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도 우울하지도, 그 무엇도 아닌 감정의 상태의 값을 0이라고 하고, 8,030개의 x좌표에 감정의 높낮이를 y값으로 대응시킨 후에 한 발짝 물러서 본다. 거의 직선에 가깝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평균값은 -1에서 -2 정도 되는 듯하다.
같이 밥이라도 먹는 날에는, 웬만하면 상대의 입맛에 맞춰 메뉴를 정한다. 오늘은 칼국수가 꼭 먹고 싶다고 말하기보다는 오늘 칼국수는 별로 안 당긴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식으로 매번 머리를 싸매게 하는 메뉴 선택의 짐을 덜어주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먹는 것에 있어 온전하게 행복함을 느낄 줄 아는 상대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이득이라 생각했다. 나는 어떤 걸 먹더라도 느끼는 행복감은 비슷했으니까. 마이너스가 되는 것들만 미리 제외시키면 됐다. 덕분에 흔히 말하는 '아무거나'를 외치는 주관 없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도 했다. 배려해 줘서 고맙다고, 항상 양보해 준다며 진심 어린 칭찬을 보내준다. 그럼 나는 겉으로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갸우뚱거렸다. 정말 아무 상관없는데 이렇게 고마워한다는 게 의아했다.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고집할 마음이 있다는 게, 그렇게 했을 때 행복하다는 게.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게 없는 건 아니다. 하고 싶은 걸 하고, 그 속에서 나만의 취향을 품는 걸 즐기고, 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게 해도 크게 즐겁거나 행복하진 않다. 이쯤 되면 이렇게라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러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문득 우울증인가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찾아보니 우울하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종류의 우울증이 있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종류의 우울증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런 성향에 대해 이미 과학적으로 연구된 바가 있구나. 어딘가 잘못되거나 틀린 존재는 아니구나. 싶은 마음에서였다.
노력해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유튜브에 널려있는 행복에 관한 영상들도 종종 챙겨보며 사소한 것에서 행복해하고 감사해보려 했다. 실제로 매일매일의 삶에서 내 주변에는 감사한 것들과 행복한 것들이 많았다. 웃고 즐길 것들이 있었다. 다만 머리로만 이해가 될 뿐 마음으로 닿지는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도 그 덕분에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것도, 그 무엇도 마음으로까지 이어지진 않는다. 반대로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부정적인 감정에 있어서는 참으로 예민하고 섬세하다. 그 사실이 슬펐다. 좋은 감정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고 싶었다. 네가 낮추려고 노력하면 되지 않냐고 되물으면 솔직히 할 말이 없지만 마냥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고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있다.
공기가 품은 냄새들을 좋아한다.
이제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선선한 아침 공기
타는 듯한 향이 섞인 시골에서 느낄 수 있을 법한 저녁 공기
날이 서있고 차갑지만 축 가라앉는 듯한 밤공기
공허함이 뿌리 채 내려앉은 새벽 공기
내가 유일하게 행복함을 크게 느끼는 순간들이다.
아주 짧지만, 그래서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