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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셜리 Mar 05. 2021

왜 얘하고만 하면 일이 꼬일까?

님아, 그 동업자 말을 믿지 마오

오늘 아침, 월급 통장에서 돈 모으는 통장으로 돈을 이체하려고 국민은행 앱을 켰다. 다른 은행에 있는 내 계좌도 등록해두어서 돈 옮기는 게 편해진 뒤로 자주 이용하고 있다. '이체'를 누르고 이미 여러 번 보낸 적 있는 내 계좌번호 중 하나를 선택했다. 비밀번호를 누르자 받는 사람의 이름을 확인하는 팝업이 떴다. '역시 내 이름, 맞군' 하고 이체를 마치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요즘 세상이 이런 세상이다. "너 돈 잘못 보내는 거 아니지? 이름 빨리 확인해 봐. 보이스피싱 당하고 있는 거 아니지?" 하고 앱이 물어봐 주는 세상. 물론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돈 잘못 보내기도 진짜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한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나와 엄마에게 사기를 친 사기꾼 얘기다. 그는 엄마와 동업을 하기로 했던 '동업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받을 돈이 있던 어느 겨울날, 그는 말했다. "언니, 내가 언니한테 갚을 돈 보낸다고 계좌이체를 했는데 계좌번호를 잘못 써서 어떤 이상한 할아버지한테 갔나 봐 그게."


착오 송금이라니. 뉴스에서나 볼 법한 그 일을 겪으면서 엄마는 생각했단다. '왜 얘하고 일하는 게 이렇게 힘들까. 왜 이렇게 일이 안 풀릴까.' 사실 그와 돈으로 엮인 뒤부터 잘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돈 주기로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내서 구치소에 들어가질 않나, 투자회사가 감사를 받게 돼서 동업하기로 한 찜질방 건축이 중단되질 않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다 개수작이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지만 엄마는 그걸 믿었다. 그때는 그의 말을 의심하는 것보다 '어쩜 이렇게 일이 안 풀릴 수가 있을까.' 한탄하는 편이 합리적이었으므로.




정말 그때는 일이 안 풀린다고만 생각했다. 그는 돈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데 돈을 잘못 받았다는 그 할아버지가 꼬장꼬장해서 돈을 안 돌려주는 거라고 생각했고, 돈 주기로 한 사람이 교통사고를 냈는데 구치소에 들어가서 돈을 줄 수 없다는 말도 다 믿었다. (우리도 이때 알게 된 것이지만, 요즘은 교통사고를 냈다고 해서 바로 구속되지 않는다. 인명 사고가 난 게 아니라면 말이다.) 설령 구치소에 들어간 게 사실이라고 해도 그거랑 돈 주는 건 별로 상관도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말 귀신이라도 씐 게 아니라면 이럴 수가 있는 건가. 굿이라도 해서 이 액운을 떼내 버리고 싶었다.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귀신이 아니라 사기꾼이 씐 것이었다. 그들이 작정하고 속였기 때문에 그 수많은 일들이 꼬이고 꼬였던 것이다. 그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들을 의심했던 나도 그들의 말을 믿고 말았다. 뻔뻔하게 내 눈 똑바로 보고는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믿어버리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은 작정하고 벌인 판이었기에 흔들림이 없었다. 요는, 누구든 멍청해서 속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작정하고 덤비는 놈에게 이길 장사가 없다.


한편으로는 정말 놀랍다. 그 모든 '없던 일'을 '있던 일'로 지어내서 지껄인 그들의 말솜씨가 말이다. 상상력이 빈곤한 나 같은 사람은 못 할 일이다. 하긴 나도 '이번에 한 탕 하면 3억이야' 입금만 보장되어 있다면 가능했을지도.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성공자들이었다.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누군가와 하는 일이 지나치게 안 풀린다면 잠시 멈춰 보라는 것. 사람이 아무리 운이 안 좋아도 앞으로 넘어졌는데 뒤통수가 깨질 일은 없지 않은가. 꼬이고 꼬여서 될 것 같던 일도 안 되고 수틀리는 경우가 잦다면 귀신 씐 것이겠는가, 사기꾼이 씐 것이겠는가. 천사 같은 그 사람을 와락 믿어버리고 싶겠지만, 그 편이 편하겠지만 불편해도 우리 잠깐만 멈춰서 다시 보자. 천천히 가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자세히 뒤져보면 최악의 경우 나와 엄마처럼 동업자가 사기꾼임이 드러날 수도 있고, 작은 거짓말이 밝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세상엔 우리 상상을 뛰어넘는 나쁜 놈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눈 보고는 거짓말 못 한다는 건 우리 보통 사람들 얘기였기 때문이다. 교도소 밥깨나 먹어본 놈들은 하늘 무서운 줄을 몰랐다.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죽고 싶다며 비통한 연기를 척척해냈고 생글생글 웃으면서도 사람 죽이는 말을 서슴없이 지껄였다. 우리는 스스로가 다 큰 어른 같겠지만, 범죄의 세계에선 애송이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우리 눈엔 우리 같은 사람만 사는 것 같겠지만 조두순도 나와서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세상이다. 우리 제발, 누군가를 믿을 땐 서류와 녹음을 기반으로 하자.


이것이 엄마와 내가 1년 넘게 고통받으며 얻은 교훈이다. 이 일을 이렇게 건조하게 꺼내 얘기하기까지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었다. 지금 쎄한 기분이 드는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사람만 믿고 뭔가 일을 벌였다면 돌다리도 두드려 보자. 계좌이체 한 번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세상에 운이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흔치 않으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나쁜 놈은 쌔고 쌨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말이다. 그리하여 우리, 우리의 안녕을 적극적으로 지켜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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