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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ie May 24. 2019

오! 독일, 나의 독일(1)

나와 독일의 관계를 회상해보며 자기 전에 한번 써 내려가 본 회고록

누구에게나 특별한 도시, 국가는 하나쯤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국내던, 외국이든. 내게 있어 그러한 곳은 독일이다. 나는 누군가처럼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지도, 또 다른  누군가처럼 성인기의 절반을 독일에서 보내지 않았고, 지금 거주하고 있는 곳도 독일도 아니다. 하지만, 내게 독일이란 나라는 마치 제2의 고향과 같이 이름만 들어도 애틋함이 드는 곳이다.


초등학교 무렵, 어느 날 엄마가 친구를 만나러 독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한동안 엄마는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비행기 편을 알아보셨다. 컴퓨터 앞에 앉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언뜻 보이는 루프트 한자의 홈페이지, 그게 내가 기억하는 나와 독일의 첫 커넥션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다. 나는 고등학교 2년 동안  내내 레알 마드리드 유스의 한 축구선수에게 빠져 스페인으로 유학가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배우겠다고 했다. 그리고 3학년이 된 이후엔 바로크 미술에 빠져 불어를 전공해 에꼴 드 루브르로 석사 유학을 갈 것이라는 배포 큰(?) 미래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날 데려간 건 스페인어학과도, 불어불문과도, 예술 사학(ㅋㅋ)과도 아닌 독어독문과였다.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예술 명문학교 에꼴 드 루브르.  


독어독문과. 사실 독일어와 아예 관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친구의 영향으로 종종 독일 간식(이라고 적었지만 초콜릿 포대라고 읽어주세요.) 독일어로 된 책을 선물 받았고, 중학교 2학년 땐 남모르게 이모 락에 빠져 당시 유럽 대륙의 사춘기 여자아이들을 평정하고 있던 도쿄 호텔을 좋아하기도 했었다. 덕분에 남들이 동슈 501이라고 불리는 당대의 남아이돌을 흠모할 때 혼자 도쿄 호텔의 인터뷰를 알아듣겠다고 독일어 알파벳을 공부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독일과의 커넥션이라고 할만한 건 좀 있었던 거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대학에서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당시 내가 좋아하던 토키오 호텔의 메인 보컬 빌. 지금 보면 그냥 웃음 나온다. 얘네 음악은 아직도 종종 듣지만, 아직도 주변인들에게 애네 팬이었다고는 말 못 함.


이렇게 뭔가 독일어에 대해 굉장히 애매한 태도로 입학한 것 같지만, 입학하고 나서 나는 내 전공을 무척 사랑했다. 그 언어 자체에 대한 낯섦도 없었고, 독일어권에 대한 문화나, 역사를 배우는 것도 너무 재밌었다. 학창 시절 주야장천 읽어 내려갔던 유럽 사학 서적 짬밥이 있어서 역사 관련 수업 시 속으로 '저거 내가 읽어던거!!!' 하는 것도 내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렇게 학년이 끝나고, 한 달 동안 독일로 떠나게 되었다. 명목은 유럽여행이지만, 실제 내가 갔던 지역의 8할은 독일어권이었으니, 독어권 여행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어쨌든, 여행의 목표는 미래에 어쩌면 내가 거주하게 될 국가의 분위기를 알아보는 것과, 내가 아는 독일어를 시험해보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겨울을 싫어하지만,  나는 독일만 갖고 있는 특유의 겨울 분위기가 좋다.


여행은 완벽했다. 악명 높다던 유럽 치안은 다 거짓말이었나 싶을 정도로 낮밤으로 잘 돌아다녔고, 차갑고 쌀쌀맞다던 독일인들 (특히 베를리너들)은 생각 외로 차갑지도 않았고, 도움을 요청하면 곧 잘 (친절히) 도와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아는 수준의 독일어로도 일단은 잘 살겠다는 결론도 도출해냈으니, 여행의 목적도 달성했다고 할 수 있겠다.


뮌헨 시청사 앞에서 너무 신난 나.


한 번은 살아 볼 만한 나라 독일이라는 결론을 낸 체 서울에 돌아온 나는 한동안 독일병을 앓기 시작했고, 가는 것 외엔 치료방법이 없다는 결론과 함께, 일 년 뒤에 다시 독일로 출국하게 된다. 이번에는 일주일도, 한 달도 아닌 일 년을 살아보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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