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결혼식 문화
'영국의 결혼식'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 중에 하나가 아마 영화' 어바웃 타임'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특히나 이 장면이 더욱 유명한 이유는 한국 결혼식의 모습과 전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틀에 박힌 형식이 아닌 커플에게 집중된 결혼식 - 신부의 빨간 웨딩드레스, 비바람이 몰아쳐도 웃어넘기는 사람들, 우스꽝스러운 하객들, 완벽하진 않지만 따뜻한 결혼식으로 아마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 한편의 로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영국 오기 직전, 동갑내기 친구들 그리고 나보다 어린 동생들까지 한창 우르르 결혼하던 성수기 시즌을 보냈다. 영국에 오고 나니 남자친구도 비슷한 시기를 보내게 된 덕분에 영국식 결혼식에 초대받아서 함께 가보기도 하고, 프러포즈를 받은 친구들 덕에 결혼을 실제로 준비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어바웃 타임' 결혼식은 영화에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스몰' 웨딩의 기준
2022년 10월, 내 동생이 결혼을 해서 남자친구와 함께 한국에 방문했다. 하객이 170명 내외로 한국 기준 평균보다 작은 결혼식이었는데 남자친구에겐 '스몰 웨딩'이라고 이야기를 해둔 상태였다. 그런데 결혼식 당일, 식장에 방문한 남자친구는 이건 절대 스몰 웨딩이 아니라며 깜짝 놀랐다. 영국의 평균 하객 수는 50명 정도에서 많게는 150명 정도 라고 하는데, 영국인의 기준에서 170명은 오히려 평균 이상을 훨씬 웃도는 셈이다. 우리나라 결혼식 하객 인원은 많게는 500명까지도 가기도 하는데, 사돈의 팔촌까지 초대해 다 같이 축하하는 분위기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기브 앤 테이크 성향이 강한 축의금 문화가 큰 이유인 것 같다. 하객들을 최대한 많이 초대할수록 사실은 더 이득이기 때문이다. 축의금으로 결혼식 비용 전부를 회수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내가 봤던 영국의 진짜 '스몰' 웨딩은 친지, 가족들만 불러 20명 내외로 한 결혼식이었다. 신부 쪽의 집이 결혼식 베뉴였으니까 말로만 듣던 찐 '하우스 웨딩'이었던 것.
진짜 축하할 사람들만 초대하기
영국은 일단 축의금 문화가 아니다. 보통은 신랑 신부가 원하는 위시 리스트가 있어서 그 리스트에 있는 선물을 주거나 요즘은 신혼여행에 보탬이 되라고 일정 금액의 현금을 주는 문화가 생겼다고 한다. 축의금을 주고받는 문화가 아니다 보니, 사실 결혼식에 많은 인원을 초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만큼 커플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진다는 뜻이다. 예식 날짜가 정해지면, 몇 개월 전부터 하객들의 리스트를 작성하고 참석여부(RSVP)를 다 확정받아서 거기에 맞게 결혼식을 계획한다. 그리고 결혼식이 하루종일 진행되다 보니, 일단 와서 밥 먹고 잠깐 얼굴만 비추고 가도 되는 한국식 결혼식과는 달리, 그 하루의 시간을 온전히 커플에게 기꺼이 쓸 수 있는 사람들만 초대한다.
나는 한국에서 정신없는 결혼식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떤 예식장은 여러 커플이 막 섞이기도 하고, 한 번은 밥을 먹고 있는데 일면식도 없는 다음 시간대의 신부가 지인인 줄 알고 와서 인사를 한 적도 있었다. 나는 결혼식에 가면 정말 축하하는 마음으로 웬만하면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데, 식은 보지도 않은 채 그냥 밥만 먹고 가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바쁜 시간을 내어 와 준 것 만으로 감사한 일일 수 있으나, 그렇게 밥만 먹고 갈 정도로 바쁜 사람을 초대하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기도 했다. 그 상황을 비난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내가 결혼식을 한다면 끝까지 자리에 남아서 나와 함께해 주고 온 마음을 다해 그날을 축복해 줄 사람들만 초대하고 싶었다.
하객의 편의보단 커플의 취향대로
아무래도 수백 명의 사람들을 초대하다 보니, 한국은 결혼식을 생각할 때 하객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한다. 교통은 편한지, 밥은 괜찮은지, 주차장은 있는지 등 철저히 결혼식에 와주는 하객들의 편의에 포커스를 맞추어 결정한다. 예를 들면 베뉴는 정말 마음에 드는데 교통이 불편해서 다른 옵션을 선택한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이곳의 커플들은 온전히 모든 포커스를 본인들에게 맞춘다. 베뉴부터 콘셉트까지 모든 선택은 커플의 취향대로 하고, 어쩔 때는 하객들의 드레스 코드까지 정해준다. 그리고 하객들도 불평불만 없이 커플의 선택을 존중해 준다. 영국은 런던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한 도시와 지역에 베뉴가 많고, 도심 한복판보다는 프라이빗한 곳을 선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이 '편의'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직접 몇 시간을 운전을 해서 가야 하는 경우가 많고 기차를 타더라도 3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5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리고 여기는 꽤 많은 커플들이 'Destination Wedding'이라고 해서 이탈리아나 프랑스 등 영국이 아닌 해외에서 결혼식을 많이 하는 추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축하를 하기로 결심한 하객들은 장소가 어디든 개의치 않고 간다.
심지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결혼식 덕에 대부분은 파티가 끝나고 근처에 돌아가서 지낼 숙소가 필요한데, 숙박 비용도 보통은 하객들이 지불한다. (물론 이 비용도 모두 본인들이 부담하는 커플들도 있긴 하다.) 결혼식에 대한 모든 비용은 당연히 커플이 부담하지만, 교통이나 숙소 등 당일 하객들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하객들이 알아서 해결해야 된다. 그래서 결혼식 하객으로 초대받으면 사실 심심찮게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내 친구 중에 한 명은 올해 결혼식이 너무 많아서 빈털터리가 되었다며 툴툴거렸다. 그래도 막상 결혼식 당일이 되면, 이런 서로의 배려 덕에 신랑 신부, 그리고 하객들 모두가 기억에 남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식'이 아닌 '파티'
한국은 결혼식, 그리고 이후 피로연을 모두 포함해 2-3시간 내외라면 영국은 하루의 모든 시간을 결혼식에 쏟는다. 오후 2시쯤 느지막이 모여서 자정이 넘어서야 모든 행사가 끝난다. 어떤 결혼식은 그다음 날 아침까지 쭉 이어지기도 한다. '식' 자체에 소요되는 시간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30분 내외인데, 그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부부가 된 커플을 축하하는 행사가 사실 그날의 메인이다. 함께 샴페인을 터뜨리고 서로 축사도 주고받고, 웨딩 케이크도 서로 나눠먹으며 맛있는 저녁 식사도 함께 한다. 그리고 진짜 '파티'가 열린다. 모두가 술을 마시고, 음악 소리도 커지면서 함께 춤을 춘다. 밴드를 초대하면 미니 콘서트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파티 시작 전에, 부부가 된 커플이 처음으로 춤을 같이 추는 'First Dance'라는 순서가 있는데, 부부의 사랑과 단결을 보여주는 순간이라 의미가 큰 시간인데 이 순간을 위해서 커플들이 댄스 수업을 다니기도 한단다. 이 시간만큼은 둘만의 시간이고 하객들은 옆에 서서 흐뭇하게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First Dance가 끝나면 이제 모두가 함께 춤을 추고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내가 꿈꾸는 결혼식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나는 결혼식만큼은 이곳 문화와 정서에 따를 예정이다. 물론 가능하다면 2가지 문화를 섞고 싶긴 하다. 피로연 때는 칵테일 드레스가 아닌 퓨전 한복을 입는다던가 식사 마지막에 잔치국수를 내온다던가 하면 더 기억에 남고 재미있을 것 같다. 한국이 아닌 영국 혹은 다른 나라에서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당연히 한국에서 할 때 보다 하객 수는 훨씬 작고 결혼식 비용을 충당할 만큼의 축의금도 받지 못하겠지만, 모두에게 똑같이 정해진 루트를 따르기보다는 인생에 한 번뿐인 특별한 날인 만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와 내 파트너가 원하는 방식대로 계획하고 싶다. 그리고 결혼식장에 온 모두가 매 순간 진심으로 즐기는 자리였으면 한다.
우스갯소리로 이미 정말 친한 친구들은 내가 어디서 결혼을 하든 갈 준비가 되어 있다며 청첩장만 달라고 한다. 그런 말만이라도 고마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내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나와 내 파트너, 가족들, 친구들 그리고 하객들 모두에게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바로 꿈꾸는 결혼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