끼리 혹은 동료들끼리 사진을 함께 찍을 때도 허리에 손을 자연스레 감는 사람들도 있다. 한국에서 아빠, 남자친구 이외의 남자들과는 그 어떤 스킨십도 해본 적이 없는 우리 유교걸들은 처음에 이 문화를 겪으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아무래도 이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실제로 이곳 사람들의 단순한 배려와 예의를 본인에 대한 특별한 관심으로 착각한 사람들을 종종 봤다. 심지어 더 안타까운 일은, 거절의 의미인데도 친절한 태도 때문에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희망을 갖는 사람들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단순 친절과 이성적 호감을 구별하는 방법으로는 '지속성'과 '사적인 시간 투자'라고 생각한다. 이건 사실 국적을 떠나서 모두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나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은 꾸준히 변함없는 태도를 보이고 둘만의 시간을 갖는 데 집중한다.



 최소 기준에 감동하지 말기

제일 처음 '환상'에 관련한 조언과 '금사빠가 되지 말자'와 이어지는 내용인데, 그래서 너무나도 당연한 것(예를 들어,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 영국식 영어를 쓰는 것) 혹은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적인 매너나 예의에 과도한 점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도 Bare Fucking Minimum (직역하면 '존* 최소 기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안타깝게도 정말 많은 여성들이 이 BFM에 너무 쉽게 감동을 받는다.


예를 들어 이상형이 단순히 '자상하고 스위트한 남자'라고 해보자. 영국을 포함한 유럽의 길거리에는 그런 남자들이 차고 넘친다. 이들은 여자에게 친절하게 하고 양보하는 법이 몸에 베여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위트하게 잘 대해주는 것은 연인으로서 당연한 도리, 즉 Bare Mimimum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상대가 나를 위해 해주는 노력들을 당연히 여기라는 뜻은 아니다. 그 노력이 고맙고 기분 좋을 순 있지만 그것 때문에 파트너로서 엄청난 점수는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이다. 특히 한국의 젠더 갈등에 지친 여성들이, 유럽에 나와 상대적으로 여성 인권이나 성차별 문제에 좀 더 열려있고 함께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남자들을 만나면 혹하기 쉽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것도 최소 기준에 속한다. 애초에 페미니즘에 비판적이거나 여성 혐오적 사고관을 갖고 있는 남자들은 이곳에서 인셀 취급을 받는다. (*인셀(Incel): '비자발적 독신주의자'를 일컫는 말)


이런 최소 기준들에 쉽게 감동하지 않으려면, 특히 미래를 함께할 파트너를 찾을 때에는 나만의 판단 기준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훈남 외모나 키 180 이상 같은 피상적인 이상형 기준 말고, 작게는 취미, 라이프 스타일부터 갈등 해결 방법, 내가 인생에서 추구하고 싶은 가치관까지 폭넓게 따져봐야 한다. 이건 사실 국제 연애뿐만 아니라 모든 연애에 해당되는 조언이다.




요즘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 여기저기 국제 커플 콘텐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제 연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개인적으로 국제 연애는 같은 나라 사람과의 연애 보다 두세 배 더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배경에서 자란 만큼 문화 차이, 언어 장벽 그리고 서로 다른 기대와 가치관 등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가 정말 많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노력과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모든 과정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파트너를 만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 글은 국제 연애의 관계에 있어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문제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런던 한 달 현실 생활비 -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