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방식, 첫 데이트, 유의해야 할 점 등 영국의 데이트 문화 101
지금까지 경험해본 + 지켜본 영국의 데이트 문화는 한국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도 여기 오기 전까지는 연애는 한국인이랑만 했었고 지금 만나는 남자친구가 첫 비(非) 한국인 남자친구이다. 그와 처음 만나서 사귀기까지의 과정은 한국의 경험과 꽤 달랐다. 어떤 일정한 기준으로 일반화 하기에는 사람마다 다르고 대부분은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하지만, 그래도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 참고로 이 글은 특정 국가를 일반화하고자 하는 글이 아니며 순전히 나의 경험과 현지 친구들의 이야기 통해 얻은 인사이트니,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재미로만 받아들여줬으면 한다. 그리고 나는 이성애자이기 때문에 성 소수자의 경험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
만나는 방식
우선 한국에서는, 특히 지금 내 나이 또래들은 소개팅으로 만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아니면 친구의 친구를 우연히 알게 된다든지, 랜덤한 술자리에서 만난다든지 등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이하 자만추) 이거나. 여기도 자만추를 대체로 선호하는 분위기인데 일단 기본적으로 펍 문화나 파티 문화가 발달해서 한국보다는 '자만추'의 기회가 많은 것 같다. 근데 한국과 다른 점은, 소개팅을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고 대신 여기는 데이트 앱을 정말 많이 한다는 것. 한국에서는 데이트 앱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선이 꽤나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 여기 솔로 대부분은 다 범블(Bumble), 힌지(Hinge), 틴더(Tinder) 셋 중에 하나는 무조건 한다고 보면 될 정도로 보편화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번에 어쩌다가 어떤 파티에 가게 되었는데 커플들이 죄다 힌지 아니면 범블에서 만났다고 해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실제로 데이트 앱에서 만나서 결혼까지 가는 커플이 무려 20% 이상이라고 한다.
각각의 데이트 앱에 대한 특징도 있다. 서로 Swipe Right (좋아요) 해야 매치가 되는 방식은 모두 동일하다. 일단 범블은 서로 매치가 되더라도 여성이 먼저 메시지를 보내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선호하는 플랫폼이다. 힌지가 어쩌면 영국에서는 가장 보편화된 데이트 앱인데, 범블과는 다르게 매치가 되면 남자든 여자든 먼저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 힌지는 본인의 사진이나 영상 혹은 목소리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업로드 할 수 있다. 입력해야하는 필수 항목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다른 어플 보다는 공들인 프로필을 볼 수 있다. 나도 지금 남자친구를 힌지에서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틴더. 틴더는 여기서도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 더 강하다. 캐주얼한 만남이나 원나잇을 위한 앱이라는 인식이 많다. 결론은 영국은 소개팅보다는 데이트 앱이다!라고 결론 지을 수 있을 것 같다.
첫 만남, 첫 데이트
데이트 앱이든 자만추든 어떻게든 만나서 둘만의 첫 데이트가 성사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한국에서는 소개팅을 받게 되면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여기서는 첫 데이트로는 가볍게 펍이나 바에서 술을 먹는 것이 더 보편화되어 있다. 둘 다 처음 만나면 어색한 것은 매한가지이니, 아무래도 술 한잔 하며 아이스브레이킹 하는 것이 (그리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술 한잔하고 빨리 헤어지면 되니까) 오히려 덜 부담스럽다는 인식인 듯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대부분 저녁 9-11시면 다 문을 닫기 때문에 한국처럼 저녁을 먹고 2차를 갈 시간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지금 남자친구와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당연히 함께 저녁을 먹을 줄 알고 아무것도 안 먹고 갔다가 공복에 엄청 빨리 취한 적 있다. 기억하자. 영국에서 저녁에 첫 데이트 약속이 잡힌다면 꼭 저녁을 먹고 가기로... 그리고 첫 데이트에서 서로 마음에 들었다면, 그다음 이제 자연스럽게 두 번째, 세 번째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 알아가는(Getting to Know)' 단계로 접어든다.
공식 커플이 되기 까지의 여정
사실 가장 큰 문화 충격은 단연코 이 부분. 우리나라는 호감이 있는 남녀 사이에 '썸' 아니면 '사귀는 사이' 2가지 옵션인데 여기는 내가 파악한 것만 해도 5가지는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는 두 남녀가 만나서 호감이 생기면 흔히 이야기하는 '썸' 단계로 진입하고,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기간은 한 달 정도, 4-5회 정도 데이트하고 하면 으레 남자 쪽에서 먼저 '사귀자'라고 고백을 해서 커플이 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첫 만남 이후 서로 호감이 생기면, '서로 알아가는 단계'로 진입한다. 그리고 이 단계에는 다수의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다. 쉽게 말해, 옵션을 여러 명을 두고 만날 수 있고 그것이 이상하지 않은 문화이다.
그러다 다행히 마음이 서로 맞으면 '익스클루시브(Exclusive)' 관계가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다른 사람과 데이트하지 않고 서로만 '단독으로' 만나는 단계라고 보면 된다. 근데 이 단계가 또 서로 남자친구/여자친구라는 뜻은 아니다. 사귀는 사이만큼의 진지한 단계는 아니라, 언제든지 쉽게 끝낼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 모든 여정을 거쳐서 서로에게만 '헌신' (여기서는 Commitment 라고 부른다.) 하기로 약속한다면, 비로소 공식적으로 연인 사이가 될 수 있다.
내가 '여정'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단계에 수많은 변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로 알아가는 단계'만 몇 달을 가는 사람도 있고 서로 '익스클루시브'라고 해도 사귀는 사이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상태로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상황의 대표적인 이유로 꼽히는 것은 남자들의 '헌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데 굉장히 많은 여성들이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로 고통받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라고 들었다. 이들의 심리는 결국, 데이트를 하면서 연인으로서의 베네핏들은 누리고 싶은데 한 사람에게 헌신하거나 책임은 지기 싫은 굉장히 약은 마인드인데, 한국에서만 쭉 연애를 해왔던 사람이라면 아마 이 부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이곳은 데이트만 해보고 실제로 연애(Relationship)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꽤 많다. (참고로 이건 굉장히 큰 Red Flag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서로 알아가는 단계를 길게 가지는 것은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콩깍지 기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사람의 본래 모습이 드러나니까. 한국에서는 상대방을 충분히 파악하기도 전에 연인 관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식적으로 사귀는 사이가 되기 전에 그 사람이 정말 나와 잘 맞는지, 나와 같은 라이프 스타일을 갖고 있는지, 나와 같은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 등 꼼꼼하게 파악하는 것이 여기서는 가능하다. 중요한 점은 나만의 기준을 확실하게 정해야 엄한 사람에게 끌려다니거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에 나의 기준을 그 사람에게 알리고 'Take it or leave it' 마인드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느꼈다. 난 처음부터 상대방에게 내가 원하는 바를 명확히 전달했고 그렇게 해서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을 초반부터 많이 걸러내서 나의 소중한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지금 남자친구는 내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알고 그것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는 내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이었다고 나중에 이야기해 주었다.
서로 다른 어필 포인트: Green / Red Flags
누구나 데이트를 하면서 상대방의 장점(Green Flag)과 치명적인 단점(Red Flag)을 파악하게 되는데, 여기서도 분명한 문화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30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고 연애해 본 나의 기준으로 영국과 한국의 가장 큰 차이점을 몇 가지 추려보았다.
<관계를 너무 빨리 진행시키거나 초반에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하는 행위 (일명, Love Bombing) >
여기는 공식적으로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반면에 한국은 연애의 진행도 굉장히 빠르다. 한국인이라면 사실 그 속도에 익숙해져 있고 어쩌면 질질 끄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 여기서는 소위 '금사빠'를 굉장히 아주 큰 레드 플레그로 생각한다. 이곳 친구들에게 한국식 연애를 설명해 주면 다들 깜짝 놀라면서 손사래를 칠 정도니까. 초반에 너무 관계를 빨리 진행시킨다거나 과도하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을 여기서는 'Love Bombing' (직역하자면 사랑을 폭탄처럼 막 투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만난 지 2-3번 만에 사귀자고 한다거나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사랑한다고 한다거나 등의 특징을 가진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로맨틱한 일이지만 여기서는 굉장히 치명적인 단점이다.
<연락 텀>
사람마다 다르지만 확실히 여기서는 한국보다는 연락 텀에 대해 관대한 편인 것 같다.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연락 텀에 굉장히 예민했 것 같은데 여기서는 사실 2시간은 정도는 기본이고 회사 일로 바쁘거나 각자 개인 스케줄이 있을 때는 서로 연락이 없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문화이다. 오히려 한국처럼 하루종일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하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남자가 여자한테 관심과 애정이 있으면 연락을 '제 때' 하는 것은 여기서도 똑같다. 연락 텀보다는 연락의 정성도와 깊이가 훨씬 중요한 것 같다.
<직전 연애와의 기간>
한국에서는 상대방이 직전 연인과의 이별 텀이 짧든 길든 그 사람이 어쨌든 현재 싱글이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오히려 괜찮은 사람이 연애 시장에 나왔을 때 얼른 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도 오래된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얼마 안 되어서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상대방이 그렇다고 해서 크게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서는 상대방이 직전 연애와의 텀이 짧은 것을 굉장히 큰 레드 플래그라고 한다. 대부분 전 파트너를 잊기 위한 일시적인 만남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이성이 옆에 있어야 하는 의존적인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요리에 대한 다른 관점>
이건 내가 개인적으로 느낀 아주 흥미로운 점인데, 요즘에서야 한국에서도 요리하는 남성들이 많아지면서 그것을 본인의 매력으로 어필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요리'라는 요소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매력 포인트로 작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에서는 여자가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꽤나 큰 단점이지만 남자가 요리를 못 한다고 해서 그게 엄청나게 큰 단점이 되진 않으니까. 그러나 여기서는 남자가 요리를 못한다는 것은 꽤 큰 단점이라고 한다. 물론 한국에서는 배달 문화가 워낙 발달해있고 외식비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라 요리할 기회가 많이 없지만, 여기서는 외식비가 워낙 비싸고 모두가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한국에서는 상대방으로부터 '네가 해주는 요리를 먹고 싶어'라는 말을 주로 들었다면 여기서는 '너에게 얼른 요리를 해주고 싶어'로 바뀌었다는 것. 남자들이 요리를 할 줄 아는 건 사실 기본이고, 그 이상으로 어떤 요리를 어느 수준으로 할 수 있는지가 주요 어필 포인트인 듯하다.
<자나 깨나 페티시 조심>
특히 한국 여자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여기는 특정 인종에 대한 페티시를 가진 사람이 많다. 내가 매력이 있어서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인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호감'과 '패티시'를 구별해낼 수 있는 가장 큰 차이점은 '나를 좋아하는 이유'인 것 같다. 대게 특정 인종 여성에게 페티시가 있는 남성들은 포르노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은데, 아시아 여성들은 성격이 드세지 않고 남성에게 수동적이고 '조신'하다는 이유이다. 흑인 여성에게 페티시가 있는 남성들은 그 반대의 이유이다. 대게 페티시는 '외모'나 '고정관념'에 치중이 되어 있기 때문에 데이트를 하면서 내가 왜 좋은지, 나의 어떤 점에 끌리는지 등 대화를 많이 나누어보면 금방 판단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