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쿠션어 수련기
편집자라는 직업이 나에게 온 이유 - 2
강점이라고 믿었던 것이 약점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나에겐 쿠션어가 그랬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성격상 나는 사족을 싫어해서 중언부언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는데, 그러다 보니 감정적 완충지대가 전혀 없는 언어를 쓰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두괄식 그 자체인 사람, 전화하면 용건부터 건네는 유형이랄까.
이런 성향은 일을 하면서 더 굳어졌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가장 힘들었던 것이 의사소통이었기 때문이다. 애매한 말로 '그래서 어쩌란 건데'를 한 번 더 물어보게 만드는 사람, 시간 없는데 주저리주저리하다 결론은 맨 마지막에 두는 사람, 말의 저의까지 파악하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게 만드는 사람들까지, 간결한 말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나만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고, 실제로 보고할 때나 발표할 때, 메일을 주고받을 때 간결하고 알아듣기 쉽게 말하고 쓰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도 그 부분에서는 꽤 다듬어졌다고 생각할 정도가 됐다. 실제로 내가 원하던 말글을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일한 지 10년이 된 지금, 이런 내 노력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돌아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말이 간결해서 참 좋네요"라는 피드백을 받은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반면 지금 일하는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말에 온기를 더해보라"는 말을 들었다. 해석해 보자면 메일 앞뒤로 '쿠션어'를 덧붙여보라는 지령이었다. 그간 덕지덕지 붙은 군살을 빼느라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제 와서 내 손으로 지방덩어리들을 다시 붙이라고? 나는 허탈해졌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내 기준으론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메일을 앞에 두고 쿠션어 덧붙이기를 실행했다. 다행히도 나 같은 어려움을 겪는 인간 로봇들이 많은지, 검색만 해도 '메일 첫인사'를 잘 정리해둔 포스팅이 수없이 나왔다. 그것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자, 내가 '사족'으로 분류해 쓰레기통에 처박았던 문장뭉치가 내 언어 풀 위로 떠올랐다. 이런 것들이다.
"선생님, 잘 지내셨죠?" (탈락. 이건 정말 하나 마나 한 말 아닌가? 원래 "How are you?"는 바로 "Fine. and you?"로 주고받기를 할 수 있어야 민망할 틈 없이 가벼운 인삿말로 완성되는데, 메일에선 이게 안 되기 때문이다. 물어본 지 한참 뒤에 "예, 저 잘 지냈어요." 하는 뒷북이란... 민망하고 쓸모없다.)
"다름이 아니라" (이것도 탈락. 나도 늘 뭔가 부탁해야 하는 입장에서 일했던 터라 마지막까지 이 말만은 버리기 어려웠다. 그치만 '다름이 아니라'를 붙인다고 해서 받는 사람이 "오, 이 친구는 매우 공손하군" 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자, 이마저도 버리기로 했다. 지금은 나에게 이 말을 붙여서 메일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없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더울 때 뵀던 것 같은데 벌써 찬 바람이 부네요" (탈락. 정말 할 말 없을 때 꺼내는 게 날씨 얘기라 이런 말은 거의 넋두리처럼 들린다. "계절이 바뀔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한 번 뵙고 얘기 나누시죠" 하는 말로 이어질 게 아니라면 이런 말은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닐까.)
결국 나는 진심으로 쿠션어를 쓰고 싶었지만 쓰는 척만 하다가 다시 나의 건조한 메일로 돌아왔다. 거기엔 쓸모도, 진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쿠션어가 필요한 곳은 따로 있었다. 작가에게 보내는 원고 검토 의견을 쓸 때다. 책을 만들 땐 작가가 쓴 초고를 편집자가 검토하게 되는데,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기에 앞서 글의 순서나 문장 스타일 등 큰 맥락에서 수정할 부분이 없는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고의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해서 수정을 요청하게 될 때가 많고, 그게 편집자의 일이기도 하다. 처음엔 나도 "일하는 건데 거기에 감정까지 섞어서 일하라고요?" 싶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건 인간관계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요소다. 생판 처음 본 남이라도 "당신 얼굴에 여기가 이상하게 생겼네요" 대놓고 말하지 않듯, 작가의 글에서 뭔가 개선할 점을 얘기할 땐 지적받는 것처럼 느끼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 (이 대목에서 "글이 이상한데 어쩌라고요?"라는 말이 나오는 사람이라면 편집자는 아마 할 수 없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작가와의 관계를 쌓아나가는 데 중요한 부분이다. 보통 원고 검토 의견은 원고 파일에 메모를 달아서 전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보완 부탁드립니다."라고 쓴다면 어떨까. 문장이 이해되지 않아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글쓴 사람은 '내가 글을 그렇게 못 쓰나?' 하며 좌절할지 모른다. '앞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었는데 **을 언급하는 점이 흐름을 끊는 듯합니다."라거나 "문장에 주어가 없어 의미가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어떤 맥락에서 이해가 되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려는 성의가 필요하다. (물론 아예 추측이 불가능한 문장도 있긴 하다.) 피곤하지만 이게 글을 일로 읽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다. "이 글 이상해"라는 말은 글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아닌가.
흔히 편집자는 첫 번째 독자라고들 하는데, 그런 점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저자에게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글이라곤 모르는 웬 나부랭이가 하는 말이네' 하고 흘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피드백을 쓸 땐 감정적 완충지대가 되는 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뒤로 맘에도 없는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저는 작가님 글을 책으로 만드는 동업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보면 좀 더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편집자를 지적이나 하는 적으로 여기는 순간, 파트너십은 깨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성격에도 안 맞고 팔자에도 없는 쿠션어를 쥐어짜낸다. 본성에 없는 것을 영끌해다 쓰려니 수련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타고난 상냥함을 지닌 편집자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그래도 내 피드백이 지적하려는 의도가 없음을 저자가 순하게 받아들이는 데 나의 말들이 완충재가 되어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먹을 거라곤 없던 닭뼈에 살이 조금씩 오르는 기분. 이 일을 계속하다 보면 나도 조금은 푹신한 사람이 되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