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후세시 Sep 29. 2024

해외 생활 '불안이' 다루는 법

걱정을 사서 한 지난 한 달간 근황

지난 몇 달간은 글을 쓸 힘이 없을 정도로 꽤 지쳐 있었다. 원래 글을 쓰면서 쌓인 스트레스나 감정적 소용돌이를 잠재우는 편인데 무슨 글을 써야 할지 아이디어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가 되고자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 스스로에게 정작 힘과 용기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욕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 감정은 지난 8월에 썼던 글과 이어지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 글은 내 마음속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썼던 글인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다. 저 글에서 다짐했던 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도 완벽하지 않은 사람인지라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불안해하기도 하면서 여전히 그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나의 불안의 가장 큰 원인

최근 불안의 가장 큰 원인이자, 9월의 주요 소식은 타 팀에 난 공석에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는 회사가 마음에 안 들면 늘 퇴사를 했지 내부 이동이라는 옵션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아무래도 지금 회사에 비자가 묶여있어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고 (* 영국은 워킹 비자 스폰서십이 특정 회사에 종속되어서 관두거나 잘리면 비자가 무효가 된다.) 사실 직무가 마음에 안 들 뿐이지,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너무 좋고 회사 복지나 문화는 사실 영국에서도 정말 괜찮은 편이어서 가능하다면 부서를 바꾸는 것이 나에게 가장 좋은, 그리고 현실적인 방법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합격을 하게 되면 따로 글을 쓰겠지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무사히 지원을 해서 프레젠테이션 면접까지 봤고, 지금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다. 가장 나를 불안하게 한 것은, 내부 지원자라고 해서 합격을 한다는 보장이 전혀 없고, 똑같이 외부 지원자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최종 합격자가 되지 못하면 다시 지금의 팀에 머물러야 하는데 그러면 다시 성향에 맞지 않는 세일즈 일을 계속해야 했고, 직속 매니저와 매니저의 매니저까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으니 이후에 괜히 불이익을 받거나 사이가 어색해질 것도 감안해야 했다. 그리고 회사 일을 하면서 따로 면접을 준비한다는 것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게다가 내부 지원자다 보니 옆에서 자세한 이야기들을 의도치 않게 알게 된다는 것도 불안의 요소 중에 하나였다. 예를 들면 이 롤에 200명이 넘게 지원을 했고, 6명이 인터뷰 스테이지로 올라갔다는 것, 그리고 외부 지원자가 면접을 하는 것을 우연히 보기도 했다. 사실 지원 하기 전 까지만 해도 2년 전처럼 아무것도 없던 백수 취준생도 아니고 여기서 떨어져도 잃을 게 없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었는데, 막상 과제를 준비하고 면접을 보면서 이 기회가 간절해지니 매일 불안이 치솟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다.


왜 나는 늘 불안할까?

한국에서도 원래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지만 해외 생활을 시작하면서 나의 불안이 더욱 커졌다는 것을 느꼈다. 지난 몇 달 동안 느낀 나의 무기력함은 이 끊임없는 불안감 때문인 것 같았다. 특히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안함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한국에서는 모든 일이 내 손안에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원하면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었고 친구도 비교적 쉽게 사귀었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늘 이뤄내면서 마음 가는 대로 살았다. 하지만, 영국에 오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비자 문제로 한국처럼 쉽게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수 없고, 일상생활 그리고 직장에서는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을 늘 상대해야 하다 보니, 모국어만큼 완벽하지 못한 내 모습에 부딪히면서 이전에 쉽게 대인 관계를 유지하던 나만의 강점이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 가끔 미묘한 인종 차별이나 마이크로 어그레션을 겪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떻게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한국에서 나는 컨트롤 프릭(Control Freak)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서 살 때 보다 생긴 다양하고 많은 변수들이 나의 불안함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봐도 내 모습 같단 말이지...


불안이 잠재우기 프로젝트

그래도 내가 영국에 와서 아직도 꾸준히, 가장 잘하고 있는 점은 끊임없이 나의 감정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내가 불안을 느끼는 이유는 현재에 집중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미래를 걱정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까지 과하게 걱정을 한다는 것도 말이다. 나는 내가 보살펴줘야 하는데 그동안 채찍질만 당한 나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안쓰러웠다.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 처럼, 모든 미래의 가능성까지 걱정을 사서 하는 이유는 나를 보호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1.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나는 최선을 다해서 면접을 봤다. 프레젠테이션 면접 직후에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없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이내 다시 불안해진 이유는 내 손을 떠난 문제에 대해 온 정신을 쏟아서 그렇다. 외부 지원자, 팀의 최종 결정 - 이 두 가지는 내가 통제 할 수 없는 문제이다. 나보다 더 경력이 맞고 면접을 잘 본 지원자가 언제든지 있을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뽑힐 수도 있다. 회사는 그저 팀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결과를 기다리면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최종 합격자로 선택이 되면 정말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좌절하기보다는 지금 이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게 훨씬 더 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2. 현재에 집중하기

나이가 들어 철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영국에 오고 나서 더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직장 생활이 내가 원하는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 보니 앞으로 남은 생 동안 어떻게 먹고살지에 대한 고민이 늘었고 그러다 보니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조바심과 걱정도 많이 생겼다. 집도 사야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나중에 아기도 낳아야 하는데 언제 이걸 다 하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런 걱정을 한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해결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걱정을 사서 하는 바람에 가장 중요한 현재를 많이 놓치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미래와 점점 가까워지겠지 라는 생각으로 그저 열심히 하루를 살아 볼 생각이다.


3.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그동안 회사 스트레스에 면접 준비 때문에 급격히 불안을 느낀 이후로 주말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있는 것이 마음 편했다. 어제 남자친구가 대학원 공부를 한답시고 토요일인데도 사무실에 출근을 했는데, 끝나고 날씨가 좋다며 갑자기 급 데이트를 신청했다. 창 밖을 보니 정말 하늘이 파랗고 완연한 가을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는 정말 파란 런던 하늘

오랜만에 런던 시내에서 기분전환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코벤트 가든 근처에서 만나서 맛있는 일본식 라멘을 먹고 트라팔가 스퀘어 - 소호 - 피카딜리 서커스 근처를 걸었다. 주말이라 거리가 매우 분주했지만 길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언제 봐도 멋진 건물들,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며 내가 정말 사랑하는 런던의 모습들을 다시 느꼈다. "그래, 이 아름다운 도시가 이제는 나의 집이 되었지"라는 생각에 금세 행복해졌다. 해외 생활은 불안과 불확실함의 연속이지만, 그럼에도 이 삶이 얼마나 행복하고 감사한지, 걱정과 불안 속에서 그 사실을 또 잠시 잊고 지냈다는 것을 어제 다시 깨달았다. 이 기분을 좀 더 자주 느껴야겠다.


맛있는 기네스로 유명한 소호 펍 Devonshire
가을이 찾아온 트라팔가 스퀘어



매거진의 이전글 이제 갓생을 살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