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무너지지 말자는 말이 날 너무나도 쉽게 무너뜨렸다. 나의 다리를 짓뭉개고 있는 넓적하고 거대한 바위를 보며 절망하고 있을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다. 힘내자고, 훌훌 털고 일어서서 다시 나아가자고, 별거 아니라고 위로하는 잔인한 말들이다. 문장만 두고 보면 다정한 단어들의 결합임이 자명하지만 그 이면에는 어찌 됐든 빨리 괜찮아지길 바라는 귀찮음이 묻어있다. 누군가 와서 바위를 들어내주길 기다리지 말고 깔려있는 다리를 얼른 잘라내고 병원으로 기어가라는 말처럼 들렸다.
다정한 문장이 다정한 문장으로 나에게 존재할 수 있는 순간들은 한정돼있다. 아침의 침대가 날 놓아주지 않거나 해야 할 일이 쌓였는데 벌써 시곗바늘은 새벽 2시를 가리키거나 시간이 없어 점심을 건너뛴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다. 단순하고 내가 해결해야 하는 일이며 나도 내가 찰나의 짜증과 무기력함에서 내뱉는 말들이라는 걸 아는 순간들이다. 그러니 상대도 적당한 리액션을 취해준다. 어제 늦게 잤으니 피곤하지, 힘 빡 주고 일어나서 얼른 씻자. 그래도 어쩌겠어 해야 하는 일들인데, 같이 힘내자. 이거 끝나고 얼른 맛있는 밥 먹자, 금방 지나갈 거야. 하고는 가벼운 진심을 건넨다.
반면에 당신은 쉽게 무너지지 말자는 가벼운 진심을 쉽지 않은 일에 건네기도 한다. 과장하자면 출혈이 일어난 배를 부여잡은 사람한테 다시 깊게 칼을 찔러 넣어 죽이는 셈이다. 그저 나의 숨이 멎어 더 이상 들리지 않을 때까지 옆에 있어주길 원한다. 나도 당신이 날 살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당신에게 말한다. 이 사실을 너도 알 테지. 그럼에도 그렇게 말한 당신이 미워진다. 습관처럼 멀쩡한 배를 부여잡고 쓰러지는 연기를 해대던 당신이 싫어진다. 나도 당신처럼 그랬을 거라 판단하는 당신에게서 멀어진다. 그러기로 한다.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 다짐하며 배를 관통한 칼날을 빼내어 서서히 홀로 죽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