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번 너무 열심히 살아서, 돌부리를 견디지 못했어
평소 쉽게 자기비하를 하지 않던 나는 그 날 모든 게 무너졌다. 이 세상 모두가 나를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침대에서 울기만 했다. 세상 모두가 나를 필요 없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 같았다. 애인도, 회사도, 심지어 가족도 다 나를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느꼈다.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아무도 원하지 않는 나는 나조차도 원하지 않는데’ 라는 생각으로 밤을 지새웠다.
이러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갔다.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나 너무 힘들다고, 잠 좀 재워달라고 했다. 잠을 못 자는 게, 헤어나올 수 없는 깊은 슬픔과 절망감이 밤마다 나를 압도하는 게 너무나 괴로웠다. 그렇게 정신과에 발걸음하고 심리상담을 찾으면서 비로소 스스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두 사건에 인생이 흔들려버릴 만큼 무너진 이유를 짚어보게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너무 열심히 살았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인생의 큰 장애물을 넘어갈 힘이 없어질만큼 너무 최선을 다해 살아서 탈이 난거다.
나는 매 학기 성적 장학금을 받고 대학교를 다녔다. 집안 형편 상,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던 나는 그 학자금 대출을 적게 받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야만 내가 한 학기 알바하는 것보다 많은 성적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성적 장학금이 조금 나올 때면 좀 속상해 했다. 성적 장학금을 받은 나를 뿌듯해하는 게 아니라, 지난 번보다 적게 나와서 더 많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하는 무게감에 먼저 짓눌려 스스로를 칭찬하지 못했다. 그렇게 경주마처럼 대학 시절도 열심히 달렸다. 죽기살기로 공부를 하고, 대외활동에 참여하고, 학생회도 하고, 돈과 장학금을 끌어모아 교환학생도 다녀왔다.
나는 원하는 것을 채우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또 견뎌냈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내가 잊은 것이 있었다. 나는 갈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나를 칭찬하는 데 서툴렀고, 점점 번아웃이 오고 있었다.
취업이 노력하는대로 결과가 따라주지 않자 나는 계속 잠을 못 자고 있었다. 새벽을 꼴딱 새는 일도 부지기수였고, 새벽 5시에 잠 드는 것도 너무나 흔했다. 또 어느 날은 동 터오는 새벽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또 밤을 새버렸다며 자책하는 일기를 쓰곤 했다. 나를 칭찬하는데 서툴었던 나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데에도 서툴러 내가 점점 지쳐가고 있다는 것 역시도 깨닫지 못했다. 그렇게 매일매일 가진 에너지 전부를 다 쓰고 살다보니, 인생의 돌부리를 만나자 버티지 못하고 주저 앉아버렸다. 그 돌부리에 걸려도 다시 다른 발을 딛을 수 있는 마음의 근육도 체력도 없었다.
내가 만난 정신과 선생님과 심리상담 선생님들은 입을 모아 가진 에너지의 70%만 쓰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가진 에너지 모두를 다 쓰는 삶이 오히려 건강하지 못하단 뜻이다. 인생에서 큰 돌부리를 만났을 때 넘어갈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는 잉여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두 가지 큰 사건으로 무너졌지만, 사실 내가 잉여 에너지를 남기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경고는 불면, 무기력증으로 시나브로 오고 있었다.